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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이> - 사람이기에 겪는 선택의 비극

영화, 그리고 나

사람은 누구나 약하다.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누구나 약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아프기 때문에 남의 아픔까지 완전히 품어줄 수 없다. 그 존재가 비록 ‘가족’일지라도 말이다. 한 어머니, 나나가 있다. 어머니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두 아이 중 한 명은 아프다. 곧 죽을 것이다. 이에 어머니는 숲을 향한다. 그곳에는 미신이 있고 신비가 있다. 이 숲속에서 어머니는 자신이 ‘치유능력’을 배우면 막내아들, 걸리의 병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세월이 흐른 후 한 기자가 큰 아들, 아이반에게 찾아온다. 그는 성인이 되었으며 매를 기르는 일을 하고 있다. 기자 자니아는 자연 치료술에 대해 인터뷰하기 위해 나나를 만나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거절하자 그녀의 아들 아이반을 이용할 생각을 한다. 아이반은 이미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으며 20년 간 어머니와 남남처럼 지내왔다. 하지만 자니아에게는 나나를 꼭 만나야 할 이유가 있다. 그녀가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매’는 아이반에게 자신의 존재의미, 그리고 어린 시절의 아픔을 동시에 의미한다. 걸리를 치유하기 위해 숲을 향한 날, 한 남자는 아이반의 매를 쏴 죽인다. 이에 아이반은 충격을 받는다. 헌데 그를 더 충격으로 몰아넣은 건 그 남자의 딸을 치유해주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나나는 걸리를 치유하기 위해 뉴먼의 치유캠프에 있어야 했고 그 조건으로 매를 쏴 죽인 남자의 딸을 치유해주기로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이 어린 아이반에게는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배신’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나나는 몰랐다. 아이반 역시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때론 사랑은 그 이름으로 감당하기 힘든 걸 요구한다.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아이반은 ‘동생을 사랑해야한다’는 과한 책임감에 의해 산 속의 캠프를 향한다. 어린 아이반에게 동생을 위한 희생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으며 그 일을 ‘형제간의 우애’로 너무 당연히 여기는 나나의 시선 역시 그를 아프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날의 ‘사고’는 그와 어머니를 완전히 갈라놓았다. 아이반이 나나에게 죽은 매를 던진 행동. 그 행동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이 죽은 매처럼 사라져버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보라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의 아픔을 내던짐으로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겠다는 의미다.


아들이 상처를 받아 어머니를 떠났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잔혹한 부분은 어머니 역시 아들을 떠나갔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두 아들 중 누구를 더 사랑하고 누구를 더 사랑하지 않았겠는가. 다만 어미는 더 아픈 자식, 더 불쌍한 자식에 시선이 가기 마련이다.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 인간은 불쌍한 존재를 보면 양육강식의 세계에 따라 도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도와주고 보호해줘야, 그리고 함께 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 역시 아이반에게 배신감이 들었던 것이다. 머리로는 아니라고 여기지만 마음으로는 움직이는 그 생각. 아이반이 그랬다. 아이반이 열등감에 동생에게 그런 것이다. 그리고 걸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했던 모든 노력을 수포로 만든 그를 차마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 나나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비극은 인간이기에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비극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한 양육강식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며 철저한 계층사회를 유지한다. 반면 인간은 다르다.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다. 약자에 대한 보호 의식이 있으며 상대에 대한 분노와 피해의식이 존재한다. 어머니 나나가 걸리를 택한 이유도 인간이기 때문이고 형 아이반이 어머니와 동생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과 어머니가 서로에 대한 상처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이유도 역시나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게 하는 ‘잔인한 선택’을 한 기자 자니아 역시 인간이기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내 목숨이 우선이니까, 내가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봐야 하니까. 


<하늘 높이>는 깊게 곱씹어 볼 스토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너무나 불친절한 전개 때문에 그 모든 의미를 따뜻하게 간직하기 힘든 영화다. 이 불친절한 전개가 영화가 가진 ‘특별함’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감정의 ‘깊이’와 ‘심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담아내는 인간의 모습은 꽤나 흥미롭다. 본능이 아닌 생각으로 하는 선택. 개인이 아닌 집단이 존재하기에 할 수밖에 없는 선택. 그리고 이런 선택이 만들어낸 비극. 어쩌면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비극이란 건 인간의 선택이기에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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