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감성 스릴러 영화, 세 번째
<데스노트>라는 작품이 세계적인 열풍을 가져올 수 있었던 이유는 3박자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소재다. 이름을 적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노트. 마치 신과 같은 ‘죽음’의 권한을 가졌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롭다. 두 번째는 캐릭터다. 라이토와 L이라는 두 캐릭터는 완전히 상반된 매력을 보여준다. 철두철미하고 냉정한, 세상을 정화하겠다는 선한 욕망이 점점 개인을 위한 야망으로 변해가는 정석미남이라면 L은 허술하고 이상해 보이지만 천재성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빈틈이 많아 보이는 매력남이다. 작품에서 정의를 수호한다는 라이토는 사실상 악인데 오히려 주변에 사람들이 많다. 반면 이 악을 수호하는 L의 경우 교우관계가 드문 편이며 정체를 숨긴다는 캐릭터성 때문인지 친구가 없다. 그래서 이 둘 캐릭터의 브로맨스 역시 크게 탄력을 받는다. 마지막은 스릴감 넘치는 두뇌싸움이다. 소재가 좋아도 이야기가 나쁘면, 캐릭터가 좋아도 그 캐릭터를 살릴 내용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작품은 크게 성공할 수 없다. 이 작품은 계속 머리를 굴리고 또 굴리는 두뇌싸움이 일품이다. 그리고 이 두뇌싸움의 바탕에는 ‘데스노트’라는 소재가 가진 규칙의 완벽한 활용, 하나의 캐릭터로 허투루 소진하지 않는 철저함이 깔려 있다.
그러면서 감정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 이성의 끝은 결국 감성이다.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는 영화라도 재미가 없다면 그건 감성이 제대로 묻어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캐릭터들이 만드는 감정의 합은 엄청나다. 그게 만화에서 잘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지나치게 많은 글이 감정의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감정은 글보다 장면에서 더 깊게 나타난다. 그래서 영화 <데스노트>는 책보다 더 감성적인 면에서 힘을 낼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 <데스노트>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카네코 슈스케 감독의 무리하지 않는 연출(이 감독도 잡탕감독이라 자신만의 색깔이 연하다)이 책의 감정을 잘 살려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로운 작품 <데스노트: 더 뉴 월드>는 이런 감정의 연장선상을 보여준다. 헌데 이 연장선상이 좀 지나치다. 전작의 반복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키라’ 라이토가 죽고 10년 뒤, 인간세계를 재미있게 만든 키라에게 반한 저승의 왕은 6권의 데스노트를 지상에 떨어뜨리고 ‘제2의 키라’를 찾는다. 그리고 한 번 키라에게 당한 일본 경찰은 데스노트 특별수사 대책 본부를 세운다. 이름을 알면 노트에 적혀 죽을 수 있기에 전원 가명으로 활동 중인 이 본부에는 데스노트 마니아인 미시마와 L의 후계자인 류자키가 속해 있다. 6권의 노트 중 한 권을 가진 여자가 도심에서 사신의 눈을 이용해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추격하던 특별수사팀은 또 다른 노트를 가진 사람에 의해 범인이 죽은 것을 발견한다. 그 노트를 통해 만난 사신과의 대화를 통해 6권의 노트의 정체를 알게 된 수사팀. 그리고 컴퓨터 바이러스를 통해 자신이 ‘키라’라 말하는 이가 라이토의 영상으로 공격을 해온다. 새로운 살인극을 예고하는 새로운 키라. 이 새로운 키라는 6권의 데스노트를 손에 넣기 위해 수사팀이 가진 데스노트를 요구한다.
이 작품에 나오는 두 캐릭터 미시마와 류자키는 라이토와 L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가져왔다는 느낌을 준다. 두 사람이 브로맨스를 이루는 부분과 뒤의 반전에서 밝혀지는 정체에서 이들의 관계는 처음부터 라이토와 L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헌데 류자키는 L의 후계자답게 그의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반면 미시마의 캐릭터는 너무 연하다. 뒤의 반전을 위해 설계된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매력이 너무 드러나지 않는다. 내가 미시마를 라이토에 빗댄 이유 중 하나는 시엔의 캐릭터 역시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L을 류자키로 본다면 이와 대립되는 인물이 라이토, 즉, 시엔이 그 역할을 해줬어야 했다. 아니면 미시마+시엔의 합이라도 있었어야 했는데 두 사람을 합쳐도 한 사람의 몫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앞서 라이토와 L을 언급한 이유는 작품이 라이토의 환생 VS L의 환생 대결처럼 서로 컴퓨터를 통해 싸우는 거처럼 이 영화의 구조 역시 원작 <데스노트>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과 방식만 조금 바뀌었을 뿐, 원작의 대결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원작보다 훨씬 못한 캐릭터들의 매력은 향수는 느낄 수 있지만 새로운 매력 혹은 원작만큼의 매력은 전혀 느낄 수 없게 만든다. 이 작품이 원작을 다시 한 번 ‘리마인드’한다는 느낌을 주는 건 ‘데스노트’라는 소재와도 관련되어 있다. 영화는 데스노트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데 이는 초반부와 관련되어 있다. 신부가 등장하고 신부는 생을 마감해가는, 하지만 죽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스승의 부탁인 ‘죽여 달라’를 반신반의하는 길에서 주운 데스노트를 통해 실현시켜 준다. 그리고 사신을 만든 신부. 신을 믿는 그에게 ‘악마’의 존재 역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부는 키라가 그랬듯 세상의 ‘악’을 처단해간다.
