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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낭만을 담은 정통 느와르의 등장

넷플릭스 오리지널 <낙원의 밤>


제77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초청되어 해외평단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낙원의 밤>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넷플릭스 공개를 택했다. 4월 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인 이 작품은 근래 보기 드문 정통 느와르다. 느와르의 낭만을 품고 있으면서 현실적인 잔혹함을 통해 감정적인 격화를 자아낸다. 그 공간이 대한민국에서 이국적인 매력을 품고 있는 제주도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신세계>를 시작으로 <대호>, <V.I.P>, <마녀>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스토리텔러로의 면모를 선보여 온 박훈정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흥미로운 스토리에 세련된 연출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모든 것을 잃은 남자가 조직의 표적이 된 후 제주도에서 만난 여자를 통해 희망의 빛을 보고자 하지만 현실의 벽에 당도하는 전개를 선보인다.     



어둡고 처절한 핏빛 느와르의 매력     


조직의 에이스 태구는 상대 조직인 북성파에 의해 유일한 가족이었던 누나와 조카가 죽임을 당하자 복수를 감행한다. 북성파 보스 암살을 시도한 태구는 러시아로 밀항하기 전 제주도로 떠난다. 무기상인 삼촌과 지내는 재연은 태구의 등장이 반갑지 않다. 한때 잘 나가던 조직원인 삼촌 때문에 아픈 기억이 있는 그녀에게 태구는 불편한 존재일 뿐이다. 허나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재연은 그 불편함을 티내지 않고 초연한 모습을 보인다.     


재연은 태구로 하여금 그의 존재를 다시 되짚게 만든다. 재연은 태구와 태구의 누나가 지닌 특성을 모두 담고 있다. 태구의 누나 역시 시한부 삶을 살고 있었고, 태구가 하는 일을 탐탁지 않아 했다. 자신이 죽고 태구마저 사라지면 세상에 홀로 남을 조카를 걱정했던 누나처럼, 태구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자신과 같은 마음일 재연에게 누나가 염려했던 감정을 느낀다. 이 마음은 태구가 재연에게 마음을 열며 두 사람 사이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이런 재연과 태구 사이를 시시각각 위협해 오는 공포는 내륙에서 펼쳐진다. 북성파의 2인자인 마 이사는 위기의 상황에서 조직을 재정비하고 반격에 나선다. <신세계>와 <V.I.P>에서 선보인 바 있는 박훈정 감독의 어둡고 피 냄새 나는 화면은 느와르 장르를 만나 그 매력을 더한다. 조직 사이의 결투로 피가 점점 진해질수록, 온연한 어둠을 지닌 제주 밤하늘의 아름다움은 상반된 느낌으로 감정을 자극한다.     



배우 엄태구의 질감을 담다     


이 작품의 느와르 색채는 배우 엄태구가 지닌 질감을 통해 완성된다. 엄태구의 배역 이름은 그의 이름과 같은 태구다. 태구는 엄태구 그 자체와 같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남성적인 외모를 지닌 그는 느와르의 색깔과 어울린다. <밀정>에서 하시모토 역으로 강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주목받았던 그 인상을 태구란 캐릭터에 담아낸다. 복수를 결심한 태구의 모습은 극 전체를 강하게 휘어잡는 힘을 보여준다.    

 

제주도로 간 이후 시니컬한 재연과 만나며 코믹한 면모를 선보이기도 하지만, 북성파가 나타나며 강인한 생명력을 선보인다. 특히 다수의 조직원들과 뒤엉켜 싸우는 장면은 재연을 혼자로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배신과 암투가 연발하는 느와르 장르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의리와 사랑의 로망을 담는다. 이런 엄태구의 활약은 재연 역의 전여빈과의 호흡을 통해 더 빛이 난다.     


재연은 여성 캐릭터는 조연에 가까운 느와르 장르에서 자신만의 주체성과 의지를 드러낸다. 태구의 운명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자 한다. 때문에 두 사람 사이의 관계도 사랑보다는 강한 우정처럼 느껴진다. 재연은 보호받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마 이사 역의 차승원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유머로 극의 흐름을 유연하게 만드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낙원의 낭만과 밤의 어둠이 지닌 관계     


<낙원의 밤>은 어둠이 깊어질수록 밝게 빛나는 밤하늘의 별빛에 주목한다. 제주도는 낙원을 상징한다. 태구는 조직이 지닌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 제주도를 향한다. 그곳이 낙원인 이유는 그가 영원히 잃었다 생각했던 자신과 같은 존재인 재연을 만났기 때문이다. 가족이 같은 기억을 간직한 거처럼, 태구는 그의 과거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재연을 통해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얻는다.     


이 희망은 제주도란 공간을 통해 투영된다. 이 이상향은 태구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별이 밝게 빛나는 건 주변이 어둡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북성파 무리가 나타나면서 어둠은 점점 짙어진다. 때문에 관객은 이 느와르가 그리는 낭만과 현실에 더 깊게 몰입할 수 있다. 낭만이 짙어질수록 현실이 더 가깝게 다가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느와르 장르가 지닌 하드보일드 스타일에 문학적 감수성을 공간을 이용해 표현한다.     


커피로 치자면 진한 에스프레소처럼 정통 느와르의 색을 담아낸 이 작품은 분위기를 통해 몰입을 더하는 힘을 보여준다. 스토리에 있어 마지막 10분에 모든 에너지를 부으며 극적인 산만함을 가져오는 측면은 아쉽지만, 오락성에 치중해 지나치게 어둡거나 가벼운 전개를 선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만이 지닌 특유의 분위기는 60~70년대 갱스터 영화의 향수와도 같은 느낌을 선사할 것이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 이 글은 추후 가려진 시간 블로그와 오마이뉴스에 게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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