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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의 시대, '나'를 감춘 사람들의 이야기

최연소 나오키상 수상작, 아사이 료의 <누구>

<소셜포비아>라는 영화가 있다노량진 고시생 지훈과 용민은 한 군인의 자살소식에 요즘 남혐들이 할 만한 말을 내뱉은 여성 네임드 네티즌 레나를 찾아가 현피를 뜬다는 BJ 양게를 호기심에 따라간다헌데 레나는 자살해 있고 네티즌들은 BJ 양게 일행 때문에 레나가 자살을 했다며 그들을 비난한다이에 지훈과 용민을 비롯한 BJ 양게 일행들은 레나가 살해당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분투한다이 과정에서 레나라는 인물에 대한 신비가 벗겨진다대학 시절 그녀는 책 읽는 걸 좋아해 소설 창작 수업을 듣는다헌데 자신의 소설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남의 작품은 신랄하게 비판한다소설을 내놓으라는 교수의 말에 마지막에 제출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는 레나그러다 교수가 그녀가 두고 간 노트에서 그녀의 소설을 발견하고 그 소설을 복사해 수업 때 쓰려고 하자 레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그리고 그날 이후로 레나는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필자는 SNS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이 고슴도치’ 같다고 생각한다날카로운 가시로 무장한 겉모습 때문에 강인하고 무서워 보이지만 그 내면은 너무나 연약하고 나약하다레나가 학교를 떠난 이유는 두려워서이다그녀는 소설을 내놓지 않았기에 공격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그녀가 공격한 학생들은 자기변명과 방어는 할 수 있지만 공격은 할 수 없다하지만 레나의 소설을 보게 된다면 그들 역시 공격할 권리가 생긴다레나는 그게 싫었던 것이다지웅은 레나의 노트북에 담긴 캠 화면이 복귀된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레나는 BJ 양게가 진행했던 방송을 보고 있었다그가 자신의 아파트에 도달했을 때 레나의 겁에 질린 표정은 그녀가 자살했음을 보여준다왜 인터넷 상에서는 남을 비방하고 욕하며 자신과 말다툼을 벌인 상대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과를 시켰던 레나가 그깟 현피 한 번에 자살을 택한 걸까그녀는 몰랐을 것이다자신의 정체를 알아내 찾아올지 몰랐던 것이다그녀는 그저 두려웠을 뿐이다. ‘진짜 자신을 드러내는 게 죽음을 택할 만큼 두렵게 다가왔던 것이다마치 그 시절 소설을 들켰을 때처럼.
  
현대인들의 모습은 이 고슴도치 인간과 같다고 생각한다그들은 SNS를 통해 또 다른 나를 창조해낸다그 또 다른 나는 두 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다시니컬하고 냉소적이며 분석적인 나 또는 희망차고 밝으며 밝은 내일을 향해 뛰어가는 나이다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내가 만들어낸 모습에 공감을 표하고 지지를 보낸다그리고 나는 이런 괴리감이 느껴지는 모습으로 남을 헐뜯고 비방하며 냉소를 보낸다마치 레나처럼. <누구>에는 다섯 명의 취업준비생들이 등장한다그들은 같은 대학 출신으로 우연히 자취방 위층과 아래층 사이로 만나게 된다그들 각자의 유형을 ‘**선배로 나누면 이렇다먼저 고타로는 날라리 같지만 은근 실속 있는 선배다학교를 다니다 보면 학과 수업보다는 동아리 활동에 더 열중하지만 딱히 그 동아리 활동을 직업으로 삼기에는 능력이 부족해 보이는 선배가 보인다그럴 때면 저 선배는 졸업 후에 할 게 없겠다고 생각하는데 또 은근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인다특유의 친화력과 밝은 모습그러면서 꽤나 잘 쌓아둔 스펙이 먹히는 사람이다밴드부 보컬인 고타로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며 수다스럽고 유머러스하다그는 인기인이다.
  
