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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단점이 더 도드라졌던 영화, <인랑>


김지운 감독은 2년 전 <밀정>(2016)을 통해 750만 관객을 동원하며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밀정>은 다음해 5월 열린 제5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김지운 감독에게 영화부문 감독상을 안기기도 했다. 이로인해 김지운 감독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졌다. 개인적으로 그가 일본애니메이션 <인랑>을 영화화 한다고 했을 때 기대되는 점과 걱정되는 점이 있었다. 기대된 건 김지운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작품 속 액션을 극대화시킬 것이란 점이었고 걱정되는 점은 '스토리'였다. 

사실 원작 애니메이션에는 2018년을 사는 한국 대중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감독 본인도 지난 20일 진행된 GV에서 이 점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전후 시대 감독인 오시이 마모루(애니메이션 <인랑>의 각본을 쓴 감독으로 <공각기동대>로 유명하다)는 허무주의적인 느낌을 애니메이션에 담아냈다.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특기대 후세는 본인을 상징하는 늑대가 빨간망토로 상징되는 여주인공 '케이'를 잡아먹을 것이라는 공포에 시달리지만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후세는 집단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으며 빨간망토 케이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숙명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온다. 


문제는 이런 스토리가 2018년 대한민국에서 통할 것이냐다. 전쟁 후인 1960년대를 배경으로 갈 곳 없는 인간이 무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애니메이션 <인랑>의 이야기와 집단에서 벗어나 개인을 향해가고 있는(또 그런 것을 추구하는) 현재의 상황은 일치되기 힘들다. 또 원작은 주인공 후세의 내면적인 갈등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그가 품는 환상을 통한 절망과 고통을 자주 장면으로 다룬다(예를 들면 늑대 무리가 잔혹하게 케이를 잡아먹는 장면 같은). 그러나 이는 상업영화에서는 다루기 힘든 지점일 것이다. 

이에 김지운 감독은 상영시간을 대폭 늘리면서 새로운 인물들을 투입하고 이야기 전개에도 변화를 줬다. 물론 액션 부분은 대중들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켰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특기대가 펼치는 액션은 강력하고 빠르며 세련된 느낌을 준다. 특히 타격감 부분엔 상당히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총알을 아끼지 않는 건 물론 벽을 부수는 장면에서도 힘이 느껴졌다. 수로관 액션 장면의 경우, 원작에서 포인트가 된 지점인데 나름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압도적인 힘에서 오는 공포'를 담아내야 했던 장면인데 안타깝게도 영화에서 '압도적'이라는 건 관객들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마블 영화에 비해 DC 영화의 흥미가 떨어지는 이유는 슈퍼맨이라는 캐릭터가 혼자 너무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맨만 등장하면 상황이 정리되니 관객들은 위기의 상황이 닥치면 슈퍼맨이 나타난다는 공식 등을 인지한다. 

김지운 감독은 흥미가 떨어질 수 있었던 수로관 전투 장면에서 적당한 흥미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압도적인 힘으로 인한 공포를 느끼도록 액션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이전 작품에서도 이런 장면 구성에 능했다. 화면을 폼 나게 잡아낸다. 일본애니메이션이 원작이기 때문에 '코스프레'로 비칠 수도 있었지만, 그의 손을 거치면서 세련된 SF 액션 영화로 재탄생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영화도 소설처럼 어느 정도의 '문법'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상업영화에서는 이런 문법이 더욱 도드라진다. 관객들은 영상을 보지만 동시에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려 한다. 스토리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스토리를 포기한 채 영상미를 자랑하는 감독들이 있지만 그런 감독들은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한 마디로 상업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면, 어느 정도 관객의 입맛을 맞출 줄 알아야 한다. 

