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폭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쟁이 지닌 공포를 보여주며 한 가지 사실을 상기시켰다. 전쟁은 그 자체가 범죄이기에 전쟁범죄의 선을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민간인 학살을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르고 있다. 전쟁의 위협 속에서는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이 사태 속에서 한 편의 의미 있는 영화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덴마크 영화 <폭격>이 그 주인공이다.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을 배경으로 한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각 캐릭터를 조명하다 ‘폭격’이란 하나의 사건을 통해 인물들을 한 공간에 모은다. 이 폭격의 이유는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다. 게슈타포는 자신들의 기지를 보호하기 위해 레지스탕스들을 감금해 인간방패로 세운다. 영국 공군은 상황을 종결시키기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각오하고 폭격 작전을 진행한다.
이 게슈타포 기지 근처에는 수녀원이 있다. 소년 헨리는 전투기의 총격으로 죽은 시체를 보고 트라우마를 겪는다. 말을 하지 못하게 된 헨리를 위해 어머니는 하늘이 적게 보이는 코펜하겐의 친척에게 보낸다. 친척은 자신의 딸 리모어와 함께 헨리를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보낸다. 리모어는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본 친구 에바는 멀쩡하게 말을 한다며 리모어도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한다.
헨리와 에바는 전쟁이 아이들에게 남긴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캐릭터다. 전쟁은 미래세대에게 트라우마라는 고통을 남기며 희망을 그리지 못하게 막는다. 헨리는 말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소통을 잃어버린다. 에바는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생기며 가족과의 사이에서 단절을 겪는다. 헨리를 진료하던 의사와 에바의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는 장면은 어른이 저지른 전쟁이란 폭력이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수녀 테레사는 종교의 믿음 속에서 신의 이름을 갈구하는 캐릭터다. 나치에 의해 고통 받는 덴마크를 외면하는 신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가 하면 수녀의 신분으로는 금지된 남자와의 키스를 한다. 이 키스를 받는 캐릭터가 민족반역자로 게슈타포에서 일하는 프레데릭이다. 테레사는 악마라 여기는 프레데릭과 키스를 하면 신이 응답을 줄 것이라 여긴다. 이 키스는 프레데릭의 마음을 녹이며 그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계기가 된다.
이 옴니버스 드라마가 재난 장르로 변하는 건 폭격을 통해서다. 폭격의 목적은 정의다. 허나 희생은 정의가 될 수 없다. 폭격이 작전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폭탄은 게슈타포 기지와 함께 수녀원에 떨어진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절망과 희망을 함께 그려낸다. 수녀원에서 희생을 당한 이들의 모습은 절망이지만, 이 사건을 통해 각자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헨리와 에바의 모습은 희망을 전한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건 전쟁영화의 공식이기도 하다. 전쟁영화의 대표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예로 들면 라이언을 구하기 위해 파병된 군대는 죽음이란 절망에 빠지지만, 라이언이 전장에서 살아 돌아오면서 임무를 완수하는 희망을 보여준다. 이 작품 역시 폭격 작전의 실수로 인한 희생은 전쟁이 지닌 절망을 보여준다. 동시에 절망에 빠졌던 두 캐릭터에게 생존이란 희망을 부여하며 미래를 그린다.
<폭격>의 흥미로운 점은 재난영화의 공식을 따르면서 개개인의 캐릭터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에 있다. 재난에 초점을 맞추고 캐릭터에 역할을 부여하는 재난영화의 구조와 달리 모든 캐릭터에 서사를 부여하며 관객이 납득할 만한 결말을 각자에게 부여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민족반역자이자 유대인을 비난하는 학생인 그레타는 폭격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다. 반면 헨리는 폭격을 계기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폭격’은 현재의 악을 무너뜨리려다 미래의 정의 역시 함께 함몰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전쟁은 현 세대의 고통과 아픔으로 끝이 아닌 후세대가 짊어져야 할 역사의 상처를 함께 남긴다. 무너진 잔해를 일으켜 세우는 건 후대의 몫이다. 전쟁이 지닌 고통의 의미를 조명한 이 작품은 유럽에 다시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를 통해 이 의미를 각인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