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드 케이지>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인 모리무라 세이치는 그의 작품 <야성의 증명>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서술하였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저항하고 피를 흘리는 고통이 동반된다. 그런 피와 땀으로 성취된 민주주의는 그 빛을 내기도 전에 너무나 쉽게 다시 독재에 넘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독재의 씨앗을 자르고 탄압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민주주의라는 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버드 케이지>는 이런 <야성의 증명>의 물음을 조금 더 확장시킨다. 시대를 초월한 독재와 강압의 역사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저항해 왔는지, 그리고 그 저항은 과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왔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주로 홍콩에서 감독으로 활동한 나카타 케이 감독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가 만들어낸 집단주의의 환상과 열망을 전위적인 스타일로 담아냈다.
영화는 근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도입부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사회적인 가치를 말한다. 그 중 눈에 들어오는 가치가 '자유'와 '평화'이다. 이 두 가지 가치는 묘하게 어긋나는 지점이 있다. 온전한 자유는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없고 완전한 평화는 보장된 자유를 약속할 수 없다. 이 영화는 이런 명제를 성립시키기 위해 정신병자라 지목당하면 바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는 법을 설정한다.
길을 지나가던 남자는 한 노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주변 사람들에 의해 정신병자로 몰리게 된다. 원인도 이유도 없이 그를 정신병자라고 몰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남자는 정신병원에 끌려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의 치료방법은 너무나 비정상적이다. 간호사들은 폭력을 휘두르고 눈에 씌워진 전자기기는 기이한 장면들을 보여줌과 동시에 끔찍한 전기고문을 가하게 된다. 밤이면 남자는 방에 나타나는 이상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들은 남자와 함께 방을 공유하고 있다며 그에게 탈출방법을 알려주나 이는 시행하기 어려운 방법뿐이다.
영화는 이상한 정신병원, 기이하고 폭력적인 치료를 반복하는 의사와 간호사들, 꿈과 현실, 망상과 환상을 넘나드는 연출을 통해 매끄러운 흐름보다는 순간순간 강한 인상을 남기는 전위적인 연출법을 택한다. 이런 다채로운 장면들 속에서 감독은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한 몇 가지 핵심 장면들을 설정한다. 첫 번째는 새장이다. 도입부에서 남자는 한 여자를 만나고 그녀에게 이름을 묻는다. 하지만 그녀가 이름을 말하기 전 장면은 바뀐다.
정신병원으로 끌려간 남자는 다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새장에 갇혀 있다. 새장 안에 갇힌 그녀는 두 가지 대사를 통해 새장이 지닌 의미를 보여준다. 카나리아는 우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대사와 나도 내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대사는 새장이라는 사회에 갇힌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망각을 보여준다. 작품의 후반부 바닷가 장면에서 등장하는 남자는 새장의 새가 탈출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새로운 새를 잡아서 넣으면 된다는 것이다. 새장은 구속과 억압을 상징한다. 세계의 역사는 독재에 저항하는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한 번 쟁취한 자유는 계속 유지된 적이 없었다. 새가 새장을 탈출하면 새로운 새가 갇히듯 한 세대가 자유를 쟁취하면 다른 세대는 그 자유를 유지하지 못한 채 강압과 억압의 늪에 빠지는 역사가 반복되었고 또 반복되고 있다.
카나리아의 우는 법은 새장 밖에서 외치는 자유의 노래다. 새장에 갇힌 새는 자유를 외칠 수 없다. 자유를 잃어버린 새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망각하고 정권 차원의 강압적인 교육과 사상에 스스로를 잃어버린다. 작품 도입부의 2차 대전 당시 나치 정권과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군국주의의 모습, 나치 정권 당시 "하일 히틀러!"(Heil Hitler)'라는 경례를 외쳤던 독일처럼 '반자이(만세)'를 외치며 일본 군국주의를 패러디하는 장면, 자신들의 자유와 정체성을 외치는 사람들이 총성과 함께 학살당하는 장면은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두 번째는 환생이다. 밤마다 정신병원에 갇힌 남자에게 나타나는 사람들은 환생의 의미를 강조한다. 이 환생은 세 명의 인물을 통해 실현된다. 첫 번째는 옛 교복을 입은 피부가 하얀 남자, 두 번째는 정신병원에 갇힌 남자, 세 번째는 '마스터'라는 정신병원 탈출의 열쇠를 지닌 어린 소년이다. 이들은 은유적으로 3대에 걸친 환생을 의미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교복을 입은 남자는 군국주의 시대를, 정신병원에 갇힌 남자는 여전히 이지메와 강압적인 직장문화로 대표되는 집단주의의 잔재가 남아있는 현재의 일본을, 소년은 새장을 열고 자유로 나아가길 희망하는 미래를 상징한다.
하지만 이 자유를 향한 열망이 과연 이뤄질지에 대해 감독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교복을 입은 남자가 문을 열고 과거에서 현재로 나온 순간 그가 본 세상은 쓰레기 더미와 연기를 내뿜는 공장으로 가득하다. 문명의 이기와 자본주의의 속성은 신분제와 군국주의가 없어진 일본을 여전히 강압적인 세상에 가두고 있고 이 새장에서 탈출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새를 새장에 가둘 준비를 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버드 케이지>는 이런 냉소적인 시각을 무겁고 차가운 드라마에 담아내지 않는다. 때론 코믹하고 때론 잔혹하며 때론 몽환적이고 기이한 전위적인 스타일을 통해 복잡하지만 다채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한 가지 의미나 장면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양하게 작품을 받아들임으로 자유로운 해석을 이뤄낼 수 있는 상상력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한다. 이 작품은 영화 그 자체가 지닌 힘보다는 이를 느끼는 관객의 감상에 따라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