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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 룰, 미투에 대한 답이 고작 이건가요?


개인적으로 페미니즘,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들은 말 중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있다. ‘남자라서 미안합니다.’ 이 말이 듣기 싫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집단 전체를 매도하는(그것도 남자라는 거대한 집단에 대해) 말이라서 이고 두 번째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미안해야 하는지 이다. 이 말은 거대한 함정을 품고 있다고 본다. 남자는 잠재적 성폭력을 자행할 수 있는 존재이니 미안해해야 한다는 함정 말이다. 그리고 등장한 ‘펜스 룰’이라는 단어에 개인적으로 염증이 느껴졌다. 펜스 룰에 대한 해석을 커뮤니티마다 다르게 하니 가장 정확하다 여겨지는 지식백과, 그리고 이 룰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펜스가 한 말을 살펴보자.


미국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가 2002년 당시 미국 의회 전문지 <더 힐> 인터뷰에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고, 아내 없이는 술자리에 참석하지도 않는다고 말한 발언에서 비롯된 용어다. 이는 성추행 등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아내 외의 여성들과는 교류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편, 2018년 초부터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자신이 당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운동이 빠르게 확산되자, 일각에서는 성추행 사건을 사전에 차단한다며 '펜스 룰'을 확대하고 있어 또 다른 논란이 되고 있다. 여기에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2017년 2월 6일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성희롱을 한 몇몇 권력층 남성들이 직장을 잃었고 일부 남성들은 ‘펜스 룰’을 따르는 선택을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펜스 룰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미투 운동에 나선 여성들의 주장이 장난인가? 그저 어깨 한 번 툭 친 거, 말로 강압적으로 억압한 거로 미투 운동에 나섰는가? 미투 운동의 피해자들은 성추행/폭행을 당했고 이 일로 정신적.육체적인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다. 이들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 운동에 대해 ‘아, 그래. 그러면 여성 주변에 남성이 얼씬도 거리지 않으면 되겠네?’라는 태도로 나서는 건 정말 알량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치부하는 건 물론 여성들의 용기 있는 폭로에 대한 가장 무책임한 대답과 해결책 제시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크 펜스의 저 인터뷰는 자신의 생활신조일 뿐이다. 본인이 생각했을 때 자신이 자제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저런 규칙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 헌데 미투에 대한 답이랍시고 등장한 게 펜스 룰이라면 정말 실망이다. 만약 정말 답이랍시고 꺼낸 거라면 논리는 이렇다고 본다. ‘여성과 남성이 가까워지면 남성에게는 여성을 향한 성욕이 피어날 수밖에 없다. -> 그런 성욕이 피어나면 남성은 자제력을 잃고 여성의 몸에 손을 댄다. -> 이건 본능이기에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여성과 남성은 같이 있을 수 없다. -> 그러니 펜스 룰처럼 여성을 멀리하는 게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같은 남성으로써 정말 모욕적이고 한심하고 짜증난다. 이는 전형적인 성추행을 일삼다 걸린 범죄자들이 내뱉는 변명과 다르지 않다. 또 90년대까지 성폭행의 책임을 여성의 옷차림으로 돌렸던 성인식이 약했던 시기의 재판장의 주장들과도 별반 차이가 없다. 