미즈키는 조용히 강한 선배다여성분들이 들으면 여성비하다’ 할지도 모르겠지만 대학 다닐 때 있었던 말 중 하나가 알짜 누나라는 말이었다예쁘다고 소문나서 거만하고 나대기 좋아하는 산만한 잘 알려진 누나가 아닌 조용하고 학과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서 아는 사람은 드물지만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착하고 후배도 잘 챙기는 그런 누나다미즈키는 수수해 보이지만 아름답고 말이 없어 보이지만 은근 할 말을 할 줄 아는 똑부러진 성격이다하지만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취업에 있어서는 조급한 모습을 보인다어떻게든 돈을 좀 주는 회사에 다녀야만 어려운 집안 사정을 이겨낼 수 있다리카는 엄마 같은 선배다이것저것 잘 챙겨주는 건 물론 단체로 뭉쳤을 때 구심점 역할보다는 뒤를 받쳐주는 역할을 해준다그녀는 프린트가 필요한 아랫집 남자들에게 프린트를 빌려주며 음식 같은 걸 가져와도 자기가 먹기보다는 씻거나 예쁜 접시에 담아 대접해 준다리카의 남자친구 다카요시는 가오 잡는 선배다예전에는 먹혔을지 모르겠지만 요즘처럼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에는 꼴에 지랄을 하세요지랄을’ 이라는 말을 듣는 선배그는 프리랜서 작가라고 말하며 취업 따윈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바쁘게 취업 정보를 찾아보고 다니면서 허세를 부린다.
  
마지막 주인공 다쿠토는 뭔가 있어 보이는 선배다그는 글을 쓴다여기에 좋은 분석 능력을 지니고 있어 주변으로부터 얘 뭔가 있어 보인다.’ ‘언젠가 큰일을 하겠다.’는 소리를 들으나 실상은 쥐뿔도 없다어쨌거나 이 다섯 사람은 미즈키의 귀국을 필두로 뭉치게 된다미즈키는 이제 막 대학생활을 끝낸 다쿠토와 고타로에게 취업 이야기를 하고 두 사람은 어쨌든 해야 되는 취업이니 미즈키를 따라 취업을 준비하기로 결정한다그리고 두 사람은 미즈키와 함께 해외연수를 떠났던 리카와 만나 취업 스터디를 결성한다헌데 그들의 눈에 거슬리는 한 사람바로 리카의 남자친구 다카요시다그는 취업 따위는 안 해라고 말하는 남자다그는 취업을 안 하고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많다고 말하며 미즈키가 쓴 자기소개서를 읽고 너무 진부하다고 말한다자기처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의 눈에는 너무 전형적으로 보인다나 뭐라나고타로는 다카요시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한다왜냐하면 그가 긴지와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카요시가 트위터에 올린 허세 가득한 글처럼 긴지 역시 허세에 가득한 글을 올린다선배 사와는 다카요시와 긴지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나 다쿠토는 그렇지 않다 여긴다둘 다 하는 건 쥐뿔도 없으면서 뭐라도 되는 듯양 행동한다다카요시는 개인 블로그 활동이나 다름없는 글을 쓰면서 이라고 말하고 긴지는 학생 수준의 연극이나 하면서 엄청난 예술 활동을 하는 마냥 행동한다둘 다 허세만 가득하고 실속은 없는 인간들그래서 다쿠토는 다카요시가 긴지와 만나고 둘이 작업을 같이 하기로 했다는 말에 속으로 비웃음을 장착한다허세꾼들끼리 뭉쳤구만작품이 어떤지 궁금한데하고모임 참가자들은 서로 정보를 나누지만 동시에 서로 믿지 못한다고타로는 먼저 제멋대로 서류를 넣어 1차를 통과하고 다쿠토는 면접장에서 우연히 미즈키를 만난다그리고 취업에 관심 없을 줄 알았던 다카요시는 면접을 보러 다닌다그들은 서로의 면접에 대해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다그러니까 서로 정보는 공유해도 내가 지금 보고 다니는 취업에 대한 정보는 공유하지 않는다사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웃고’ 있다.
  
그 조소의 향연이 터지게 된 사건이 미즈키의 취업이다미즈키의 취업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첫 번째 사람은 리카다그녀는 미즈키와 같은 해외연수를 다녀왔다그리고 같은 여자다그녀는 미즈키가 입사한 회사가 블랙기업은 아닌지 검색해 본다그녀의 취업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 두 번째는 다쿠토다그는 미즈키의 집안 사정을 안다미즈키가 그에게 고백했고 자신은 좋은 기업에 들어가야 된다고 말했다헌데 들어간 회사도 시원찮은 건 물론 입사한 자리도 장기적인 취업이 보장된 자리가 아니다나한테 거짓말을 한 걸까그게 아니라면 미즈키는 사실상 실패한 취업을 한 걸까그리고 마지막 다카요시그는 취업 축하 파티에서도 취업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또 내뱉는다저 혐오스러운 인간 이라고 생각하려는 찰나미즈키는 그에게 묵직한 팩트 폭행을 가한다. ‘사실 그런 말하는 네가 가장 취업을 원하고 있잖아.’ 라고다카요시의 명함에는 작가편집자감독이라고 적혀 있다하지만 그는 작가도 편집자도 감독도 아니다프리랜서 작가를 표방하지만 제대로 된 봉급을 받고 일한 적이 없다그저 나 글 쓰고 싶다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존재다하지만 이런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SNS로는 취업을 위해 모인 취업팸을 비웃고 그들에게 취업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며 역설하며 속으로는 전전긍긍해 취업 자리를 보러 다닌다
  
