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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더 선샤인 인> - 햇살을 찾아가는 순간


* 개와 소녀
  
소녀는 살짝 치마를 올려 팬티를 보여주고 개는 그런 소녀를 향해 입을 벌린다. 이자벨은 화장실에서 친구에게 은행가인 유부남 뱅상을 개에 비유한다. 그가 늙고 못생긴 부인과 정사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이자벨은 그 모욕감에 성적 판타지를 완성시킨다. 헌데 그녀는 뱅상과의 섹스 중 그가 자신을 모욕하자 그 환상에서 깨어난다. 그의 말 한 마디에 기분을 잡친 것이다. 그리고 이자벨은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한탄한다. 만약 개가 뱅상이고 소녀가 이자벨이라면 그림은 영화의 첫 장면, 이자벨과 뱅상의 정사 장면처럼 조금 더 자극적인 표현을 보여야만 했다. 이자벨은 뱅상에게 모든 걸 주지 않는다. 치마를 살짝 올린 소녀처럼 개를 자극하기만 한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뱅상은 자신의 판타지를 완벽하게 채우기 힘든 남성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의 정사 장면 후 술집 장면에서 더 자세하게 드러난다. 뱅상은 이자벨을 모욕했던 잠자리 장면처럼 술집 바텐더에게도 고압적이며 거만한 자세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런 자세에 이자벨은 반감을 표한다. 그녀가 뱅상을 만나는 이유는 그가 그녀의 성적 판타지를 채워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 역할의 가치보다 뱅상이라는 인간 그 자체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겨졌을 때 그녀는 뱅상과 거리를 두고 그를 만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남자는 연극배우다. 그는 자신의 일에 권태를 느끼지만 그의 팬들은 연기에 열광한다. 이혼을 생각하는 그는 이자벨에게 감정을 표한다. 그런데 이 남자, 너무 아이 같다. 이혼을 말해서 한 줄 알았건만 자기 혼자만의 생각이고 자신의 생각을 이자벨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이자벨은 이 남자에 대해 알고 있기에 자신감 있게 ‘네가 제대로 말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자벨은 이 두 남자와 모두 정사를 나눈다. 그리고 그들과 헤어진다. 첫 번째 남자는 거만하고 고압적이며 두 번째 남자는 아이 같다.그녀에게는 0번째 남자가 있다. 그래, 있다고 말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프랑수아는 부드러운 남자이다. 그와의 사이에서 이자벨은 아이를 낳았다. 두 남자와 헤어진 후 그녀는 다시 프랑수아를 만난다. 헌데 프랑수아가 잠자리에서 한 행동 하나가 그녀의 마음을 찢어버린다. 그의 행동을 가식이라 여긴 그녀는 프랑수아와도 거리감을 둔다. 프랑수아는 강요하는 남자가 아니다. 그는 10살짜리 딸을 둔 엄마 이자벨에게 유부남들을 잠자리에 들이지 말라는 말 대신 딸에게 우울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는 가정을 생각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남자지만 이자벨이 원하는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일 때 그녀는 마음을 접는다. 



* 사랑이 필요한 여자, 이자벨


이자벨은 섹스는 필요 없지만 사랑은 꼭 필요한 여자다. 그녀는 주말에 섹스를 했느냐는 뱅상의 말에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허기진 마음을 달래줄 상대를 원하지 몸을 달래줄 상대를 원하지 않는다. 그녀가 소파에 누웠을 때, 그녀는 자위 대신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한다. 그녀에게 장화는 성적인 매력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동등한 위치에 서고 싶다는 열망을 상징한다. 이자벨에게 섹스란 사랑의 증명이다. 그녀는 만난지 얼마 안 된 마크에게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한다. 그녀는 마크와 몸을 섞고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증명을 받고 싶어 한다. 헌데 이렇게 사랑을 원하는 그녀는 왜 남자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왜 스커트를 살짝 들어 올린 소녀처럼 그들을 온전하게 품지 않는 걸까.


이자벨은 예술가다. 그녀는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이다. 동시에 여러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그녀에게 사랑은 허하기에 필요하지만 완벽을 추구해야 하는 과업이다. 그래서 생선가게에서 추파를 던지는 남자는 철저하게 무시하면서도 한 번 같이 춤을 춘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는 마음을 연다. 자신만의 기준이 명확하다. 그 명확한 기준 때문에 그녀는 사랑을 얻지 못한다. 뱅상에게서 채운 성적 판타지는 불쾌함이 자신을 향하자 버리고 연극배우의 어설픈 사랑은 그의 미숙함 때문에 배제한다. 프랑수아는 자신이 알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에 환멸을 느끼며 친구 파브리스의 조언에 운명처럼 만난 실뱅에게 반감을 품게 된다. 때론 사랑에는 콩깍지가 필요하다. 세상에는 약점 없는 사람 없고 단점 없는 사람 없다. 헌데 이자벨은 이런 약점과 단점을 파고들며 사랑을 거부한다. 그리고 거부된 사랑을 탓하며 ‘세상에 왜 내 짝은 없는 거야!’라며 한탄한다. 이 여자, 참 어렵다.



