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범인은 바로 너!>
넷플릭스는 <킹덤> 시리즈를 통해 국내 드라마 팬들에게 ‘넷플릭스’란 플랫폼을 제대로 각인시켰다. 이 작품은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해외에 한국 콘텐츠의 매력을 알렸다. <범인은 바로 너!> 시리즈는 예능에서의 <킹덤>을 기대했던 작품이었다. SBS 예능 <런닝맨>을 통해 해외에서 높은 인지도를 구축한 건 물론, 대한민국 최고의 MC인 유재석을 메인으로 내세우며 기대를 고조시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의 첫 작품인 <범인은 바로 너!>는 100% 사전제작 된 작품으로 추리와 콩트를 결합시켰다. 사회악을 뿌리 뽑기 위해 과거 명탐정들의 DNA를 이식해 탐정단을 조직하는 프로젝트D를 계획한 K는 그 자질을 실험하기 위해 측근인 M을 통해 살인 게임을 기획한다. 허나 이 현장에서 M이 실제로 살해를 당하면서 초대장을 받고 모인 탐정들은 첫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시즌1 탐정단 멤버는 예능인, 배우, 아이돌이 적절히 조화를 이뤘다. 멤버들의 예능감을 이끌어 내고 상황을 유려하게 정리할 메인 역 유재석을 비롯해, <런닝맨>에서 유재석과 오래 호흡을 맞추며 웃음을 담당하는 핵심 이광수와 <1박2일>의 터줏대감이자 어리바리한 캐릭터 1인자 김종민이 합류했다. 이광수와 김종민은 예능에 출연할 때마다 핵심적인 웃음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확실한 웃음을 잡아내기 위한 캐스팅으로 볼 수 있다.
배우로는 안재욱과 박민영이 탐정단에 합류했다. 안재욱은 유재석과 함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연장자 라인을 구축했다. 다수의 예능에서 선보인 그의 예능감 역시 포인트다. 박민영은 비주얼 라인이자 뛰어난 추리능력으로 팀의 핵심이 되는 역할을 담당한다. 콩트 형식에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다는 점에서 배우의 합류는 탐정단에도 필요했고, 이에 맞춰 적절한 캐스팅을 이뤄냈다.
여기에 막내 라인인 세훈과 세정은 비주얼과 밝은 분위기, 각각 K-POP 최고 그룹인 엑소와 前 I.O.I 출신이란 점에서 해외시장을 염두에 둔 부분이 보인다. 시즌2에서는 스토리에 따라 이광수가 잠시 하차하고 이승기를 합류시키는 변수를 두며 극적인 묘미를 더했다. 이런 극적 묘미 부분만 보아도 이 작품이 얼마나 드라마적인 측면을 많이 신경 썼는지 볼 수 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완성도를 더하기 위한 심혈이 돋보인다.
아마 <범인은 바로 너!>를 선택하는 분들이 떠올릴 예능은 <크라임씬> 같이 머리를 굴리는 예능일 것이다. <더 지니어스>를 비롯해 두뇌 회전을 요구하는 예능이 케이블을 통해 다수 소개됐고, 진중한 예능을 원하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넷플릭스의 자금력을 등에 업고, 유재석을 내세운 이 작품에 거는 기대는 컸을 것이다. 허나 추리와 콩트의 조합은 하늘을 날아오르기도 전에 불시착을 해버린다.
문제는 드라마가 주가 된 콩트 형식이다. 콩트 형식이 빛을 보려면 주어진 상황 안에서 구성원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허나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잘 짜여진 드라마로 보이고 싶었는지 탐정단을 배우처럼 활용한다. 이는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게스트가 대부분 배우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드라마의 극적 구성을 중시하다 보니 예능을 통한 웃음보다 짜임새를 우선순위에 둔다.
문제는 전체적인 맥락이 좋아도 디테일이 훌륭하지 못하면 예능은 빛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작품을 택한 시청자는 웃음과 흥미로운 두뇌싸움을 원해서지, 추리 드라마를 희망한 게 아니다. 헌데 추리 드라마에 중점을 두다 보니 각각의 캐릭터가 빛을 발휘하지 못한다. 예능인 3인방의 개인기에 의존한 웃음만 보여준다. 마치 배우처럼 움직이다 보니 예능이 지닌 역동성이 살아나지 않는다.
그러면 추리가 진중하고 흥미로워야 하는데, 추리에는 예능을 더하려다 보니 유치한 감이 크다. 진중한 순간에 게임을 통해 힌트를 알아내는 과정은 웃음의 포인트를 잘못 잡았음을 보여준다. 게임 역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보다는 <런닝맨> 스타일에 다소 유치한 느낌이 강하다. 때문에 <크라임씬>처럼 두뇌를 자극하는 진중한 추리도, <대탈출>처럼 역동적인 두뇌싸움도 선보이지 못한다.
시청자마다 웃음을 느낀 포인트는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아쉬움이 드러났던 장면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시즌1 1화에서 이광수와 유연석이 함께 핵심장소로 향하는 장면이다. 다른 팀은 빠르게 미션을 수행해 장소에 도착한 반면, 이 두 사람은 한참을 물폭탄을 맞으며 촬영에 임한다. 이 에피소드 이후 특정 팀이 게임에서 유난히 뒤처지는 경우가 없었다는 점은 콩트 상황에서 리얼리티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이 담긴 순간이라 본다.
