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 [방과 후 전쟁활동]
티빙이 선보인 새로운 오리지널 시리즈 ‘방과 후 전쟁활동’은 넷플릭스의 히트작 ‘지금 우리 학교는’을 떠올리는 요소들로 주목받았다. 웹툰 원작에 디스토피아 세계관, 위기에 빠진 학생들의 분투를 장르물의 매력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예고편 공개 당시에는 원작 속 구체와 외계생물체를 더욱 디테일하게 표현하면서 학원 밀리터리 SF 액션이란 실험적인 장르의 성공적인 표현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작품은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입시전쟁이 아닌 진짜 전쟁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하늘 위에 의문의 구체들이 나타나면서 국가에서는 비상상황 선포와 함께 학도병 모집을 진행한다. 그 대상은 고등학교 3학년. 수시가 폐지된 상황에서 이들에게 주어진 당근은 수능 가산점이다. 초반 학생들은 자신들이 전쟁에 동원될 것이란 생각 없이 병영캠프처럼 훈련을 즐긴다.
사격훈련을 위해 학교 밖을 나선 학생들은 멘붕에 빠지게 된다. 세기말에 가까운 도시와 사람을 식량으로 삼는 외계생명체의 존재, 이들을 지키려던 담임교사의 죽음을 경험하며 교실과 책상 위가 천국처럼 느껴지는 최악의 지옥을 경험한다. 밀리터리 SF 세계관의 구축에 심혈을 기울인 CG와 신체절단이 무자비하게 등장하는 고어의 장르적 쾌감은 ‘방과 후 전쟁활동’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이다.
이를 통해 만화를 원작으로 할 경우 동반할 수 있는 위험인 코스프레 느낌을 최소화 했다. 더해서 학생들이 겪는 공포를 시청자가 체감할 수 있게 잔혹한 질감을 선보인다. 매 회차마다 감정적인 격화를 이끌어 내는 포인트 역시 잊지 않았다. 친구의 죽음, 보금자리라 여겼던 학교의 붕괴, 동료의 희생을 택해야만 하는 상황 등등 잔혹한 현실과 마주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내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다만 이 장점을 만나기까지는 거의 2시간을 인내해야 한다. 1화는 군사훈련에 참가한 학생들의 모습을 예능의 형식으로 담아낸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학생판 진짜 사나이를 보는 기분이다. 군사훈련이 학도병 차출로 이어질 것이라 여기지 않은 3학년 2반 학생들은 병영캠프를 온 거처럼 시간을 즐긴다. 문제는 이런 모습으로 학생들 사이의 드라마를 다 소진한다는 점이다. 액션에 긴장감을 더하는 건 관계성이다.
학생 개개인의 캐릭터는 잘 잡았지만 이들 사이의 관계성을 강하게 엮지 않으니 극적인 긴장감이 떨어진다. 유머장면 역시 관계성에 기반을 두지 않으니 무의미하고 지루하게 다가온다. 산삼보다 쓴 고3을 보내는 학생들이 예능에 몰두하다 보니 이 시기의 고민과 성숙함이 캐릭터에 담기지 않는다.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어도 될 만한 드라마가 완성된 셈이다.
더해서 현실성과 개연성 문제는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구체와 관련된 디테일한 설정이 공개되었을 때 기대감이 높았던 이유는 성공적인 각색이 이뤄졌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약한영웅’처럼 콘텐츠에 맞춘 변화가 갖춰졌을 것이라 여겨졌다. 이 기대는 땅으로 떨어진 구체를 군인들이 공격하는 장면부터 무너진다. 전체적인 완성도를 고려하는 게 아닌 장점만 부각시키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은 신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캐릭터 간의 관계설정을 유기적으로 만들어 내지 못하니 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방식으로 신파를 택한다. 이런 문제점들은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도 언급되었던 요소들이다. 차이점이라면 ‘지금 우리 학교는’의 경우 외부적으로는 좀비의 위협을, 내부적으로는 돌연변이 좀비가 되어버린 학생들을 활용해 긴장감을 자아냈다. 좀비보다 무서운 인간이라는 좀비물의 공식에 충실하면서 학교를 공간으로 창의적인 액션장면을 만들어 내는 데에도 주력했다.
‘방과 후 전쟁활동’은 장르적 매력을 더욱 극대화시킬 드라마적인 요소에 안일했다. 티빙의 전반적인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으로 본다면 이전 공개작인 ‘아일랜드’와 대비되는 아쉬움을 보여준다. ‘아일랜드’는 원작자의 참여에도 불구 원작과 다른 각색 방향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반대로 이 작품은 각색이 필요한 지점들을 방치하고 초반을 학원판 진짜 사나이라는 예능으로 구성하는 안일함을 보여줬다.
‘아일랜드’ 때에 이어 티빙은 다시 한 번 빛 좋은 개살구에 머무르는 오리지널 시리즈를 2023년에 선보이게 되었다. 국내에서 시도하기 힘든 실험적인 장르의 도전과 젊은 배우들을 위한 기회의 장을 열었다는 점만으로 찬사를 보내기에 아쉬운 작품이다. 파트2에서 드라마틱한 반전을 기대하기 힘든 만큼 티빙에게는 또 다른 아픈 손가락이 될 것으로 보이는 ‘방과 후 전쟁활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