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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세계에 빠진 장예모

영화 <행복한 날들>

영화가 별다른 근거 없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필자는 장예모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영화, <행복한 날들>이 관람작으로 선정되었을 때도 걱정이 많았다. ‘하, 장예모 영화는 정말 쓸 게 없는데.......’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관람이 끝나고도 ‘정말’ 쓸게 없었다. 며칠을 키보드만 만지작거리다 삐딱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왜 내가 장예모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지는지 한 번 적어보자’ 이 글은 <행복한 날들>이라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동 드라마를 보고는 나오기 힘든 글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한 번 써볼까 한다.
 


* 상업영화 이전의 장예모
  
<행복한 날들>은 장예모 감독이 <영웅>, <연인>이라는 상업영화를 만들기 직전 찍었던 작품이다. 이전까지 장예모 감독은 <책상 서랍 속의 동화>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집으로 가는 길>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다. 그의 영화들은 국제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영웅>에서 갑자기 완전한 상업영화로 노선을 변경한 것이다.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두던 감독이 갑자기 스타일을 바꾸었다. 지금은 완벽한 상업주의 감독이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이 작품, <행복한 날들>은 장예모라는 감독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작품이다. 그는 <책상 서랍 속의 동화>와 <집으로 가는 길>을 통해 흥행에 성공한 반면 <행복한 날들>로 실패를 경험했다. 한 번의 실패였을 뿐인데 그는 1년의 완전한 공백을 가진 후 상업영화 <영웅>을 계획한다. 
  
이 시기 장예모 감독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연인 공리와 결별한 후 그녀를 영화에 기용할 수 없게 된 장예모 감독은 친구인 제작자 장웨이핑과 손을 잡고 <좋게 말로 하자고>를 찍지만 손해를 입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장예모 감독은 장웨이핑과 함께 실패에 대해 분석한다. 그는 공리를 스타로 만들었으나 그녀가 떠나면서 영화가 티켓 파워를 잃었다 생각하고 또 다른 여배우를 키우는 대신 장예모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장예모 브랜드화’ 전략을 세운다. 신인 배우들을 기용해 배우들 대신 감독의 이름을 내세운 이 흥행전략은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행복한 날들>이 흥행에 실패하며 이들은 다시 계획을 수정한다. 본격적으로 상업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행복한 날들>은 <책상 서랍 속의 동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가진 불편함은 이전의 장예모가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동화적인 느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 사회파 감독, 동화를 입다
  
장예모 감독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이유는 그의 영화들이 다루고 있는 중국 사회에 대한 비판 때문이었다. <국두>와 <홍등>은 봉건 가족 제도 속에서 살아가는 여인들의 삶을 다루었고 <귀주 이야기>에서는 전통적 사고와 현재의 시점의 갈등을 표현했다. 또 여화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인생>을 통해서는 국민당과 공산당간의 내전, 신중국 수립,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 중국 정부의 치부라 할 수 있는 역사들을 다루어 상영금지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런 장예모 감독은 공리와 헤어지면서 영화 스타일의 변화를 보여준다. 사회의 비판을 다루기보다는 현상은 보여주되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아름답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스타일의 변화를 꾀한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현재 중국 사람들이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의 작품을 보는 것을 그다지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의 과거 고난 속 대부분이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의 것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 역시 관중과 전체적인 추세를 고려해서, 한 두 개의 이러한 작품을 찍은 것이다. 아마도 5년이 지난 후 관객들은 매우 심각한 작품을 원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늘 이렇다. 입맛이 원래대로 되돌아온다. 갑자기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의 것을 보려고 한다. 그래서 시장의 흐름은 변해서 원래로 되돌아오며, 우리 역시 이러한 큰 느낌을 따라서 가는 것이다. 나는 1998~2000년부터, 대략 앞으로 3, 4년 내로 현실을 비판하는 작품은 아마도 시장에 아주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세기 말의 느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의 작품은 마치 사람들 모두 매우 피곤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아서,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시장의 흐름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지 사회에 대한 비판보다는 사회적인 문제는 보여주되 그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보다는 아름다운 결말을 택하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는 시골 학교의 문제점을 보여주지만 결말은 뜬금없는 방송국의 도움으로 행복하게 막을 내린다. <행복한 날들>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 자오는 50대의 노총각이고 결혼을 꿈꾼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그는 차이기만 하던 중 두 번 결혼한 적 있는 뚱뚱하고 탐욕적인 여인과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여인은 그에게 지참금으로 5천 위안을 요구하고 자오는 자신이 호텔지배인이라 거짓말을 내뱉는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해 결혼하지 못하는 노총각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점은 지적하지 않는다. 또 자오가 호텔지배인이라 거짓말을 하기 위해 버려진 버스를 개조해 만든 호텔 ‘행복시광’은 자유연애가 시작되었지만 함께 지낼 장소가 없어 이런 누추한 장소까지 올 수밖에 없는 웃픈 현실을 풍자한다. 이 역시 풍자의 요소가 강할 뿐 사회 비판의 모습을 담고 있지 않다.
  
여인이 자오의 정체를 착각, 전 남편이 두고 간 딸인 맹인 우의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말하는 이후부터의 장면은 마치 카프카 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자오는 거짓말을 이어가기 위해 공장을 마사지샵이라 속이고 그의 친구들은 이 작전에 동조한다. 우는 이 거짓말을 알아차리지만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오를 위해 기꺼이 속아준다. 그리고 자오는 우에게 팁을 주기 위해 자신의 텔레비전을 팔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갈등은 나타나지 않는다. 자오는 우가 사실을 알고 좌절해 자살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친구들은 우가 돈을 너무 많이 쓸까봐 종이로 대신한다. 우는 자오가 실망할까봐 이 연극에 계속 동참한다. 참 카프카 영화 속 인물들처럼 착해도 너무 착하다.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캐릭터에 양면성은 없으며 그들이 지닌 순수함은 놀랄 만큼 티끌 하나 없어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결말까지 영화는 깔끔한 동화를 완성시켜야 된다는 사명감 때문인지 슬프지만 따뜻한 마무리를 택한다.
 


* 영화의 눈물이 불편한 이유
  
이제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다. 필자가 장예모 영화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본다. 첫 번째는 그가 더 이상은 이전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장예모 감독은 사회적인 현상을 묵직하게 바라보며 중국 사회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다. 그는 동화의 세계에 빠졌으며 영화가 끝난 후 깊은 고민보다는 눈물을 먼저 흘리게 만드는 신파로 돌아섰다. 그는 상업성을 이야기했지만 장예모를 비롯한 5세대 감독들이 비슷한 시기에 이런 사회를 바라보는 힘을 잃어버렸다는 건 결국 그들이 기성세대에 편입, 현 시대를 바라보는 눈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동화적인 세계의 구축이다. 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중국 소시민들의 삶, 그 속에서 발견되는 인간 사이의 따스함은 가슴을 울린다. 하지만 그 따스함을 위해 지나치게 착한 사람들, 그 사람들의 심성에 기댄 전개는 개인적으로 아쉽다. 이러면서 카프카 영화는 재미있게 본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장예모 감독의 영화에 대한 반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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