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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 해야 할 일을 담아낸 감성 좀비물

영화 <카고>



휴 잭맨은 본인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울버린'의 마지막을 <로건>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서 휴 잭맨은 동료들을 잃어버린 채 쓸쓸하게 살아가는 늙고 나약해진 울버린 '로건'을 연기하였다. 그렇게 남은 여생을 보낼 것이라 여겼던 로건은 악의 손아귀에서 탈출한 어린 엑스맨을 만나면서 알게 된다. 자신이 떠나기 전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를.


<카고>는 최근 시도되고 있는 '감성 좀비물' 장르이다. 기존의 좀비물이 공포와 스릴감의 극대화를 통해 원초적인 재미를 추구한다면 감성 좀비물은 멜로나 감동 코드를 통해 색다른 감성을 선사한다.


2013년 단편 영화를 장편으로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급작스럽게 퍼진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내륙은 엉망이 되고 만다. 앤디(마틴 프리먼)는 아내와 함께 배 위에서 생활을 한다. 그는 어딘가 생존해 있을 공동체를 찾기 위해 애를 쓴다.


내륙이나 버려진 배에서 식량을 챙기는 앤디의 가족. 어느 날 아내는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고 감염된 후 좀비가 되는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를 한 채 가족을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앤디는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좀비가 되기 전까지 함께 살아갈 것을 설득한다. 그리고 앤디는 좀비가 된 아내에 의해 감염되게 된다.

    


앤디는 자신이 죽기 전 딸 로지를 돌보아 줄 공동체를 찾아야 된다는 사명감을 지니게 된다. 그는 어린 딸에게 미래를 만들어주고자 한다. 그 미래에 자신이 없더라도 로지에게 삶을 살아갈 길을 개척해 줘야 된다는 의무감을 지니게 된다. 작품은 앤디의 이런 의무감을 세 가지 상황을 통해 독특하게 풀어낸다.


첫 번째는 제한된 시간이다. 보통 좀비물의 경우 좀비에게 물린 순간 감염이 진행된다. 실상 물린 순간 좀비화가 진행되기에 긴장감과 공포를 일으킨다. 반면 <카고>은 일정하게 제한된 시간을 두며 감정적인 소비를 일으킨다. 운명을 알지만 딸을 위해 헌신을 다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두 번째는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대재앙 앞에서 인간은 두 가지 모습을 보인다.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함께 살아가자는 인도적인 모습, 이 혼란스러운 순간을 기회로 이득을 취하려는 이기적이고 잔혹한 모습. 앤디가 만난 남자는 후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한 소년을 인질로 잡아 우리에 가둬두고 좀비들을 모이게 만든 뒤 처치하는 등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약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면모를 선보인다. 이런 잔인한 인간의 모습은 앤디가 지닌 인도주의적인 면모와 대비되며 감정을 고조시킨다.


세 번째는 원주민의 등장이다. 영화에서 좀비들의 습격을 이겨내고 이들과 맞서 유일하게 공동체를 유지하는 이들은 원주민들이다. 이 원주민들의 존재는 영화의 공간이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점에서 특별함을 지닌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은 백인들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학살을 당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백인들은 마치 처음부터 이 땅의 주인이었다는 듯 백호주의를 내세우며 지금도 이민자들을 향해 암암리에 폭력을 행사한다. 그들의 피로 쓰인 침략의 역사는 좀비 바이러스에 의해 또 다른 침략을 당하고 만다.



원주민들은 인간이 만든 침략의 역사를 벗어난 자연 속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자연과 같은 원형을 유지하려는 구심력은 좀비 바이러스라는 침략의 소용돌이를 견뎌낼 수 있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문명이 아닌 자연을 통해 인류의 성장과 구원을 말한다. 이를 사회적인 문제로 바라보자면 국제적인 환경 문제 또는 평화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다. 인간은 삶에 유한성이 있음을 알기에 그 유한성 내에서 최대한의 쾌락을 추구하려 한다. 미래보다는 현재에 충실하며 세대를 위한 자산의 축적보다는 자신을 위한 욕망의 실현에 충실하다.


<카고>는 이런 인식에 대한 위험을 촉구하며 현 세대가 미래 세대를 위해 해야 될, 떠나기 전 해야 할 일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로건>의 울버린이 노쇠한 몸을 희생해 가면서 미래를 위한 세계를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진한 여운을 느끼게 된다. <카고>의 앤디 역시 딸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남은 시간을 희생한다는 점에서 여운을 유발해낸다. 장편으로 길이를 늘이는 과정에서 원 단편이 주었던 강렬한 여운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다양한 시도와 감정적인 격화를 위한 노력은 이 좀비 감성물이 지니는 미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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