그는 긴지와의 일이 잘 안 된 것도 없던 일이 되어버렸어라고 말한다여기에도 미즈키는 강하게 비판을 가한다. ‘넌 아무 일도 하지 않아라고다카요시는 항상 그런 식이다일이 되질 않는다실패한 걸 마치 자신의 예술가 기질을 세상이 알아주지 못해서 시작도 못한 거처럼 없어졌어 라고 말한다그리고 미즈키는 네가 하는 건 일이 아니야라고 다시 한 번 수정해 준다그래그가 하는 건 일이 아니다. ‘날 좀 보소라고 글로 자신을 광고하는 것이다그런데 그걸 일이라고 포장하는 건 물론 취업 따윈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며 못하는 걸’ ‘안 하는 거로 포장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이 시점에서 다쿠토는 알게 된다왜 아무런 SNS 활동도 하지 않는 사와 선배가 겨우 140자 적은 트위터 글로 긴지와 다카요시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그랬는지왜 그에게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는지 말이다적어도 긴지는 행동으로 옮긴다실패하고 욕을 먹더라도 긴지는 행동한다그리고 그 행동한 자신을 드러낸다그게 허세일지라도 포장일지라도 뭐라도 한다그런데 다카요시는 아니다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포장한다허세로 과대포장한 자신을 누군가 실수로 집어다 주길 바라며(취업을 하기를 바라며그렇게 살아간다.
  
취업으로 미즈키가 떠나간 후 고타로도 취업에 성공한다고타로는 취업 축하 파티가 끝난 후 돌아가는 차 안에서 다쿠토에게 진심이 섞인 위로를 건넨다그는 다쿠토를 미즈키처럼 대단한 놈이라고 생각한다그들에게 없는 상상력으로 멋진 글을 쓰며 뛰어난 분석 능력으로 감탄을 자아낸다그런 다쿠토가 취업을 못하니 룸메이트 고타로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그는 말한다운동을 못하면 운동을 못하는 거고산수를 못하면 산수를 못하는 거뿐인데 왜 취업을 못하면 무능한 인간이라고 낙인찍히는 걸까그냥 못하는 거뿐인데현시대의 우리는 못하면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사랑을 못하면 안 되고운동을 못해서도 안 되며술을 못 마셔서도 안 된다못하는 건 못하는 것일 뿐인데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을 찍어버리며 배우라고 강요한다그리고 취업도 그리 되어버렸다대학은 취업교육을 위한 장소가 되어버린 지 오래며 취업과 관련 없는 학과는 통폐합 시킨다그리고 4년 동안 취업교육을 시켜주었는데 왜 취업을 못 하느냐며 윽박지른다그저 못하는 거뿐인데
  
사람들은 이 못하는 걸 가리기 위해 냉소적으로 변한다그 냉소적인 자세의 필요조건은 두 가지다첫 번째는 자신을 부풀리는 것이며 두 번째는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존재에 대해 가차 없이 철퇴를 가한다그러면 자신은 있어 보이고 상대는 없어 보인다그런 식으로 자신이 느끼는 열등함과 좌절감을 감춘다그러기 위해 입가에 조소를 품고 눈가에는 냉소를 비친다상대가 나를 보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그래도 힘들면 다카요시처럼 본질적인 문제를 상대한다취업 그 자체를 비웃고 무시하면서 이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비웃는다그리고 부풀려진 자신은 그냥 한 번 보는 거라고 포장하며 그 간절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 한다어쩌면 현대의 젊은이들이 고슴도치 인간이 되어버린 건 못하는 걸 어떻게든 해내라는 그 강압에 대한 가슴 아픈 저항일지도 모른다살을 파고드는 가시를 박으며 조금이라도 강해보이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피가 흐르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여기서 작품이 끝났어도 좋았을 것이다하지만 첫 작품으로 스바루 신인상을 수상하고(<내 친구 키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둔대>) 최연소 나오키상을 수상한(<누구>) 89년생의 아사이 료 감독은 더 정확한 본질을 파고든다그는 이 다섯 명의 인간들을 모두 저열하게’ 설정해 놓았다그리고 덜 저열한 순서대로 취업의 아픔에서 벗어나게 나름의 자비를 베풀었다처음이 미즈키였고 다음이 행동만 저급한 고타로였다그렇다면 다음은 다쿠토일까그는 리카처럼 미즈키의 취업을 질투하거나 폄하하지 않았고 다카요시처럼 허세와 교만에 차지 않았다아니그랬다고 믿고 있었다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은 말 그대로 전율이다몇몇분들은 이 부분을 차마 읽지 못할지도 모른다어떠한 잔인한 장면 없이 가장 잔인하게 사람의 심장부를 도려내기 때문이다다쿠토는 프린터를 빌리기 위해 위층을 향한다리카는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며 다쿠토에게 핸드폰을 빌려달라 말한다이 순간 다쿠토는 망설인다그 망설임의 이유를 리카는 곧 발견한다그가 고타로가 취업한 기업이 블랙기업인지 아닌지 검색해봤기 때문이다.
  
