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
‘기괴하다’ 아마 이 작품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공통된 생각을 할 것이다. ‘젤리’라는 소재, 말랑말랑한 포스터, ‘윰블리’로 불리는 사랑스런 매력이 가득한 배우 정유미가 주인공이란 점을 생각할 때,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의 도입부를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시작부터 죽은 엄마가 젤리로 등장하더니 녹아버린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집단자살을 위해 옥상을 향하고 지진으로 갈라진 학교 지하에서는 거대한 괴물이 튀어나와 아이들을 먹으려 든다.
아니, 이게 대체 뭐야?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작품, 보다 보면 은근 빠져든다. 표현은 과한데 주제의식이 확고하고, 방향성이 분명해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원작자 정세랑 작가가 시나리오에 합류하며 균형감을 잡는다. 여기에 비장의 무기가 이경미 감독이다.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등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들어 온 이경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연출과 시나리오를 맡으며 본연의 색을 표현한다.
‘미쓰 홍당무’와 짧지만 ‘비밀은 없다’에서 보여줬던 학교란 공간이 지닌 기괴함과 독특함은 이경미 감독에 의해 효과적으로 발산된다. 이 세계에 속한 젤리를 보는 보건교사 안은영과 신비한 기운을 지닌 학교 설립자의 손자이자 한문교사 홍인표의 만남은 묘한 기류를 선보인다. 발랄하다가도 기괴하고, 코믹하다가도 우울하며, 웃기다가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작품 속 다양한 모습의 젤리처럼 다채로운 매력을 선사한다.
오컬트 서사에 더해진 말랑한 판타지의 묘미
칼과 총을 들고 학교에 존재하는 악령들을 상대로 학생들을 지킨다. 이런 설정만 보면 오컬트나 판타지 장르가 떠오른다. 콘스탄틴 같은 영웅이 등장할 것만 같고 무거운 분위기로 악과 대적하는 이야기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뼈대는 특별하지 않다. 오컬트 서사에 기반을 둔다. 악령이 나타나고 이를 퇴치한다. 이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이 악령이 젤리의 모습을 했다는 점이다.
악령이 젤리가 된 순간 작품은 말랑말랑해 진다. 안은영이 젤리를 잡는 무기는 플라스틱 장난감 칼과 투명 비비탄 총이다. 초등학생이 가지고 놀 법한 장난감으로 젤리를 잡는 모습으로 기괴한 분위기와 상반된 부드러움을 보여준다. 이는 장르적인 무게감은 줄이면서 기괴함은 살리는 효과를 선사한다. 작품은 초반부터 이런 설정의 묘미를 보여준다. 바로 학생들의 집단 자살이다.
학교의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안은영은 한문교사 홍인표와 함께 금지된 장소인 지하실을 향한다. 이곳에서 홍인표는 건드려서는 안 될 돌을 건드리며 악령을 깨운다. 이 악령에 의해 학생들은 옥상을 향하고, 집단 자살을 시도한다. 이때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과, 프로포즈 이벤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입은 복장은 사건의 심각성을 낮추면서 기괴한 느낌은 더한다. 이 절정은 안은영이 홍인표의 손을 잡을 때 일어난다.
판타지 장르의 전형적인 공식이라 할 수 있는 기운이 빠진 용사한테 기를 불어넣어 적을 무찌르는 장면을 코믹하게 묘사한다. 은영은 인표의 손을 잡고 그의 기운을 얻게 되는데, 이때 은영의 표정은 누가 봐도 미남과 스킨십을 해 기분이 좋은 얼굴이다. 장르적인 공식을 따르지만 클리셰에서 벗어나며 이 작품만의 독특한 색을 확립한다. 익숙한 구조 속에서 쉽게 이야기를 습득하면서 새로운 표현으로 독특함을 느낀다.
