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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 나는 나대로 살기로 결정했다

<우드잡>이라는 영화가 있다. 히라노라는 고등학생은 대입에 떨어지고 여자친구에게도 이별통보를 받는다. 인생에 큰 뜻은 없지만 남들 다 간다 여기는 길도 가지 못해 괴로워하던 그는 산림관리 연수 프로그램 전단 표지에 여자모델이 예쁘게 생겼다는 이유로 지원하게 된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예쁜 여자나 보고 산에서 놀다 오지 뭐. 하지만 그가 도착한 가무사리 마을은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완전 산골마을. 뺀질이 히라노는 일의 강도에 절망하지만 이곳에서 지내면서 점점 느끼게 된다. 이곳도 하나의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이 <우드잡>이라는 영화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시골로 향했기 때문이 아니다. 삶을 선택하는 방향 그리고 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시세끼>의 영향 때문인지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 이런 착각을 할 수 있다. 귀농영화라고 말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귀농영화’가 아니다. 청춘들에게 도시에서의 삶이 힘들고 괴로우면 차라리 시골로 내려가라고 권장하는 투의 작품이 아니라는 소리다. 필자는 이 영화의 키워드를 두 가지로 본다. 첫 번째는 밥, 두 번째는 앞서 말한 뿌리다. 영화에서 혜원은 고향으로 내려온 이유에 대해 ‘배가 고파서’라고 말한다. 어처구니 없어하는 친구 은숙과는 달리 혜원은 정말 배가 고파서 혼자 고향으로 내려왔다. 도시의 많은 이들은 제대로 된 ‘한 끼’를 챙기지 못한다. 일이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돈이 부족해서 편의점에서 대충 때우거나 패스트푸드 혹은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보충하는 게 도시 사람들의 모습이다. 임용준비생인 혜원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을 가져와 한 끼를 버틴다. 그래, 버틴다는 개념이 어울릴 것이다.

그녀에게 ‘배고픔’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한다는 건 마음이 안정이 되어있지 않다는 걸 의미하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의미한다. 혜원이 냉장고를 열 때, 그 안에 담겨있는 건 쭈글쭈글해진 과일들뿐이다. 왜 우리는 남이 먹는 걸 보면서 즐거워하는 걸까? 먹방이라는 트렌드는 어찌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트렌드다. 남의 입속으로 음식이 들어가는 걸 보고 즐거워하니 말이다. 자기가 오늘 먹은 음식을 올리고, 맛집을 소개하고 이런 음식이 유행이 된 이유는 제대로 된 한 끼를 해결하기 힘든 게 이유가 아닌가 싶다. 편한 마음으로 식탁에 앉아 맛을 음미하며 식사를 하는 게, 정말 맛있고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게 바쁜 도시인들에게는 힘든 일이다. 추운 겨울, 고향 집에 돌아와 배추로 된장국을 끓이고 배추전을 만들어 먹는 혜원의 얼굴은 너무나 편해 보인다. 겨울의 추위를 녹이는 그 따스함은 도시에서는 채울 수 없었던 ‘한 끼’를 채우는 포만감을 준다.


혜원은 곧 도시로 올라갈 거라고 말하지만 고향 시골에서 1년을 보낸다. 그녀는 임용준비생이며 어린시절 도시에서의 삶을 꿈꿔왔다. 그런 그녀가 왜 농사에 매진하고 요리에 집중할까? 그녀는 자신의 꿈을 아예 포기한 것일까? 이 지점에서 중요하게 봐야 될 인물이 혜원의 남사친 재하다. 영화는 재하가 과거 도시의 회사에 입사했으나 스스로 박차고 나온 장면을 보여준다. 앞서 재하는 혜원에게 ‘일이라는 게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더라고.’라는 말을 한다. 재하와 혜원에게 농사는 어떤 의미일까. 농사일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여름 땡볕 아래에서 일해야 하고 1년 내내 열심히 가꿔놓은 농작물이 태풍 한 번에 모두 망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농사만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일도 드물다. 내가 키우고 싶은 작물을 기르고 내가 들이고 싶은 만큼 정성을 들인다. 비록 실패한다 하더라도 사기나 권모술수, 남에 의한 강요가 아니기에 마음의 부담이 적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등장할 수 있는 개념이 뿌리라고 생각한다.

작물들은 흙속 깊숙이 뿌리를 내려 성장한다. 던져 놓은 토마토가 땅을 파고 들어 뿌리를 내리듯 흙을 자신의 집 삼아 성장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도시의 아스팔트는 뿌리가 깊숙이 자리 잡는 걸 방해한다. 각각의 작물은 그 환경이 다르기에 다르게 돌봐주어야 하듯 인간도 그 개개인이 다르기 마련인데 마치 공장에서 공산품 찍어내듯 같은 수준의 인간이 완성되기만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람은 뿌리내리지 못한다. 난 저들과 달리 토양이 필요한데 자꾸 단단한 아스팔트에 어떻게든 박혀 있으라고 강요하니 제대로 박히지 못해 쓰러지는 것이다. 남편의 요양 때문에 그의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딸이 수능이 끝날 때까지 이 시골에 살았던 엄마를 생각해 보자. 그녀는 시골이 좋아서 이곳에 있었을까? 어쩌면 그녀는 이 시골의 땅이 딸이 뿌리를 내리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수능을 앞두고 혜원이 여느 시골 아이들처럼 도시 타령을 하자 엄마는 집을 떠난다. 그녀는 딸을 꾸짖지도 격려해주지도 않는다. 다 자란 그녀에게 스스로 어느 땅에 살지 선택하게 하고는 자신의 길을 간다.


<리틀 포레스트>는 편하면서도 삶에 대한 많은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영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참 편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잔잔해서 지루하지도, 삶에 대한 고찰을 하느라 머리가 아프지도 않다. 그저 세 친구들의 시끌시끌한 우정과 뱃속이 따뜻해지는 요리를 보고 있자면 시간이 금방 가버린다. 임순례 감독은 <신과함께> 같은 상업영화가 아니기에 일본판처럼 1,2부를 나누어 제작하기 힘들었다고 하였는데 한 편으로 끝낸 게 더 좋은 선택이 되었다고 본다. 1,2부로 나눠졌다면 비슷한 패턴 때문에 지루하지 않았을까 싶다. 농촌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 세 친구의 고민과 우정이 적당한 크기로 영화라는 그릇에 담겼다고 느껴졌다. 남들과 다르면 어떠냐. 조금 느리면 또 어떻고. 사람이 밥으로 힘을 내는데 배가 고파서야 쓰겠나. 따뜻한 밥 한 끼에 배가 차고 내 뿌리가 제대로 자리 박히는 곳이 내가 나대로 살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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