신을 믿는 신부가 자신의 손으로 악을 처단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세상 모든 일의 결과를 주님의 뜻에 맡기는 신부가 주 만이 할 수 있는 ‘생명’에 손을 댄 것일까? 이는 데스노트가 깔고 들어가는 중심 소재 중 하나인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에 있다. 데스노트에서 경찰은 무능한 존재로 인식된다. 그들은 키라를 잡지 못해 L이라는 존재에게 손을 벌리며 자신들의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애를 쓴다. 이는 <데스노트: 더 뉴 월드>의 결말부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집단의 유지만을 위해 애쓰는 무능한 집단이라는 점이 말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원작이 가진 주제의식을 반복한다. 그런데 그 반복에 있어 앞서 보여준 세 작품, <데스노트>, <데스노트 - 라스트 네임>, <데스노트 – L>의 재탕을 보여준다.
류자키라는 캐릭터는 L에 활동성과 유머감각을 더한, 그러면서 친구 하나 없다는 점에서 비슷함을 가지고 있으나 그의 캐릭터는 가만 보면 <데스노트 – L>에서의 L 캐릭터와 유사점을 띄고 있다. 류자키는 L처럼 그가 가진 독특함 때문에 외롭게 살아온 인물이다. L 역시 마찬가지다. ‘요원’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코드네임으로 살아가야 했고 다른 이의 죽음은 물론 자신의 죽음 역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캐릭터였다. 소중한 게 없으니 말이다. 그런 L에게 소중한 사람들, 꼭 지켜야 될 사람들이 생겼다. 인류를 지키기 위한 적의 공격에 맞선 것이 아니다. ‘공익’을 위해 뛰던, 자신이 받은 ‘교육’에 의해 정의를 지키자는 목적으로 활동하던 L이 아닌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한 L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이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초콜릿만 먹던 녀석이 뛰는 것은 물론 점프까지 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달리기 시작한다. 더 살고 싶다며 살아있는 이 순간 생명력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서.
류자키 역시 마찬가지다.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살아왔던 그에게 미시마는 소중한 존재다. 이는 라이토와 L의 관계에서 조금 더 나아간 <데스노트 – L>에서의 L의 모습에 가깝다. 그래서 류자키는 미시마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가 ‘뉴 월드’를 열기 위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약 앞선 작품이 없었다면 이 감성은 꽤나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선행작품이 보여줬던 감정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또 이런 류자키의 캐릭터성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류자키의 사신과의 이별 방법은 앞서 미사와 그 사신과의 이별법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또 미시마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은 앞서 라이토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택했던 방법과 유사하다. 이는 다름 특별한 ‘반전’을 위해 미시마의 캐릭터성을 죽여 놓은 보람이 전혀 없게 만든다. 뭐, 새로운 것이 있어야 반전도 힘을 얻는 것인데 그런 게 없다보니 결말부에 이르는 과정도 지루했지만 그 후 결말에서도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장면도 옛것, 캐릭터도 리폼한 것, 포인트 활용도 그대로 답습하니 제목은 ‘더 뉴 월드’인데 새로운 것이 전혀 없다. 이는 새로운 것이라고 넣은 두 소재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 점이 크다. 시엔은 제3의 주인공 역할을 해줬어야 했는데 전혀 그러질 못했다. 오히려 그의 분신처럼 활용하는 화면 속 라이토에게도 존재감이 확 밀렸다. 애초에 캐릭터를 위한 새로운 활용이 전혀 없었기에 역할만 있는 캐릭터에 한해졌다.
6권의 사신노트는 ‘노트를 모은다’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아무 쓸모가 없는 소재로 끝이 나 버렸다. 애초에 노트를 이리 늘렸으면 이 노트를 통한 두뇌게임을 벌이던지 새로운 규칙을 통한 이야기의 창조를 해내던지 해야 했는데 앞선 것만 가져오다 보니 이 노트 6권이라는 것이 일종의 어그로로 남아버렸다. 딱 하나, 이 작품에 특별한 것, 앞서 선보이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는 미사 캐릭터일 것이다. 미사는 데스노트에서 참으로 특별한 캐릭터다. 외롭고 고독하게 자란 이 철없는 아이돌은 라이토를 좋아하고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순정파 캐릭터다. 10년이 지난 미사는 그 성숙해진 외모만큼 깊어진 사랑을 선보인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녀는 라이토를 잊지 못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쓰고 떠나간다. 이는 앞선 것만을 보여주었던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성장한 캐릭터를 보여줌과 동시에 감성적인 면에서도 짧지만 강렬한 자극을 주었다.
<간츠>와 <아이 엠 어 히어로>를 통해 만화원작을 꽤나 잘 살린 사토 신스케 감독은 막상 ‘새로운 창작’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나는 과연 이 작품이 ‘앞에 것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복사+붙여넣기를 한 것인지 궁금하다. 만약 뒤의 시리즈를 위한 작업이었다면 납득이 가지만 그게 아니라면 너무나 게으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감성적인 면에서 앞선 시리즈들의 장점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데스노트> 시리즈가 가진 재미요소 중 하나인 두뇌싸움에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 이 작품 자체가 가진 크나큰 약점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