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등>, <아이, 토냐>, <당갈>
<4등>에서 광수는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 기대되는 수영 선수였다. 하지만 그는 동네 어른들과 도박을 하느라 합숙 훈련에 늦고 이 문제로 코치에게 폭행을 당한다. 폭행에 화가 난 광수는 숙소를 떠나고 폭행 문제를 기자에게 고발한다. 하지만 여론은 광수에게 나쁘게 돌아가고 그는 수영 선수를 포기하게 된다. 시간이 지난 후 광수는 재능은 있지만 대회에 나가면 4등만 하는 준호의 코치를 담당하게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1등을 만들어 특기생으로 대학에 보냈으면 하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자신의 방식에 토를 달지 말아 달라 말하는 광수. 그리고 광수는 체벌로 준호를 가르친다. 영화에서 광수는 준호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기 싫지? 어? 도망가고 싶고. 그때 잡아주고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다. 내가 겪어보니 그렇더라.’라고.
우리나라의 교육은 일본식 체벌에 물들어 있었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매를 들었고 이것이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라 여겼다. 체벌 금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나왔던 반론이 교권 추락이었다. 체벌이 없으면 학생들을 통제하기 힘들다. 이처럼 체벌은 교육과 가까이 여겨져 왔다. 엘리트 체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좋지 않은 아이들도 엄격한 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처럼 타고난 뛰어난 운동신경이 있지 않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엘리트 체육을 탄생시켰다. 한때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큰 스포츠 행사는 이념과 국익을 위한 자리로 여겨졌고 이를 위해 국가는 많은 금액을 엘리트 체육인 양성에 투자하였다.(그리고 그러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올림픽 기간에는 태릉선수촌으로 선수들을 입소시켜 훈련을 하는 엘리트 체육을 택하고 있다. 또 대학 입시에 있어서도 엘리트 체육인 양성을 위한 체대 입시의 열풍도 상당하다. 문제는 이런 엘리트 체육에 있어 상당한 혹사와 체벌, 그리고 부정부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야구를 예로 들자면 스트라이크 존을 잡아주는 심판이 경기를 주도할 수 있기에 학부모들은 심판에게 식사대접은 물론 선물을 주기도 해야 한다. 어떤 심판은 경기가 있는 양쪽 학교의 학부모에게 식사를 얻어먹었다고 한다. 혹사와 체벌은 선수의 기량 향상뿐만이 아닌 코치와 감독의 성과와도 연결되어 있다. 학원가를 지나가다 보면 현수막이 커다랗게 달려 있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현수막은 학원의 성과를 광고하는 것이고 이 성과를 보고 찾아오는 학부모들이 존재한다. 학원 체육 역시 마찬가지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하며 이 성과가 자신들의 생업 광고와 연관되어 있다.
학교라고 다를 바가 없다. 학교 단계에서 좋은 성적을 낸 감독이나 코치는 그것이 업적이 되어 프로팀의 부름을 받을 수 있다. 한국 축구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학원 축구는 당장의 성적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유소년 단계에서 체계적인 훈련보다는 승패를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체벌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꼭 신체적인 손상을 주는 것만이 체벌이 아니다. 신체적인 고통도 체벌의 범주에 해당한다. 어린 시절부터 가해지는 이런 체벌은 선수 자체의 의지나 악바리 근성보다는 학부모 또는 코치의 사적인 욕심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훈련방법으로 성장해 온 선수들에게는 운동이 삶의 전부이며 무조건 이기는 게 자신을 증명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희대의 쌍년 토냐 하딩의 이야기를 다룬 <아이, 토냐> 역시 이 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머니 라보나 골든은 딸 토냐 하딩에게 재능이 있다 생각하고 독하게 훈련을 시킨다. 신체적인 폭력은 물론 심리적인 강압도 서슴지 않는다. 토냐는 승부욕이 강한 체질로 성장한다. 스포츠에서 말하는 악바리 근성이 그녀에게 박힌 것이다. 그리고 그 원천은 어머니에게 있다. 좋게 말하자면 강하게 키운 것이나 나쁘게 보자면 오직 승부의 세계에서 승리만이 의미가 있게, 그녀가 당한 고통이나 수모는 모두 승리를 위해서만 희석될 수 있다는 논리로 토냐를 가르친 것이다. 토냐가 최악의 남자 제프와 사랑에 빠진 건 그녀의 주변 환경이 영향이 될 수 있겠으나 피겨 스케이팅만을 위해 살아와 삶의 다양한 즐거움을 맛보지 못했던 그녀에게 극단적인 색다름을 주었기에 나쁜 방향으로 빠져 들어간 것이라 생각한다.