콩트 상황에 집중하면 극의 흐름이 부드럽지 못한 장면들이 다수 등장하게 된다. 콩트의 진행이 촘촘할수록 출연진이 제작진의 의도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진행이 힘들어진다. 제작진이 의도한 듯 움직이거나 단서를 생각해 내는 출연진의 모습은 극적 완성도는 높이지만 예능을 생각했던 시청자에게는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예능의 웃음은 인위적일 때 그 강도가 약해지는 법이다.
두 번째는 시즌2 마지막 2화에서 보여준 꽃의 살인마와 관련된 에피소드다. 시즌2는 연쇄살인마인 꽃의 살인마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중심 플롯이다. 이를 위해 도입부에서 K를 죽이는 파격적인 선택을 한다. 개인적으로 이 선택은 악수였다고 본다. 이 작품의 탐정단 자체가 중심이 잡히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들을 하나로 모은 중심 캐릭터를 없애니 팀의 결속력과 목적성이 상실된 느낌을 준다.
이런 상태에서 꽃의 살인마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다소 지루하게 흐른다. 그 이유는 시즌3에서 나타나는데 캐릭터 설정 자체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그저 꽃말을 통해 살인을 저지르는 멋있는 악역 캐릭터에 집중하다 보니 본질적으로 어떤 캐릭터를 구상했는가 하는 아이디어가 부족하다. 마인드맵을 펼쳤을 때 이 캐릭터 자체에서 나올 수 있는 특성이 부족하다는 소리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의 흥미를 자극하기 부족하고, 핵심 에피소드 역시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가 부족하다.
여기에는 배우들을 활용하며 높은 수준의 드라마를 선보일 예정이었으면서 막상 인물 사이의 관계는 끈끈하게 만들어내지 못한 설정 미스가 크게 작용한다. 차라리 꽃의 살인마 에피소드와 관련된 중심 캐릭터들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구성했다면 몰입을 더했을지 모르겠는데, 잠깐씩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사실은 촘촘하게 엮여 있었다는 설정을 보여주려다 보니 노골적인 대사가 등장해 추리의 묘미를 떨어뜨린다.
세 번째는 시즌3 수영장 장면에서 세훈과 세정의 케미다. 이 수영장 장면에서 세훈과 세정은 좋은 케미를 선보이며 미션을 해결한다. 놀라운 건 이 호흡이 마지막 시즌 마지막 회차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캐릭터가 완전한 콩트로 이뤄져 그 관계까지 각본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기에 관계설정은 출연자의 몫이었다. 주말 예능처럼 매주 보는 사이가 아닌 이상 관계성을 빠르게 구축하기 힘들다. 서로 예능에서 맞춰보면서 이뤄지는 합이 있기 때문이다.
시즌3 첫사랑 찾기 편에서 유재석-이광수-김종민이 한 팀을 이뤘을 때 순도 높은 웃음을 만들어낸 건 이런 합에 있다. 다수의 예능에서 서로 호흡을 맞췄기에 각자가 상황에서 원하는 반응을 안다. 드라마적인 구성을 높이려 했다면 콩트 상황에서도 확실하게 캐릭터와 관계를 설정해 주었어야 했다. 예능에 있어 뛰어 놀을 공간을 적게 설정하다 보니 캐릭터와 케미가 뒤늦게 잡히는 아쉬움을 보여준다.
<범인은 바로 너!>가 넷플릭스의 첫 예능 시도를 암울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는 시즌3에 있다. 시즌3는 이전 시즌들과 달리 8회차로 끝이 난 건 물론, 그 결말에 있어서도 완성도가 굉장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던져 놓은 떡밥을 제대로 회수하지 않은 건 물론 자랑으로 여길 만큼 탄탄했던 짜임새가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제작진이 지쳤다는 건 무책임한 소리로 들릴 것이다.
개인적으로 시즌3의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안재욱의 하차다. 앞서 시즌2가 공개되기 전 음주운전으로 자숙에 들어간 안재욱은 시즌3에 등장하지 않았다. 안재욱의 경우 다른 출연진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 바 있다. 허나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전직 탐정 역할인 그가 빠지면서 탐정단이 지닌 안정감이나 현장에서 경찰들과 보이는 관계성이 상당히 약화되는 측면을 보였다. 박민영과 호흡이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하차 후 박민영과 탐정단 사이의 연결고리가 다소 느슨해지는 측면을 보이기도 한다.
시즌3에서 박민영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 거처럼, 어쩌면 안재욱 캐릭터가 특정한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었다면 시즌3의 허술함이 이해가 간다. 극적인 촘촘함은 역설적으로 내부에서 구멍이 뚫릴 때 이를 메꾸는 힘이 부족하다. <무한도전>이 조정특집 당시 폭우로 연습을 못하자 멤버들을 모아 ‘동거동락’ 컨셉으로 한 회차를 채운 것과 달리 <범인은 바로 너!>는 잘 짜인 각본이 없으면 회차를 채울 수 없다.
<범인은 바로 너!>는 시즌4는 없지만 스핀오프는 나올 수 있다는 여지를 두었다. 허나 이 예능에게 필요한 건 시즌4다. 추리 예능을 내세웠으면서 떡밥 회수 없이 끝을 낸다는 건 직무유기다. 이미 정해진 컨셉과 흐름을 바꾸기 힘든 만큼 정해진 틀 안에서 탐정단의 유기적인 호흡과 폭소를 유발하는 웃음이 다시 한 번 등장했으면 하는 바이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