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가려진 시간 Feb 09. 2017

<헝그리 하트> - 결혼, 서로를 알아가는 끔찍한 순간

결혼이라는 것이 완전한 하나를 의미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 바로 결혼이다. 날이 갈수록 이기적이고 혼자서 즐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누군가 내 인생을 함께 한다는 게 - 내 입장에서는 끼어든다는 게- 영 반갑지는 않다. 어쩌면 사회의 변화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생각을 바꿔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제는 사랑보다는 조건을 더 보는 시대니 말이다. 생각해 보라. 혼자 살기도 버겁고, 즐겁고, 충분한 세상인데 왜 옆에 누군가 함께 있어야 하는가? 그러니 사랑보다는 나에게 도움이 될, 적어도 발목은 잡지 않을 돈과 능력이 우선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헝그리 하트>는 한 중국집 음식점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의 결혼 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국 남자 주드와 이탈리아 여자 미나는 중국집 음식점의 화장실에 갇히게 된다. 이 더러운 만남이 후에 더러운 인연이 될 거라는 것을 두 사람은 몰랐을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려주니 말이다. 그래,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생기고야 말았다. 부부가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되는 순간은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부터 부부는 각자의 가정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려간다. 구성원에 불가했던 그들이 리더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리더 중 한 명인 어머니가 지독한 채식주의자라는 것이다. 미나는 베건(vegan), 완전채식주의자다. 그리고 자신의 아기 역시 베건으로 키우기를 바란다. 식물성 식품만을 먹이는 그녀. 문제는 아기가 육류를 섭취하지 못하다 보니 성장이 너무 느린 것을 벗어나 목숨마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생각할 것이다. 자기 아기 목숨이 위험하다는데 당연히 육류를 섭취시키지 않겠어? 하지만 사람에게는 살아온 길이라는 게 있다. 자신이 걸어왔고 또 믿어왔다. 그래서 믿는다. 이게 정답이라고. 미나는 그런 사람이다. 자신이 베건으로 살아왔기에 아기 역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미나는 자연분만은 어렵다는 의사의 말을 끝까지 무시하고 병원마저 바꾼다. 기절한 그녀를 남편은 제왕절개 시키나 이 사실에 미나는 괴로워한다. 미나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뚜렷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리더가 되었다. 그녀는 세상의 간섭을 받기 싫어한다. 그저 자신과 주드가 선장이 되어 자신이 왔던 길을 그대로 가 주기를 꿈꾸고 있다.


가장 이기적인 사랑은 무엇일까? 난 ‘나만 바라봐’라고 말하는 사랑이라 생각한다. 애인의 휴대폰을 검사하고, 누구와 있는지 외출 때마다 보고해야 하고, 항상 함께 있어야만 하는 구속적인 형태를 넘어 자신의 삶의 방향과 믿음을 그대로 따르라고 강요하는 사랑 말이다. 결혼이란 건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부부가 함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어느 한쪽이 살아온 길을 그대로 따라가기를 강요받고 억압받는다. 주드는 몰랐을 것이다. 미나가 자식을 베건으로 키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기만 풀떼기를 먹을 것이라 생각했지 자식마저 풀만 먹일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쩌나. 이미 그들은 결혼을 했고 미나는 자신의 길을 따라 달라 말한다. 그래, 그녀는 주드를 외부와 단절시킨 채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만 보자면 미나는 참으로 쌍년이다. 헌데 이 섬뜩한 여자를 관객들은 무조건 미워할 수 없다.

미나란 캐릭터를 움직이는 힘, 이 캐릭터의 원동력은 바로 모성이다. 미나가 출산하기 며칠 전, 그녀는 점집에 들어가 점을 본다. 배를 만지며 환하게 미소를 짓는 미나의 모습은 아이를 향한 사랑을 강하게 보여주는 초반 장면이다. 출산 후는 또 어떤가. 제왕절개로 아픈 몸을 이끌고 아이를 보기 위해 병실을 빠져나온다. 남편이 데려간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그 집을 찾아가 바로 채식식품을 먹이는 모습, 그리고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지만 끝까지 아기를 챙기는 모습은 이 지독한 악녀-스토리상-에게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이한 건 작품을 오직 남편의 시각에서만 본다면 이만한 공포영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촬영감독 파비오 치안체티의 특이한 화면구조가 한몫을 하는데 위에서 아래로, 혹은 남편을 가까이서 찍고, 멀리서 다가오는 아내의 모습을 찍는 장면들은 상당한 긴장감을 유발해낸다. 주드는 이기적인 사랑의 희생양이다. 그는 미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그녀의 삶의 방향을 아기에게도 그대로 따를 것을 강요받는다. 어떤 남편이 아내 몰래 아기를 교회에 데려가 햄을 먹이고 이 문제로 엄마한테 SOS를 청할까. 심지어 아기에게 햄을 먹인 걸 안 아내의 한 마디에 심장이 멎는 듯한 공포를 주드는 경험한다. 이런 심리적인 공포 중 주드를 가장 강하게 짓누르는 건 ‘가장’이라는 무게감이다. 미나는 주드에게 ‘그들만의 삶’을 살아갈 것 –말이 그들만의 삶이지 사실상 자신의 삶의 방향을 존중하고 따라달라는 소리다-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입장에 처했다. 가장의 선택은 괴롭다. 가족의 구성원일 때는 편하다. 내 인생이 비루해져도 ‘그때 엄마가 나에게 더 채찍질을 해야만 했어’ ‘아빠가 돈을 너무 못 벌어서 학원을 좋은 곳을 다니지 못했어’ 등등 책임을 전가하며 자기위로를 할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은 다르다. 자신의 선택이 가정이라는 거대한 배를 이끄는 키며 침몰할 시에 책임은 모두 선장에게 전가된다. 주드를 억누르는 가장 큰 공포는 순풍을 가져올 것이라 여겼던 돛, 미나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그의 가족들을 이끈다는 점일 것이다.


결혼이란 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이다. 예전 공동체 사회와 다르게 개인은 더 잘게 쪼개졌고 더 멀리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서로가 아무리 잘 안다 생각해도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갈릴 수 있고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 부부다. 차라리 다툼이라면 좋을 것을, 어떤 부부는 한쪽에게 지나친 희생을 강요한다. 아, 성격상 지는 것에 익숙한 나에게 결혼이란 건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순간이 될 것이다. 그저 그런 순간마저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keyword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