토냐 하딩은 미국 최초로 세계 선수권에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켰으나 동료 선수를 폭행해 논란이 되었던 이다. 그녀는 강압적인 폭력과 체벌로 최고의 선수가 되었으나 인성이나 환경 등 하나의 인간으로써 누려야 될 권리를 얻지 못했기에 폭행 사건에 휘말렸고 결국 희대의 쌍년이 되고야 말았다. 국내에서도 이런 인성이나 환경의 문제가 도마에 올랐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엘리트 체육인들의 경우 장점이 많다. 우선 체력이 좋으며 끈기와 인내력이 상당하다. 여기에 오랜 합숙훈련을 통해 위계질서에 적응이 빠르며 인간관계도 원활하다. 헌데 이들 중 조폭 등 사회의 암적인 영역으로 빠지는 이들도 많다. 이는 환경이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성적이나 인성 같은 기초적인 영역을 신경 쓰지 않는 한국 엘리트 체육 교육은 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짧은 기간 이후의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
영화 <코치 카터>에서 고교 농구팀 코치 켄 카터는 학생들에게 학업을 신경 쓰지 않으면 농구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학생들을 대학에 진학시켜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자 한다. 그래서 하기 싫은, 못하는 공부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 엘리트 체육은 공부를 등한시 한다. 학교 맨 뒤에서 수업 시간 내내 잠자는 운동부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있고 우리와 다른 길을 간다고 생각하기에 교사들도 그들을 터치하지 않는다. 이런 교육법 때문에 그들에게는 운동이 전부이며 승리가 모든 걸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최근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전인교육의 혜택을 이들은 전혀 누리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게 실정이다. 최근 이런 엘리트 체육 때문에 문제가 된 곳이 빙상연맹이다. 사실 이들의 선택은 엘리트 체육을 지향해 온 한국사회에 있어 잘못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가장 이길 확률이 높은 선수를 밀어주고 이런 선수에게 특별훈련을 시킨다. 이 과정에서 선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체벌이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선후배 관계의 꼰대질은 어느 정도 눈을 감아준다.
하지만 이게 옳은 것인가 하는 질문에는 의문이 따른다. 요즘은 냉전시대가 아니다. 또 대한민국은 체육으로 나라를 홍보해야 할 만큼 부족한 국가도 아니다. 세계 경제 20위권 안에 드는 경제 강국이며 문화산업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국가다. 이런 국가가 뭐가 아쉽다고 올림픽 성적에 열을 내는가 말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올림픽 열풍도 많이 식어가는 추세다. 금메달을 땄다고 스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개성과 스토리를 갖춘 이들이 스타에 올라선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바로 <당갈>이다. 이 영화는 전직 레슬링 선수였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금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한 마하비르가 자신의 두 딸을 레슬링 선수로 키워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과연 딸들에게 강요된 아버지의 꿈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마하비르는 두 딸이 남자 아이들을 패고 오자 힘이 좋다고 여기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운동을 시킨다. 이 과정에서 딸들은 몸집을 불리고 머리를 남자처럼 깎는다. 저항도 하지만 아버지는 멈추지 않는다. 결국 딸 기타는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두 딸은 합쳐 50개가 넘는 메달을 따는 성공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꿈의 강요는 과연 옳은 선택일까?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처럼 ‘끝이 좋으면 다 좋아’가 정답인 걸까? 앞서 이야기한 <4등>의 준호는 수영을 좋아하는 아이지만 광수의 폭력에 수영을 그만둔다. 그 폭력 덕분에 메달은 따지만 몸과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은 것이다. 만약 준호의 상처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고통을 참고 계속 수영을 했다면 성공이라는 영광만으로 그 상처를 감쌀 수 있을까.
<당갈>의 두 딸은 레슬링에 흥미가 있었던 것도,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여성으로써 한창 예뻐 보이고 싶은 나이에 살을 찌우고 머리도 남자처럼 치게 된다. 성공은 부녀간의 갈등과 두 딸의 아픔을 봉합하는데 성공하지만 한끝 차이로 실패가 남게 되었다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아버지의 이야기로 끝을 냈을 것이다. 영화는 인도의 낮은 여성 인권을 방패로 삼고 있다. 기타와 바비타의 친구는 결혼만이 인생의 전부인 여성의 삶을 말하며 적어도 그녀들의 앞날을 신경 써주는 마하비르의 자세를 칭찬한다. 결국 시대적으로 보았을 때 마하비르는 당시로는 진보적인 인물이었으나 현재의 시각으로 그를 바라보자면 딸들의 미래를 아버지의 손으로 결정한 그 선택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는 <4등>의 준호 엄마가 폭행 사실을 알고서도 성적을 위해 광수에게 코칭을 맡긴 거처럼, <아이, 토냐>에서 토냐의 엄마가 딸의 성공을 위해 폭력과 강압을 사용한 거처럼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된다는 엘리트 체육의 잘못된 방식을 보여준다. 엘리트 체육에 대한 찬반은 알게 모르게 갈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국가라는 이름을 달고 뛰면 최상의 성적을 내야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 한국축구의 실패에 대해서도 악바리 근성이 사라졌다며 욕하는 이들이 있다. 2002년의 성공은 한국에서 개최하는 월드컵의 성공을 위해 K리그가 6개월을 선수합숙을 허락하면서 거둔 성과였다. 결국 K리그의 희생이 4강 신화를 이룬 것이다. 이처럼 꼭 무언가를 희생해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그리고 그런 희생을 통해 결국 결과를 창출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엘리트 체육과 다를 바가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엘리트 체육 대신 생활 체육 위주로 개편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국제대회 준비를 하는 유럽 등 다른 나라의 선수들처럼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말한다. 더 이상 국제대회 성적이 국가에 영광이라 할 만큼 의미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운동장이 없는 학교가 있고 헬스장에 다녀야 운동이 될 만큼 한국은 생활 체육이 약하고 그런 문화가 자리 잡고 있지 않다. 물론 생활 체육이 무조건적인 답이라 할 순 없다. 여전히 엘리트 체육의 수요는 엄청나며 국제대회 기간만 되면 국민들은 열광한다. 다만 매번 터져 나오는 엘리트 체육의 문제, 입시 선발부터 선수들의 범죄 문제까지. 이런 다양한 문제에 있어 해결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