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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남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말하다

영화 <그때 그들>



정경유착, 언론장악, 회계조작, 뇌물, 여기에 문란한 여성관계와 막말까지. 다른 나라였으면 몇 번이고 물러나야 했지만 무려 4번이나 이탈리아 총리를 한 남자가 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지워버린 '문제적 남자'다. 국내에는 AC밀란의 구단주로 유명했던 그는 자신이 지닌 방송망과 신문을 활용해 성공한 기업가인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좌익 민주당을 대대적으로 공격하며 정권을 잡았다. 그의 집권 내내 이탈리아 정치와 경제는 쇠퇴하였다.
 
난니 모레티나 움베르코 에코 같은 이탈리아 내의 지식인들에게 큰 비판을 받았던 이 문제적 남자를 아카데미 수상자이자 현재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 중 한 명인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은 다양한 측면에서 그려냈다. <그때 그들>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인상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이다. 그의 모습은 크게 호색한, 사업가, 유머러스한 남자, 로맨티시스트로 나눌 수 있다. 그는 모델들과 섹스 파티를 즐기는 건 물론 자신이 찍은 여자들을 정계 또는 연예계에 진출시키기도 하였다. 영화는 지나칠 만큼 여성들의 몸매를 자주 시키며 베를루스코니의 '호색한' 면모를 강조한다.
    


그는 사업에 있어서는 냉철하고 열정이 넘친다. 실각한 후 집에서 지내는 그에게 아내 베로니카는 집 20채에 방송국 4개를 비롯해 그가 가진 재력에 대해 말한다. 그럼에도 베를루스코니는 무언가 아쉽다는 점을 강조한다. 70대의 그는 아직도 본인이 젊다고 여기며 여전한 권력욕에 취해 있다. 사업가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돈을 한 푼도 허투루 쓰려고 들지 않는다.

다만 이 과정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 감정적인 소모가 필요하다.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베를루스코니는 그 사업적인 열정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번호부를 보고 한 여성에게 전화를 건다. 이 장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난 인생의 시나리오를 알고 있죠."
 
그는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열정적으로 움직인다. 사업가는 모든 시나리오를 계산하고 이에 따라 움직인다. 그는 명철하고 동시에 냉정하다. 그래서 국가의 재산을 자신의 금고에 채워 넣을 줄 알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요직에 앉힐 줄 안다. 언론전에 능해 상대를 비방할 줄 알고 자신을 포장하는 법을 안다.

여자를 좋아하고 사업가의 두뇌를 뽐내는 그는 다른 작품들의 정치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두 가지 특징을 통해 그를 더 다채로운 인물로 만든다. 그는 여자들에게는 로맨티시스트의 면모를 보인다. 여기에 유머까지 장착하고 있다. 이탈리아 일반 대중은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듯한 베를루스코니의 모습에서 친근함을 느낀다고 한다.
 
베를루스코니의 첫 등장은 여성처럼 옷을 입고 화장을 한 채 아내를 깨우러 가는 모습이다. 그는 아내를 위해 꽃을 내밀고 자신을 희생해 웃음을 줄 수 있는 존재이다. 베를루스코니의 입체적인 캐릭터에서 핵심적인 주제의식을 뽑아내주는 존재가 세르조다.

이 영화의 인상적인 측면 두 번째는 이탈리아 사회가 왜 베를루스코니의 마수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섬 출신의 세르조는 여성의 몸을 파는 사람이다. 그는 평생을 강직하게 살아온 아버지가 위기에 처하자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자를 이용한다.
    


세르조는 이탈리아 사회의 두 가지 특성을 잘 안다. 첫 번째는 젊고 예쁜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는 없다는 점, 두 번째는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두 번째를 이루기 위해 첫 번째를 이용한다. 여자들을 잔뜩 모은 그는 베를루스코니의 저택 옆에 집을 잡고 매일 광란의 파티를 벌인다. 세르조가 베를루스코니를 노리는 이유는 권력과 자본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인생의 시나리오를 돈으로 쓴다. 그는 다시 정권을 잡기 위해 의원 6명을 매수한다. 그가 만들어 준다는 미래는 돈이다. 베를루스코니는 돈으로 행복을 산다. 그에게 행복이란 여자다. 그리고 세르조는 자신도 여자를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베를루스코니 집권 당시 텔레비전에는 온갖 성적인 쇼가 난무했다고 한다. 그 역시 3S정책(스크린, 스포츠, 섹스)을 통해 권력을 유지한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수준 낮은 퀴즈쇼와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은 젊은 여성들, 축구팀 AC밀란을 운영하는 그의 정책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그에게만 접근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헛된 환상을 심어주었다. 이런 환상성을 보여주는 게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 특유의 연출이다.

그의 난해한 연출은 해석의 어려움을 요하지만 동시에 시각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한밤중에 쓰레기차가 터지면서 튀어나온 음식물 쓰레기들이 환한 햇살 아래에서 광란의 파티를 즐기는 공간에 색색들이 원형 조각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기묘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도입부의 양과 결말부의 예수 석상은 절묘한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푸른 들판 위에서 집 안으로 들어간 어린 양은 벽걸이형 TV에서 상영 중인 퀴즈쇼를 보던 중 에어컨의 온도가 떨어지면서 죽게 된다. 기독교에서 어린 양은 사람을 의미한다. 포근한 집 안에서 멍청한 쇼프로를 보다 에어컨 온도가 떨어져 죽은 양의 모습은 현 이탈리아 국민들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예수의 석상은 망가진 희망을 상징한다.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서 건져낸 건 예수의 석상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해 광명의 길을 비춰줄 예수 그리스도 같은 인물을 원한다. 다시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 여기고 극진한 믿음을 보인다.
 
종교와 같은 믿음을 얻은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희생시키고 자신을 희생적인 인물로 포장하기 바쁘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건져진 예수의 석상에는 롱기누스의 창에 찔린 상처가 있다. 예수는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만 그 예수와 같은 신성화와 믿음을 요구하는 정치인들은 어린 양의 희생을 강요한다.

<그때 그들>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캐릭터는 다채롭게 포장하면서 그 안에 숨겨진 천박함과 욕망은 세련되게 표현해내는 기교를 선보인다. 동시에 '인생의 시나리오'가 돈으로 귀결되는 자본주의의 천박함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귀중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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