룸메이트의 취업을 축하해주는커녕 질투해서 블랙기업임을 검색해 본 다쿠토를 탓하는 리카그런 리카에게 다쿠토는 나는 너와 다르다고 말한다나는 네가 미즈키를 질투한 거처럼 그만큼 질투한 게 아니라고그 순간 리카는 아주 묵직한 사실을 폭로한다사실 다쿠토에게는 비밀 SNS 계정이 있었다. ‘누구라는 이름을 지닌 계정이그는 이 계정에서 모든 사람들을 평가하고 비판했다예쁜 그릇만을 내놓는 리카집에서 면바지를 입고 있는 다카요시그들은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동거를 시작했고 다쿠토는 그 사실을 분석해 비판한다학교 게시판에 학생 연극은 왜 다 그 모양인지그러다 하나 얻어걸리길 바라나정말 수준 미달이네라고 쓴 글을 보며 자신과 맞지 않는 긴지를 조롱했다명함에 학창시절 했던 일이나 해외연수를 적은 리카를 자신을 어설프게 포장한다고 비꼬았다그리고 허세에 찬 다카요시를 씹었다어린 시절 첫사랑을 잊지 못해 출판사를 향한두 번이나 그 이유로 미즈키를 찬 절친 고타로를 현실감각 없는 녀석이라 욕했다다쿠토는 들켜버렸다저급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리카는 말한다넌 그저 누구가 되고 싶을 뿐이라고남을 평가할 자격이 있는 누가 되고 싶기에 이런 글을 싸지른 거라고 말이다.
  
앞서 절친이자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룸메이트 고타로는 말했다난 네가 왜 취업을 못하는지 알 수 없다고하지만 겨우 며칠 함께 스터디를 한 리카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난 네가 왜 취업을 못하는지 안다고면접을 하는 사람들은 안다어설프게 꾸며낸 와 진실된 그들은 다쿠토의 눈에서 읽은 것이다. ‘누구가 되려고 애쓰는 어설픈 젊은이의 모습을 말이다그 어설픈 젊은이의 조소와 경멸이 섞인 평가에 대해 리카는 이리 반론한다넌 자신을 관찰자라고 생각한다그렇게 있으면 자신이 아닌 누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여긴다넌 누구도 응원하지 않는다단지 남들이 너보다 불행하길 바랄 뿐이다이따금 모르는 사람이 리트윗 한 번 해주면 네 생각이 공감을 얻은 거 같아 기뻐하는 공감을 먹고 사는 관찰자네 말대로 내가 얼마나 촌스럽고 꼴불견인지 안다하지만 그것 말고는 내게 남은 길이란 건 없다이런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이상적인 모습에 가깝게 만드는 일 말고는 내가 할 일은 없다.
  
