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리고 나
김태용 감독의 <거인>은 한 소년이 자신이 처한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에 대해 ‘성장영화가 아닌 일종의 재난영화’라고 했는데 그 말이 정답이라 생각한다. ‘성장’은 사회란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 속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헌데 영화 속 주인공 영재에게 세상은 너무나 가혹하고 힘들다. 이게 자연스러운 성장이라면, 아프니까 청춘이라면, 이건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 이 사회 자체가 재난인 것이다.
<여교사>는 김태용 감독의 전작 <거인>이 생각나는 작품이었다.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한 남학생을 둔 두 여교사의 갈등이지만 그 배경에는 사립학교의 계약직 문제가 있다. 정교사와 계약직 교사의 차이. 아직 사회의 잔인함을 모르는 학생들은 이런 문제에 더 민감하다. 누가 위인지 잘 알고, 누가 아래인지 너무나 잘 안다. 남자 선생님들 앞에서는 조용하고 좀 약해보이는 여선생님 앞에서는 강하게 나가는 것이 학생들이다. 주인공 효주는 계약직 교사다. 마치 얼굴에 ‘나 계약직이다’라고 쓰여 있는 거처럼 어둠이 가득 묻어나는 효주. 그녀는 정교사가 출산 문제로 병원을 향하자 친하다는 이유로 그 반의 임시 담임이 된다. 이것이 작품의 시작이지만 그 전에, 효주의 열등감을 폭발시키는 장면이 등장한다. 계약직 교사들만이 작성한 임신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다. ‘계약직이 임신을 하면 당연히 재임용이 힘들다’고 말하는 학교의 부당한 요구를 그녀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교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효주의 쌓인 열등감은 애인 상우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교사는 가장 이상적인 신부감 1순위로 뽑히는 직업이다. 즉, 교사가 된다는 건 결혼시장에 나왔을 때 그만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헌데 효주는 정교사가 아닌 언제 짤려도 이상하지 않을 계약직 교사다. 그리고 그녀의 애인은 제대로 된 작품 하나 쓰지 못하고 싸돌아다닐 생각이나 하는 작가 상우다. 마치 자신처럼 불안한 존재. 불안한 자신이 껴안아 주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자신보다 더 나약한 존재. 사랑만으로 불안을 감싸 안기에 ‘비정규직’이 주는 명함은 너무나 무겁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장의 딸 혜영이 온다. 잘 알지도 못하는 학교 후배가 4자리 남은 정교사 자리 중 하나를 채간 것이다. 억울하지만 방법이 없다. 여긴 사립학교니까. 낙하산이라고 욕은 먹겠지만 법적으로 잘못된 방법이 아니니까. 그래서 자신에게 서글서글한 혜영에게 효주는 더 큰 분노를 느낀다. 차라리 강압적이고 무서운 존재라면 피하거나 굴복하면 그만이지만 대놓고 아래를 자처하는 권력은 가증스러움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효주는 학생들에게 딱딱하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이 구조로의 불만을 학생들에게 푼다. 자신이 유일하게 분노하고 화를 낼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 방식은 사랑을 주지 않는 것이다. ‘내가 기분 나쁜데 왜 너희들한테 웃어줘야 해?’가 효주가 자신의 불만을 표하는 방식이다. 혜영은 처음부터 저자세를 보여준다. 그녀의 저자세는 사랑받을 줄 아는, 그리고 사랑받아온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는 효주가 혜영에게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준다. 그녀는 마치 아이 같다. 그녀가 분노를 표출하는 학생들처럼 말이다. 기존에 효주를 억압해왔던 강력한 구조와는 사뭇 다르다. 그녀가 내 위인 것은 안다. 그런데 화는 낼 수 있을 거 같다. 어린 시절 우리는 부모님이 우리보다 강하다는 걸 알지만 화를 내기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한다. 그나마 받아주는 것이 부모님이니까. 효주가 초반 혜영에게 뿜어내는 불만은 ‘정교사 한 자리’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구조 속, 위에 자리하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화를 낼 만한 존재가 그녀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영화 속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효주가 혜영을 비교적 만만한 존재로 보면서.