<인랑>의 장르는 SF, 액션이지만 캐릭터와 감성은 김지운 감독의 장기라 할 수 있는 누아르에 가깝다. 남자 주인공 임중경(강동원 분)은 과거에 아픔을 겪었으며 과묵하고 외로운 늑대와 같다. 여주인공 이윤희(한효주 분)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가슴 아픈 상황과 비극적 운명에 놓여 있다. 전형적인 누아르 주인공들을 보는 듯한데, 이런 설정이 도드라지면서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이유는 원작과는 달리 이윤희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극 중에도 등장하는 '빨간망토' 이야기는 결국은 이어질 수 없는 두 남녀의 비극을 의미하는 아주 중요한 소재다. 동화 속 늑대는 작품 속 특기대인 임중경을, 빨간망토는 반란군 섹트의 이윤희를 의미한다. 결국 늑대가 빨간망토를 잡아먹는다는 게 동화 속 결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소재가 대다수의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는 허무주의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이 느꼈던 특정한 감성이기에 공통으로 통용되기 힘들다. 왜 늑대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었는지, 후세가 늑대인 건 알겠지만 케이가 왜 빨간망토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원작도 충분히 납득 가능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이 소재를 그대로 가져오기로 결심했다면, 영화는 비극으로 치닫는 주인공들을 이야기 해야 했다. 한데 김지운 감독은 두 남녀가 가장 아름다운 로맨스를 이야기 하려는 순간, 이 '빨간망토' 이야기를 꺼낸다.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펼쳐지는 잔혹한 빨간망토의 이야기, 그리고 이어진 두 주인공의 키스는 원작을 본 이들에게는 어이없음을,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는 언밸런스한 느낌을 준다. 이는 결말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원작에서 빨간망토 이야기를 들으며 변해가는 후세의 얼굴은, 결국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아픔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영화는 이 지점을 그저 임중경의 내적 갈등으로 소비시켜 버린다. 그러다 보니 몇몇 관객들은 안 그래도 공감이 가지 않는 빨간망토 이야기에 '왜 임중경이 저런 반응을 보이나' 하는 의문을 품게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더불어 원작과 달리 늘어난 이윤희 역할은 작품 전체의 감정을 일정하게 이끌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감독은 원작과 다른 결말을 택했기에 굳이 늑대가 느끼는 감정에 깊게 몰입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여주인공의 비중을 늘린 건 스토리에 살을 붙이는 데 유용했을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멜로의 색깔이 너무 진해진 것은 문제다. 멜로가 주가 아닌 작품에서 남녀 주인공의 감정을 모두 보여주는 로맨스의 방식을 택하다 보니, 로맨스는 있는데 관객에겐 그 감정이 확실하게 와닿지 않는 상황이 연출됐다. 

더구나 원작의 로맨스는 약간의 페이크(fake)를 지녔다는 점에서 완벽한 사랑의 감정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진득하게 로맨스를 보여주는데 그 대표적인 장면이 임중경과 이윤희가 비밀 아지트에서 서로의 감정을 털어놓는 장면이라고 본다. 이미 관객들이 알고 있는 감정을 굳이 등장인물들의 입으로 내뱉게 하는 이유는 상대에게 내 감정을 알아달라는 호소이다. 이들은 진한 로맨스를 펼치고 있는데 영화는 원작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이들의 로맨스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원작의 로맨스가 가슴 아팠던 건 이들의 사랑이 '가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때문이었는데, 영화는 이 사랑을 지키고자 하니 감정적인 측면에서 이어지는 느낌이 부족하다. 

캐릭터를 소모적으로 사용했다는 점도 아쉽다. 한상우(김무열 분)라는 악역 설정은 칭찬할 부분이다. 극의 전체적인 균형을 잡아줌과 동시에 긴장감이 적을 수 있었던 이야기에 힘을 더해주었다. 배우 김무열의 물오른 악역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그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은 그저 소모적인 역할만 하였다. 

특히 미경(한예리 분)과 철진(최민호 분)이 이런 식으로 가볍게 소비된다. 미경은 섹트의 실상과 이로 인해 공안부에 이용당하는 윤희의 현재 상황을 강조하고 중경을 위기에서 한 번 구해내기 위한 캐릭터로, 철진은 상우의 잔악함을 강조하기 위한 인물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장진태(정우성 분) 캐릭터 또한 마찬가지다. 임중경과 장진태의 마지막 결투 장면은 아쉬움을 넘어 너무 예상이 뻔해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김지운 감독은 이전 작품에서도 비슷한 단점을 보여줬다. 


영화 <밀정>을 예로 들자면,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 이정출(송강호 분)이 의열단 리더 김우진(공유 분)을 통해 독립운동을 하기로 마음을 바꾸는 과정에서 관객들은 의문을 품게 된다. 충실한 일제의 앞잡이였던 그가 특별한 계기 없이 말 몇 마디에 독립 운동을 돕는다니... 물론 이런 의심 덕분에(?) 관객들은 이정출이 과연 진심으로 도울 마음이 있는 걸까 아니면 표면적으로만 그러는 것일까 생각하며 긴장감을 놓지 못하지만, 이는 결국 감독이 스토리를 통해 관객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물론 초반 의열단 리더 김장옥(박희순 분)의 죽음이 이정출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지만, 이는 마지막에야 확실하게 공개돼 영화가 진행될 때는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인랑>은 김지운 감독의 단점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김지운 감독은 집단 속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으나, 정서적인 공감대가 없는 이야기는 감독이 담아내고자 하는 주제의식까지 관객을 데리고 가지 못한다. 화려한 영상미도 좋지만 조금만 스토리 연결에 신경을 썼다면, 그래서 예측 가능한 전개와 진부한 멜로가 아닌 신선함을 주었다면 김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함과 더불어 관객들의 주목을 받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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