처음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몇몇 남초 사이트에서 우스갯소리로 내뱉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진짜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이트는 악인과 범인(凡人)의 경계에 대해 이리 설명했다. 도덕적이고 고결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깊은 무의식 속에는 금지된 행위에 대한 환상, 잔인한 욕망과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환상이 숨어 있다. 이 부분의 경우 자비에 돌란 감독의 <아이 킬드 마이 마더>처럼 극단적인 제목으로 대변되는 내면 깊은 곳의 욕망이다. 이 욕망의 과정에서 사악한 인간과 보통 인간의 차이는 음침한 욕망을 행동에 옮기는지, 아닌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누구나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짜증나는 순간이 있다. 이럴 때 악인은 폭력을 휘두르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러지 않는다. 성범죄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 기사 여자 연예인의 섹시한 사진에 올라오는 저질스러운 댓글들은 머리에만 품으면 그저 욕망일 뿐이다. 하지만 이를 밖으로 내뱉는 순간 범죄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극단적이고 음침한 면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 기운을 숨기거나 건장한 방법으로 풀어낼 뿐이다. 욕망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범죄자다. 미투 운동은 이런 범죄자들에 대해 일어난 운동이지 욕망조차 품지 말라며 남성들에게 성인군자가 되라는 의미로 펼치는 운동이 아니다. 만약 펜스 룰이 시행된다면 이는 미투 운동이 향했던 권력과 폭력의 또 다른 발현이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발전을 거듭하면서 여성의 문화권 공간을 넓혀왔고 남성 문화권의 공간과의 조화를 이뤄왔다. 여성 권력이 힘을 얻어왔고 성적인 인식의 개선, 여성이 겪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주목해 왔다. 그런데 펜스 룰은 말 그대로 펜스(fence(울타리))-즉 남성들의 문화권에 여성을 들이지 않겠다는 울타리를 친다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모든 남성은 잠정적 성범죄자인가? 난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말 것이며 말 한 마디라도 걸면 성범죄자로 규정해 버린다고 말했는가? 그것도 아니다. 몇몇 분들은 이렇게 말한다. ‘회식이나 술자리에 여성들 강제로 참석 안 하면 좋잖아. 오히려 펜스 운동은 너희들은 위한 운동인데 하기 싫다는 거야?’ 이 말이야 말로 정말 조롱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회사의 일원이라면 참석하고 말 권리는 그 사람에게 있다. 그 권리를 ‘무슨 룰’이라고 들먹이며 ‘어차피 너한테 좋은 거’라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더 잘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 메갈과 워마드를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 운동이 왜 갈수록 외면을 받았겠는가. 그건 여성의 입장만을 강하게 고집하며 남성을 비방하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뷔페미니즘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니겠는가. 


미투 운동에 대한 방향은 권력의 억압을 향해야 한다. 미투 운동은 남성 권력 죽이기 운동이 아니다. 폭로된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쥐꼬리만 한 권력을 악용, 남을 유린하고 고통을 준 이들에 대한 저항과 폭로로 이어져야 한다. 지난 글에서 더 많은 미투 운동이 일어나야 된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력의 악용은 견제를 받아야 하며 조직의 유지라는 변명으로 피해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런 미투 운동에 대한 해답이랍시고 등장한 펜스 룰은 커뮤니티의 지나가는 말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분류하는 건 물론 미투 운동에 대한 조롱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전부터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매번 언급했던 게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 사회적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이들에 대한 보호는 일어날 수 없다.


최근 미투 운동 댓글들 중 열 받았던 게 성적인 댓글들이었다. 피해자들이 이래서 나서기 싫어했던 것인데 그 나서기 싫어했던 이유를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영화나 만화 중 가장 보기 싫은 작품이 다친 사람 또 다치게 하는 작품이다. 너무 잔인하지 않나. 피해자들이 용기 내 나선 고백에 대해 ‘아, 그러면 남자들은 펜스 룰을 할게.’라고 답하는 건 미투 운동에 찬물을 확 끼얹는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미투 운동은 권력에 대한 저항이지 남성에 대한 저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성적인 댓글로 상처를 준 것에 이어 용기에 대한 답으로 조소 섞인 답을 내리며 ‘쿨병’에 걸린 양 남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여러 모로 화가 많이 나서 글에 두서가 부족할지도 모른다. 글쎄, 개인적으로 너무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이분법적이다. 여자 아니면 남자라니. 성폭행과 성추행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접근 금지라는 건가. 이는 과거 여초에서 등장했던 ‘남자라면 지하철에서 팔 들고 매너손 해주세요.’라는 태도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때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비웃었는가. 펜스 룰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너희와 소통하지 않겠다.’라는 태도. 그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p.s. 오늘 개인적으로 너무 짜증나는 일이 있어서 속상했고 다른 글을 쓸려고 했는데 먼저 이 글을 짜증나서 써 버렸네요. 글은 영화 전문 글을 계속 쓸 거지만 가끔 이런 글도 올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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