리카의 희망이 가득 담긴 트윗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그녀는 조금이라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거짓된 자신을 만들어냈다이 거짓된 자신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다쿠토와 다를 바가 없다허나 리카는 조금이라도 거짓된 자신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설령 과대포장을 했더라도 그 포장지가 거짓이 없기에 별 거 아닌 경력이지만 해낼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하지만 다쿠토는 그렇지 않다그는 자신의 면접에서조차 같이 면접을 본 리카의 대답을 SNS 비밀계정으로 비꼬았다그에게는 자신이 없다마치 익명성 뒤에 숨은 누구처럼 누구가 되어 남을 비방하고 헐뜯을 뿐이다그래이 다섯 중 가장 저열하고 저급한 인간은 다카요시가 아닌 다쿠토였다적어도 다카요시는 누구가 되지 않는다다쿠토처럼 말이다마지막 면접 장면에서 다쿠토는 정말 싱거운 답만을 내뱉는다면접자들이 짜증을 낼만 한 답만허나 마음만은 여태까지 본 면접들 중 가장 편하다 여긴다싱겁고 별 볼일 없는 자신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본질적으로 말하고 싶은 부분은 누구가 되고 싶은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아픔이다서로가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이기기 위해 자신을 포장하며 남을 억누른다남에게는 조소와 멸시를 보내며 자신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공감과 인정을 받기 위해 포장하고 과신한다. SNS의 수많은 누구들은 자신의 지인자신의 친척자신이 목격한 일들을 적고 평가하며 많은 공감을 얻으면 뭐라도 된 듯양 기뻐한다마치 인터넷 속 누구가 자신인 거처럼 말이다앞서 말한 레나의 본질도 이와 다르지 않다그녀는 강하고 독한 여전사 레나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그녀는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군인에 대해 비방하고 조롱했다그리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누구?’라고 물어볼 만한 타인에 의해 말이다작품은 왜 마지막 순간 다쿠토를 무너뜨렸나이는 왜 레나는 자살했는가 와 같은 질문이다다쿠토와 레나두 사람은 고슴도치였고 현실에서의 자신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누구였다차이점이라면 <소셜포비아>는 레나의 본질을 파고드는 반면, <누구>는 본질인 다쿠토의 가면을 보여주면서 충격을 준다
  
최근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보면 일침’ ‘사이다라면서 남의 행동이나 말에 대한 평가비판이나 분석을 한 글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정당한 느낌의 평가도 있지만 더 많은 공감을 얻기 위해 특정 비호감 연예인 또는 방송인을 향한 비방조롱멸시가 담긴 글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이렇게 남을 까 내리고 욕한 글이 공감을 얻어야 내가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조금이라도 약점을 보이면 톡 쏘는 말투로 일침이랍시고 날리고 자기들끼리 킥킥거리는 저급한 인간들이 하는 짓거리와 다를 바가 없는 짓을 익명성 뒤에 숨어 행하면서 누구가 되고 싶어 하는 본성은 숨기길 바란다당신은 당신 그 자체다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떠한 SNS 활동도 하지 않는 사와 선배처럼 조금 더 현실의 당신과 친해지고 상상력을 발휘해라관계에 있어 가장 큰 힘은 상상력이다남을 바라보는 힘은 상상력에서 길러진다.
  
마지막으로 다쿠토와 다카요시를 위한 변명을 하고자 한다현대사회에 이런 누구를 만들어낸 건 SNS허나 SNS는 그 사용하는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이런 사람들을 만들어낸 건 오늘날의 취업 구조라고 할 수 있다면접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우리 회사를 입사한 이유딱히 이유 없이 적은 회사라도 정말 가고 싶다는 어투와 자세지식으로 자신을 어필해야 한다회사는 가면을 원한다감정을 숨기고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줄 수 있는 가면그런 가면을 쓰고 출근하길 원한다창의력을 원한다는 건 헛소리다조직생활에 적응하는 또 다른 누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만을 찾는다그리고 경쟁을 부추긴다남을 찍어 눌러야만 자신이 올라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그 구조 속에서 사람은 상급자의 눈에 들기 위해 애쓴다그러기 위해 상대를 낮추고 자신을 높일 줄 알아야 한다상대에게 공감을 표했다가는 자신이 눈 밖에 난다그래서 경쟁자를 향한 조롱과 멸시를 보낼 채비를 갖추고 있다그리고 그 무기만이 조금이라도 별 볼일 없는 자신을 크게 만들 수 있다.
  
아쉽게도 이런 현대사회에 가장 잘 어울릴 두 사람은 취업의 장벽을 넘지 못한다그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들이 거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사람은 자신의 저급한 면에 염증을 느낀다아마 면접관들은 그 두 사람에게서 조직에 어울리지 않다는 느낌보다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관찰자의 모습을 본 게 분명하다고 본다조직생활은 자신보다 남에 관심이 더 많다자신의 성장보다는 남의 추락이나 좌절이 더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이라 여겨진다그 순간 자신은 사라지고 관찰자만이 남게 된다글을 쓰고 작품을 평가하는 입장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나 역시 이전에 연예인들에 대해 평가하는 글들을 썼었고 욕도 많이 먹었다요즘은 남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작품을 보고 난 후 나의 느낌과 감상에 조금 더 집중한다그래서 욕도 많이 먹고 공감을 못 얻을 때도 있지만 글쎄관찰자인 나였을 때보다는 지금이 더 즐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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