영화의 핵심이 되는 사건은 효주가 재하와 혜영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다. 이 순간, 효주는 (아마 이 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승자’의 기분을 맛보았을 것이다. 상대의 큰 약점을 쥐었다. 이는 ‘사립학교의 구조’ 속에서 그녀가 획득한 무기다. 만약 이 무기를 잘 간직했다면 효주는 더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켜내질 못한다. 혜영을 너무 얕봤기 때문이다. 사회경험 없는 부잣집 딸. 평생 온실 속의 화초로만 자라 와서 사람이, 그리고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모르는 아이.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존재는 효주였다. 감독은 ‘왜 효주가 혜영의 덫에 걸려들었나’에 대한 단서를 그녀의 캐릭터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먼저 효주는 현실적이지가 않다. 그녀의 남친 상우는 전형적인 놈팡이다. 그런데 작가라는 이들은 뭔가 이상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현실적이지 않은 로망처럼 여겨지는 존재가 작가다. 효주는 그런 상우를 남친으로 택했고 이는 그녀가 사랑에 있어 ‘현실적’이기보다는 ‘이상적’인 캐릭터임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얼굴에 드러나는 어둠이다. 그녀는 불만을 어디서 재잘거리는 스타일이 아니고 남들과 활발하게 어울리는 성격도 아니다. 효주는 폐쇄적이다. 그녀는 아픔을 풀 줄도 모르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해 남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씩씩하게 나아가는 성격이 아니다. 즉,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가는 성격이 효주다. 울타리 안에만 있다 보니 양은 다 양만 있고 늑대는 다 늑대만 있다 생각한다.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아왔다는 소리다. 이런 효주의 성격은 혜영에게 왜 그녀가 질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괴물 같은 모습을 결말에 보여주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감독은 영리하게도 이에 대한 단서들을 캐릭터를 통해, 그리고 그 캐릭터가 놓인 공간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풀어낸다.
이 작품이 가진 갈등을 더 심화시키는 인물은 재하다.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캐스팅이다. 이원근의 얼굴에는 ‘선량함’은 묻어나지만 ‘악랄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악랄함을 폭발력 있게 드러낼 만큼 연기력이 돋보이는 배우도 아니다. 그의 장점인 선하고 맑은 모습은 분명 재하가 가진 외면과는 어울린다. 하지만 재하는 평면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딱 그 나잇대 학생이 가지고 있는 모습. 겉모습은 한없이 선하지만 내면의 욕망을 위해서는 극악무도할 정도로 잔혹해지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성인은 자제라는 것을 안다. 수많은 사회의 경험과 지식의 함양을 통해 자신이 지켜야할 선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욕망을 자제할 줄 안다.(어쩌면 이런 존재가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아이에게는 자제라는 것이 없다. 학생들의 왕따가 더 잔인하고 끔찍한 이유는 내면의 욕구를 브레이크 없이 마음껏 표출하기 때문이다. 재하는 이런 욕망을 더 폭발력 있게 드러내야 했던 인물이다. 어쩌면 관객들이 가장 잔혹하다 여겨야 될 인물은 재하다. 그는 금단의 욕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고 영악하게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부정한 욕구를 위해 움직였다.
<여교사>는 인물의 심리가 돋보이는 영화다. 그리고 이 심리를 만들어준 건 우리 사회가 가진 ‘구조’라는 거대한 틀이다. 사건이라는 것은 좁게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지만 넓게 보면 사회의 거대한 구조 속에서 한 인간이 겪는 힘겨운 사투가 만들어낸 일이다. 김태용 감독은 <거인>에서도 한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척 하면서 ‘이 소년을 극단으로 몬 사회의 구조’에 대해 꼬집었다. <여교사>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가 가진 암울한 ‘직업 계층의 구조’가 이런 비극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