* 흐린 하늘은 길지만 맑은 하늘은 짧다.


이 영화에는 소녀와 개 그림 말고도 다른 그림이 하나 더 등장한다. 매일 하늘을 관찰하고 그렸다는 그림이다. 이 그림의 작가는 흐린 날은 더 하늘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연애란 게 그렇다. 살면서 외로운 순간, 정말 누군가를 사귀고 싶은 순간은 잠깐이다. 이런 짧은 순간을 채우기 위해 택한 연애는 효율로만 따지자면 정말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사랑은 짧은 순간-흔히 말하는 콩깍지가 씌워진 시간이 지나가면 권태에 빠지고 싸움이 잦아지게 된다. 그 순간부터 맑은 날은 줄어들고 흐린 날이 길어지게 된다. 그런 흐린 날 속에서 남녀는 서로의 단점을 더 자세히 관찰하고 환멸과 짜증을 느끼게 된다. 흐린 하늘이 더 관찰하기 쉬운 거처럼 말이다.


이자벨은 항상 맑은 날을 원한다. 이 맑은 날은 완벽한 사랑이다. 그녀는 뱅상이, 연극배우가, 프랑수아가 그녀를 완벽하게 채워주길 원한다. 그들이 단점을 보여주지 않으며 항상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주길 원한다. 헌데 그녀는 20~30대의 선택권이 많은 여성이 아니다. 그녀는 50대이며 만날 수 있는 남자는 한정되어 있다. 만약 이자벨이 20~30대였다면 영화의 분위기와 결말은 달랐을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결합까지 이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면 감독은 50대의 늙은 여성을 내세워서 ‘봐봐, 저렇게 꿈같은 사랑만 원하니까 결혼도 못하지. 얼마나 한심하니.’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자벨의 모습은 추하지도 한심하지도 않다. 그녀는 많은 남성들이 매력을 느낄 만큼 성숙하고 당당하다. 지적인 면에서도 사회적인 위치에서도 육체적인 아름다움에서도 그녀는 빛나는 존재다.


영화는 줄리엣 비노쉬라는 아름답고 지적인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를 보여준다. 이자벨이 사랑을 찾지 못한 이유는 자신이 빛나는 존재라는 걸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빛으로 다른 사람을 감싸줄 수 있다. 헌데 그 사실을 모른 채 자신을 완성시켜 줄 수 있는 사랑을 찾는데 열중한다. 그녀의 인생은 이미 그녀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데 자꾸 누군가를 만나야만 자신이 채워질 수 있다 여기는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이자벨의 사랑에 대한 집착과 그녀의 존재가치를 동시에 보여준다. 50대의 이자벨은 그 어떤 여성들보다 아름다우며 빛난다. 이제 그 빛을 스스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녀에게 사랑은 채우는 게 아니다.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이다. 날씨는 맑다가도 흐려지기 마련이다. 흐려지는 게 싫어 맑은 날만 찾다 보면 시간은 허무하게 흐르고 또 흐르게 된다. 구름이 사라지면 해가 비치기 마련이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 빛을 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자세라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p.s. 사진들은 너무 얼굴이 주름지게 나왔는데 영화에서는 줄리엣 비노쉬는 여전히 예쁘더군요. 나이가 50대임에도 말이죠. 이 작품의 경우 전형적인 프랑스 영화이기에 프랑스식 유머에 익숙하신 분, 대화와 인물 간의 관계로 이뤄지는 프랑스식 영화 전개에 익숙하신 분이 아니면 욕이 나올수도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 보고 나오는데 안 그래도 몇몇 분들이 욕 좀 하시더라고요ㅎㅎ 


p.s. 씨네큐브는 처음 가봤는데 c열에 61번이라 '이게 뭐지?'했습니다....... 광고가 없고 음식물 반입이 안 되어서 그런지 영화 보기는 너무 좋은 환경이더군요ㅎㅎ 다만 항상 느끼지만 세상에는 민폐 커플이 너무 많습니다. 영화관에서도 버스에서도....... 꼭 꼴사납게 구는 남자 옆에는 그런 걸 좋아하는 여자들이 있더군요.......ㅎㅎ 공공장소나 대중교통에서는 예절 좀 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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