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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일 순 없는 건

영화 <포스 마쥬어>


필자가 처음 본 가족 영화는 <마빈의 방(1996)>이라는 작품이다. 메릴 스트립, 다이안 키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라는 연기파 배우들이 총 출동한 이 가족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다이안 키튼에게 '왜 자신에게 잘 대해주느냐'라고 묻는 장면이었다. 모두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만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다이안 키튼은 말한다. "나는 네 이모잖니."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준다.

가족 영화들이 다루는 주제는 '가족 안 갈등의 봉합'이다. 가족은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서로가 받은 상처를 용서하고 치유한다는 식이다. 가족 간의 문제는 어떤 이유에서건 결국 회복될 수 있다는 게 가족 영화의 특징이다. 지난 달 개봉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더 스퀘어>의 루벤 외스트룬드 감독이 만든 영화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은 이런 가족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소한 해프닝이 만들어 낸 균열이 가족 전체를 흔드는 이야기 말이다.


토마스는 오랜만에 가족과 휴가를 즐기기 위해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스키 리조트를 찾는다.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토마스 가족. 둘째 날 야외 리조트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눈사태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운 눈덩이가 내려온다. 자신의 지갑과 핸드폰을 챙긴 토마스는 아내 에바의 외침에도 불구 혼자 리조트 안으로 도망친다. 제목인 'force majeure(불가항력)'처럼 토마스의 생존욕구는 그를 도망치게 만들었고 이 선택은 가족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영화 속 토마스와 에바의 관계는 도망치려는 남자와 잊지 못하는 여자다. 토마스는 자신이 한 행동에서 도망치고 싶어한다. 그는 사실을 부인하며 자신의 기억은 다르다고 항변한다. 에바는 토마스에게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한다. 특히 토마스가 진실로부터 도망치려 하면 할수록 '반복'되는 행동에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진다. 영화는 이 반복에 포인트를 둔다. 평범한 가족 간의 갈등은 큰 사건을 통해 생긴 구덩이가 아니라 작은 사건 하나를 통해 금이 간 신뢰가 반복을 통해 점점 커지는 현상을 보인다. 산을 타고 내려오는 눈덩이처럼 말이다.
 


이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서로에 대한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기존의 가족영화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의 탄생(2006)>을 예로 들자면 형철(엄태웅 분)이 데려온 20살 차이 나는 여인 무신(고두심)과 그녀의 딸 채현(정유미 분)은 형철의 누나 미라(문소리 분)와 큰 갈등을 겪지만 시간의 흐름은 그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만들어준다. 반복된 일상 속에서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갈등이 옅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포스 마쥬어>의 부부는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사이가 더 멀어진다. 에바는 눈물로 토마스를 질책하며 토마스는 남성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가장의 모습으로 화장실 거울을 바라본다.

이런 갈등의 원인은 개인과 가족의 관점의 충돌이라 할 수 있다. 한 개인으로선 재난 상황에 생존이 최우선의 선택이지만 가족, 그것도 가장의 입장에서는 희생이 선택지의 최상단에 자리 잡기 마련이다. 가족이라는 집단 안에서 토마스라는 개인은 역할을 배신했고 이는 집단 전체를 흔들게 된다. 아들은 엄마랑 아빠가 이혼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한다. 이때 화장실에 흐르던 유쾌한 클래식은 점점 어두워지더니 이내 토마스의 절규만이 들려온다. 인간 본성을 유쾌하게 풍자한 <더 스퀘어>처럼 <포스 마쥬어> 역시 인간의 본성을 유쾌하게 풍자한다. 다만 슬픈 점은 그 대상이 가족이며 균열이 반복에 의해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깊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의 결말 역시 묘한 느낌을 준다. 리조트에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버스 운전사는 운전을 엉망으로 한다. 이에 생명의 위기감을 느낀 에바는 버스에서 내리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승객들은 전원 버스에서 내린다. 이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첫 번째는 버스 기사를 믿고 계속 버스에 타는 것, 두 번째는 내려서 공항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에바와 승객들은 후자를 선택했는데 이때 버스에 끝까지 남은 여자가 있다.
 


이 여자는 에바에게 리조트에 와서 다른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편을 옹호하고, '바깥일로 바쁜 남자가 원하는 대로 즐기는 건 나쁜 게 아니'라며 믿음을 보였던 여자다. 에바와 가족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은 느리지만 마음의 근심 없이 공항을 향한다. 버스에 남은 여자는 어땠을까. 그녀는 아무런 근심 없이 믿음으로 공항에 도착했을까. 아니면 끝없는 의심으로 고통을 받으며 빠르지만 힘겹게 공항을 향했을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갈등을 봉합하고 시간의 흐름에 모든 원망과 서운함이 사라지길 원하는 마음이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한강 작가의 단편소설 <회복하는 인간>에서 주인공 '나'는 발목에 당한 화상을 방치하다 회복불능 상태가 되어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그 치료는 병으로 죽은 언니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해 치유 받을 수 없는 상처와 같다. 조금씩 회복은 되지만 근원적인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걸을 순 있지만 고통은 가시지 않는 것처럼 살아는 가지만 정신적인 고통에서 완전히 치유 받을 순 없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덮을 순 없다. 끝났다 여겼던 갈등의 골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더욱 깊어지며 상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상실은 재난의 수준에 이른다.

<포스 마쥬어>는 한 가장의 불가항력적인 선택 하나가 만들어낸 갈등을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덮을 수 없는 신뢰의 상처를 말한다. 기존의 가족영화들이 반복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면 이 작품은 반복을 통한 갈등의 심화를 보여준다. 해소되지 못한 갈등과 아픔은 회복은 될 수 있지만 치유는 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씁쓸한 웃음으로 담아낸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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