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선가 피어날 행복이란 무지개를 향해

영화 <주디>

movie_image16WRILPS.jpg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열풍을 일으킨 <기생충>을 제외하고는 결과가 예측대로 이뤄진 시상식이었다. 특히 배우 부분의 경우 골든글로브, 영국아카데미 시상식 등과 일치하며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배우들이 그에 걸 맞는 상을 받아갔다. 그 중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르네 젤위거는 <주디>를 통해 미국 내 메이저 시상식을 휩쓸며, 무려 16개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주디>는 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이자 가수인 주디 갈랜드의 삶을 다루고 있다. 주디 갈랜드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역으로 잘 알려진 배우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과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과 여자보컬상을 수상한, 배우와 가수 양쪽에서 정점에 섰던 할리우드 최고의 엔터테이너였다. <시카고>를 통해 뛰어난 노래와 연기를 선보였던 르네 젤위거는 작은 체구의 주디 갈랜드를 연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였다 할 수 있다.

한때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였지만 중년의 나이에 이른 주디 갈랜드는 불성실한 태도와 불안한 정신으로 업계에서 외면 받는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적은 금액에도 작은 무대에 서는 그녀는 호텔 숙박비가 밀리자 아이들을 이혼한 남편 집으로 데려간다. 남편은 아이들에게도 안정적인 삶이 필요하다며 자신에게 맡기라 말하고 소속사에서는 미국 내에서는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녀를 사랑하는 영국으로 공연을 떠날 것을 제의한다.

movie_image9D6BQ8YC.jpg


사랑하는 아이들과 헤어지기 싫은 주디였지만 양육권을 위한 소송에는 돈이 필요했고 결국 영국행을 택한다. 여전히 주디를 사랑하는 영국 관객들은 그녀를 위해 극장에 몰려들지만 주디는 아직 그들 앞에 설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공연장에 서지 않으려는 그녀를 비서인 로잘린은 최선을 다해 달래가며 무대 위에 세운다. 헌데 무대에 올라온 그녀는 긴장과 불안을 언제 느꼈냐는 듯 최고의 공연을 선보이며 박수갈채를 받는다.

하지만 무대 아래에서의 주디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녀는 매일 취해있고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청하지 못한다. 하루 종일 불안과 불만에 빠져 있다. 만약 <오즈의 마법사> 촬영장을 보여준 도입부와 그녀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교차화면이 없었다면 관객들의 눈에 주디는 불성실한 할리우드 스타로 보였을 것이다. 주디는 인생작 <오즈의 마법사>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으나 그 시절은 개인에게 불행의 연속이었다.

왜 주디가 그토록 도로시 역할을 갈망했는지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주디 갈랜드의 삶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할리우드에는 소위 팜므 파탈로 일컬어지는 성적 어필이 가능한 여배우들이 인기를 끌었다. 아역을 하기에는 나이가 많고 성인을 하기에는 귀여웠던 주디 갈랜드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도로시 역할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또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 이후 세 아이를 키우는 데 따른 부담 때문인지 몰라도 딸들을 할리우드 스타로 키우고 싶었다. 그 중 막내인 주디의 재능은 단연 발굴이었기에 더 강하게 키웠다.

movie_image628QS7CT.jpg


이 '강하게'의 의미는 정신적인 강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신과 육체를 소모하고 희생하면서 촬영에 임하는 걸 의미한다. 회사에서는 주디가 살이 찌는 걸 막기 위해 음식을 먹이지 않았고 담배를 피우게 했다. 먹지 않고 힘내서 촬영을 해야 했기에 각성제에 의존해야 했고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담배와 약물로 중독된 어린 시절 주디의 삶은 결국 성인이 된 후 망가지고야 만다.

술과 담배에 의존하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건 물론 주기적인 불안에 시달린다. 특히 대중과 언론, 연예계 관계자들에게 반감을 지닌다. 자신을 괴롭히고 못살게 군 연예계 관계자들, 가십거리만 찾아다니는 언론, 뜨겁게 사랑해주다 차갑게 식어버리는 대중은 주디에게 공포와 같다. 그래서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 결혼을 반복한다. 고통을 잊기 위해서는 결혼이 필요하다 말하는 그녀는 반복되는 이혼 속에서도 미키 댄스라는 젊은 남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미키 댄스는 주디를 사업적으로 이용할 생각만을 지니고 있었고 이로 인해 주디에게 상처를 준다. 작품은 이렇게 상처로 가득 찬 주디의 인생을 조명하며 그녀가 진정으로 따뜻한 행복을 찾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화려한 인생을 살아온 주디 갈랜드의 삶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그 배경으로 택한 이유는 이런 따뜻함에 있다. 주디에게는 일생이 고통의 연속이었고 웃음 속에 슬픔을 품었던 나날이었다.

movie_image4DYM5ZYD.jpg


그녀에게 잠시라도 진정으로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주고자 하는 이 영화의 노력은 그녀의 노래만큼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곡이자 주디 갈랜드가 불러 화제가 된 'Over the Rainbow'와 같은 삶을 살아온 주디가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 노래는 천진한 낙천주의와 절박한 우울함이 혼합된 노래로 오즈라는 신비의 나라로 가게 된 도로시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불안을 내포한다.

주디의 삶 역시 이와 같았다고 할 수 있다.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과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을 같이 품고 살아온 그녀에게 행복은 멀리 있는 무지개와 같이 찬란하지만 닿을 수 없었다. 주디가 그 무지개와 닿는 순간 관객들은 그 목소리에 깊이에 느꼈던 슬픔만큼 강한 행복과 기쁨에 취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한 마디로 황홀한 마법과 같다.

< 주디>는 오직 르네 젤위거만이 할 수 있는 연기로 진한 감성을 뽑아낸다. 작은 키와 약물에 취해 제대로 식사를 못해 깡마른 체구에도 무대 위에서 폭발력 넘치는 모습을 선보였던 주디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그저 뼈가 다 보이는 등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녀의 슬픔을 표현해내는 르네 젤위거의 연기는 인생 연기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진가를 선보인다. 노래와 연기를 모두 잡아내며 세기의 스타 주디 갈랜드의 감정을 완벽하게 스크린에 재현해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