이런 ‘보건교사 안은영’의 힘은 공간성을 강화한다. 학교. 학교는 이 작품의 표현처럼 참으로 기괴한 공간이다. 보통 예술작품이 학교를 표현하는 건 한쪽 면을 중심으로 한다. 로맨스 장르는 청춘의 열정과 순수함 그리고 성장을 담아 청량한 느낌을 내고,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은 성적이나 서열 문제 등 어두운 측면을 조명한다. 학교는 이 빛과 어둠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학생들은 이 안에서 하루에 몇 번이고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변화를 겪는다.
그 원인은 학교야 말로 사회의 상류층부터 하류층까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대학이나 직장과는 달리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정말 다양한 문제를 겪고 일으킨다. 그래서 젤리의 색은 형형색색이다. 학생들의 개성처럼 다양하다. 그래서 작품은 밝은 색의 젤리만 보여주지 않는다. 어둡고 거대하며 흉측한 모양의 젤리도 있다.
보건과 한문, 두 사람의 연관성
안은영과 홍인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마치 운명 같다. 은영은 인표의 몸을 감싼 기운을 보고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인표의 기운은 은영에게 힘을 불어넣어준다. 학교란 공간 자체가 미스터리의 주축이 된다는 점에서 할아버지의 집에서 그 책을 읽을 줄 아는 인표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학교의 젤리를 퇴치하는 게 은영의 몫이라면, 왜 젤리가 학교에 가득 있는지 밝혀내는 건 인표가 할 일이다.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학교에서 소외된 교사라는 점이다. 은영을 뒤풀이 자리에 초대한 교사는 자기를 소개한다. 보건실에만 있는 은영은 교사에 대해서는 누가 누군지 잘 모른다. 은영이 자기를 소개하려는 순간, 교사는 은영에 대해서는 모든 교사가 다 안다고 답한다. 이는 은영이 학교에서 남들과는 다른 위치에 있음을 의미한다. 교사지만 그들의 커뮤니티에는 들지 못하는 위치가 보건교사다.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은영은 심폐소생술을 가르치기 위해 커다란 인형을 등에 업고 이 교실 저 교실을 옮겨 다닌다. 교사라면 학생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지만 보건교사는 그럴 수 없다. 인표는 교사들의 커뮤니티 안에 속하지만 과목에 있어 소수다. 중국어가 유행함에 따라 한문의 위치는 중국어가 대신한다. 중국어가 아닌 한문만 아는 교사는 교단에서 밀리고 있다. 인표가 다리를 다쳤다는 설정은 그가 무리 내에서 제대로 자신의 다리로 걸을 수 없음을 외형적으로 보여준다.
두 사람은 학교란 공간에서 아웃사이더다. 그래서 더 활발하게 아이들을 위해 두 발로 뛰고 젤리를 찾을 수 있다. 주류가 아니기에 제약이 덜하다. 동시에 그러기에 외로움과 소외를 느낀다. 그들과 함께 아이들을 위해 희생할 어른을 찾지 못한다. 이런 현실은 작품 초반 은영의 대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젤리를 볼 줄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기에 혼자 노력한다는 말 끝에 붙은 욕설은 그 답답함을 표현한다.
진정한 어른을 찾지 못한 어른들
따지고 보면 은영이 학생들을 위해 힘써줄 필요는 없다. 교사의 특성상 기간이 지나면 다른 학교로 갈 수 있다. 또 학생들의 경우 중고등학교는 3년이 지나면 서로 만날 일이 없다. 그럼에도 은영이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을 든 이유는 그녀 자신이 진정한 어른을 만나지 못했기에 진정한 어른이 되어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은영은 한 사람이라도 학생들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은영의 학창시절 친구가 유령으로 나오는 에피소드는 어린 시절 은영이 학교에서 입었던 상처를 보여준다. 도입부에서 은영의 아버지가 재혼을 택하고, 젤리였던 어머니가 녹는 기괴한 장면은 은영의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를 표현한다. 다만 첫 도입부였고, 다소 충격적이기에 그 슬픔의 의미는 이 에피소드에 이르러 느껴진다. 아버지와 새 어머니는 은영을 진심으로 대해주지 않았고, 은영은 학교에서 유령을 보는 아이로 소문이 난다.
