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이기적인 그대의 이름은 지식인

영화 <이, 기적인 남자>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영화과 교수인 이 남자는 40대 초반의 유부남이다. 학력, 재력, 건강 등 뭐하나 빠지지 않는 그가 원하는 건 학과 조교 지수이다. 그는 아내도 지수도 모두 자신의 여자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기적인 남자>는 한 이기적인 남자를 통해 한국 사회 지식인들이 품은 민낯을 풍자하는 영화이다. 배우 박호산이 연기하는 재윤이라는 캐릭터는 교육신화와 권위주의가 키워낸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내이다.


영화는 이런 재윤의 모습을 통해 한국사회가 지닌 지식인의 허물을 벗겨낸다. 겉으로 보이는 재윤은 스마트하고 젠틀하며 좋은 체격에 근사한 외형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아내 미현은 물론 조교 지수, 친구에게 행하는 그의 행동은 지식인이 지닌 사명이나 윤리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는 이런 재윤의 캐릭터를 네 가지 요소를 통해 더욱 부각시킨다.


첫 번째는 작품의 핵심 소재인 여자이다. 그는 학과 조교인 지수를 불러내 차에서 강제 스킨십을 시도한다. 아내가 있지 않느냐는 지수의 말에 '아내는 아내고 너는 너'라는 말로 아내와 애인을 따로 분리시킨다. 그는 여성을 도구처럼 취급한다. 이는 아내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아내와의 갈등에서 그는 두 가지 이유를 핑계로 아내를 붙잡으려 한다. 첫 번째는 아이다. 내 아이만은 양보할 수 없다, 아이가 있는데 어찌 이러느냐며 아내 미현을 설득한다.


    


두 번째는 외로움이다. 재윤은 사랑이 아닌 외로움으로 미현에게 애원한다. '우리 사랑했잖아'가 아니라 '나 외로워'라며 자신에게 와주기를 간청한다. 재윤의 머리는 '우리'가 아닌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는 아내를 움직이기 위해 자신의 처지와 입장만을 강조한다. 영화 속에서 그는 공부나 영화보기보다 운동을 더 많이 한다. 이는 그가 건장한 신체로 여성들에게 어필하고 싶은, 건강한 가정보다는 자신의 성적 만족을 추구하길 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세 번째는 지식이다. 그는 지적으로 우월한 사람인듯 훈계를 반복한다. 그 시작은 어머니다. 종편 채널을 보는 어머니에게 '가짜 뉴스'를 만드는 방송 좀 그만 보라며, 어머니 같은 사람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이라고 화를 낸다. 이 장면이 지식인의 위선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이후 어머니의 반응과 재윤의 자세이다. 어머니는 너는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 게 뭐가 있느냐고 말하고 재윤은 침묵한다. 


386 이전 세대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386 세대는 지식인의 양심으로 민주화 운동을 이뤄냈다. 그리고 이 386 세대가 쟁취한 산물에 편승한 게 재윤의 세대이다. 세대적인 문제에서 재윤은 어머니와 그 윗세대에게 눌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고 권위로 아래 세대를 누르자니 지수의 반응은 이전과 다르다. 교수의 권위에 주눅 들지 않으며 재윤의 궤변을 무시한다. 교수와 조교의 관계를 말하며 지수에게 훈계하는 재윤의 모습은 구차하기 짝이 없다.


네 번째는 도덕성이다. 도덕성이야 말로 재윤의 이기심 그리고 그가 얼마나 헛된 지적 자만에 빠져있는지 보여주는 요소다. 재윤의 도덕성은 0점에 가깝다. 불법 주차로 딱지가 붙은 차를 타고 음주 운전을 하고 단속을 피해 도망친다. 아내의 불륜을 의심해 모텔 주인에게 돈을 주고 CCTV를 살펴보기도 한다. 


    


사랑에 있어서도, 지식에 있어서도 이기심과 자만으로 똘똘 뭉친 이 남자는 도덕성이라는 인간성과 연결된 지점의 붕괴를 보여주며 위선을 드러낸다. <이,기적인 남자>는 자칫 저급한 인간의 저열한 이야기로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포장해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기적이지만 밉지 않은 연기를 선보인 배우 박호산이 있다. 재윤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동력을 불쾌한 매력 대신 시원한 바람으로 만드는 그의 매력은 작품의 중심을 잡아준다.


재윤에게 많은 부담을 주는 플롯의 구성이나 재윤-미현-지수 사이의 관계를 더 접착력 있게 잡아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박호산의 매력적인 연기와 지식인의 민낯을 유쾌하게 벗겨내는 스토리가 흥미롭다. 예상치 못한 소소한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작가의 이전글 여전한 변명을 흥미롭게 만드는 변주 <풀잎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