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리스>
이혼을 앞둔 부부, 제냐(마리아나 스피바크)와 보리스(알렉세이 로진)가 다툼을 벌인다. 아내는 집을 내놓았고 남편은 이혼이 자신의 직장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까봐 걱정이다. 문 뒤에 서 있던 부부의 아들 알로샤(마트베이 노비코프)는 어느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소리 없이 오열한다. 제냐와 보리스 중 어느 누구도 아들을 걱정하진 않는다. 화면은 그저 소리 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아들의 얼굴만 점점 클로즈업할 뿐이다.
부부는 각자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 보리스는 과거 제냐를 임신시키고 결혼했던 것처럼 새로운 여자를 임신시키고 그녀와 가정을 꾸려나갈 계획을 세운다. 제냐는 말수가 적은 남자를 만나고 있다. 그녀는 보리스의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자신에게 염증을 느껴 과묵하지만 자신만을 바라봐 주는 남자에게 끌린다.
두 사람은 서로가 찾은 행복에 열두 살 아들 알로샤가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알게 된 알로샤는 그들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영화 <러브리스>는 '사랑을 잃어버렸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쓸쓸하고 황량하게 조명한다. 전작 <리바이어던>을 통해 부정과 부패에 빠져버린 러시아의 모습을 웅장하게 그려낸 그가 이번엔 이혼을 앞둔 한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을 상실한 러시아의 현재를 보여준다. 이런 주제 의식은 각 인물이 보여주는 장면을 통해 극대화된다. 첫 번째는 아들 알로샤의 오열 장면이다.
알로샤가 부부의 다툼을 통해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오열하는 장면에서 그의 울음소리는 강렬하게 퍼져나가지 않는다. 감정이 극대화되는 장면에서 감독은 제냐와 보리스 중 누구도 아이를 보지 못하게 알로샤의 위치를 문 뒤에 두고 그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설정하였다. 알로샤의 표정을 보았을 때 그의 울음은 강한 슬픔을 지녔다. 그의 울음 소리가 제냐와 보리스에게 들리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더이상 알로샤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보리스가 내연녀와 정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정사는 형체를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어두운 화면에서 진행된다. 분명 보리스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임에도 그 행복은 어둠에 가려져 있고 그의 표정을 관객은 알 수 없다. 성적인 관능도, 감정적인 쾌감도 느껴지지 않는 정사 장면은 과연 보리스라는 인물에게 사랑이란 감정이 있는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이런 의문은 세 번째 장면인 보리스와 직장 동료와의 대화를 통해 더 깊어진다.
보리스의 직장은 러시아정교의 율법에 따른 딱딱한 분위기를 지닌 곳이다. 이곳에서 이혼은 개인의 자질과 관련된 문제로 여겨진다. 이혼한 사실이 직장에 알려질까 봐 가짜 부인과 아이를 직장 행사에 데려온 직원이 있다는 동료의 말은 사랑이 사라졌지만 그 형태의 유지를 강요하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정을 이루는 사랑이 완전히 사라졌음에도 사회는 사랑을 통한 관계의 회복을 유도하지 않고 형태의 유지를 강요한다.
이런 사회의 무책임한 태도는 알로샤 실종 수사를 맡은 형사 이반을 통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실종된 아이를 찾는 장면은 형사의 열정과 끈기 혹은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 때문에 따스함이나 슬픔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알로샤를 찾는 수사 장면은 건조하고 딱딱하다. 이반은 공권력이 아닌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 말한다. 그는 알로샤를 꼭 찾아야 할 하나의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배정된 '사건' 중 하나로 바라본다.
사랑이란 감정을 잃어버린 이들의 마음 속 빈 공간엔 갈증이 들어섰다. 작품에서 알로샤는 사랑을 의미한다. 러브리스(loveless)라는 제목 그대로 작품을 생각한다면 부부는 알로샤를 찾기 위해 애를 쓸 필요가 없다. 그들의 마음에는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사랑을 잃어버렸지만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을 주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과묵한 남자에게서 감정적인 동화를 원하는 제냐, 차디찬 정사에 몰두하는 보리스, 부모의 진심에 오열하는 알로샤까지 이 가족은 모두 사랑을 갈구하지만 남에게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알로샤를 찾는 수색 작업은 건조하고 서늘하다. 황량한 숲과 버려진 건물들, 어둠 속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수색에 나서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기계적이고 딱딱한 형사 이반의 반응은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이런 이들을 만들어낸 차갑고 어두운 공권력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사랑을 상징하는 알로샤가 돌아오길 바라지만 마음에는 사랑을 품지 않는다. 현대의 야경은 그 어떤 시대보다 밝고 찬란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어둠은 어떤 세대보다 짙고 깊다.
고독하기에 사랑을 원하지만 다른 이에게 자신의 사랑을 주고 싶지 않은 현대인들의 이기심과 두려움은 사랑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 <러브리스>가 보여주는 황폐하고 건조한 사랑의 상실은 역설적으로 목이 타는 사랑의 갈증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