은영의 친구는 나쁜 소문이 돌지만 천성은 그렇지 않은 아이다. 하지만 나쁜 집안 사정은 그 오해를 벗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그 친구는 공사판에 갔다 귀신이 되어 다시 은영 앞에 나타난다. 이 친구를 만나면서 은영의 마음은 극적인 우울에 빠진다. 학창시절, 그 많은 교사들 중 어느 누구도 은영의 친구를 구해주지 못했다. 그 아픔과 슬픔을 들여다보고 감싸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은영은 젤리 형태의 옴을 먹는 귀신을 만난다. 그 귀신은 평생을 학생의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고 또 살아나 ‘재수 옴 붙었다’의 그 옴이 학생들에게 붙는 걸 막는다. 때문에 귀신은 20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 귀신과 친구가 된 학생들은 은영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은영은 미래에 이 학교에 올 이들을 위해 성인이 되는 걸 망설이는 귀신에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을 지니게 된다.
후반부에는 동성애 문제가 등장하고, 그 문제를 조롱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사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왜 학교의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는지 보여준다. 교사들은 학생을 표준에 맞추려고 하지, 있는 모습 그대로 성장을 도와주지 않는다. 그들 사이의 폭력과 따돌림, 정체성이나 사랑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지 않는다. 조례 때 체조를 하며 다 같이 힘차게 웃는 일과처럼 거짓된 웃음으로 1년이 무사히 지나길 바란다.
그래서 젤리를 노리는 영어교사가 왕따를 당하는 학생을 도와주는 에피소드는 감정적으로 복잡하게 만든다. 그는 은영과 대척점에 있는 악역이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학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비록 그 방법은 극단적이지만 학생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없는 학교란 공간에서 무엇이 정의이고 진리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안은영이 던진 학교란 공간에 대한 화두와 진정한 어른의 문제는 이 작품의 두 뼈대라 할 수 있다.
웰메이드 드라마의 탄생, 2편이 기대된다
작품은 뚜렷한 결말을 맺지 않는다. 앞서 오컬트 작품의 전개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했는데, 장르적인 명쾌함을 기대하고 봤다가는 실망할 만큼 후반부에 다소 미적지근한 전개를 선보인다. 미스터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어설프게 부분을 드러내면서 이후 2편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퍼즐의 일부만 맞추면서 호기심을 더했으니 다음에는 남은 조각들의 대부분을 조립해 확연한 모양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표현에 있어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이 영화가 보여준 지독한 성장통의 문제는 어느 사회나 통용되는 성장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사회의 어른들과, 그런 어른들에게 배워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한 채 교육이란 위치에 서게 된 은영과 인표의 모습은 학교란 공간에서 이뤄질 수 있는 다양한 모습들과 함께 다양하게 주제의식을 표현하며 재미를 선사한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젤리는 그 달콤함 때문에 계속 손이 간다. 이 달콤함에 취하다 보면 이가 썩어 들어가는 줄 모른다. 사회의 문제라는 게 그렇다. 외면과 침묵 속에 넘어가는 순간은 달콤하지만 그 뿌리는 점점 타들어간다. 선인과 악인, 히어로와 빌런이 뒤섞인 학교란 공간은 한 순간도 평온한 적이 없었다. 작품은 이 공간성을 깊숙이 파고 들어가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색을 지니게 된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확보된 구독자를 대상으로 모험적인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넷플릭스의 쾌거라 볼 수 있다. 표현은 실험적이지만 전개는 익숙하고, 기괴함과 발랄함을 적절히 조화하며 다양한 감정을 보여준다. 여기에 학교라는 공간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은영이란 인물에 더 깊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이 넷플릭스의 또 다른 웰메이드 드라마는 취향만 맞는다면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드는 설렘을 안겨줄 것이다.
* 이 글은 온라인 영화매거진 씨네리와인드에 먼저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