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무려 전 세계 25관왕을 달성한 화제의 영화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유수의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으며 관객상을 휩쓴 그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가 4월 19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90년 캐나다를 배경으로 낯선 곳에서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였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오직 아들을 위해 정든 한국 땅을 떠나야 했던 어머니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미나리>, <파친코>를 잇는 K-이민자 스토리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런 화제작을 키노라이츠에서 놓칠 리가 없겠죠?
아들 동현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소영을 연기한 배우 최승윤은
토론토, 벤쿠버, 시애틀 찍고 부산까지 다수의 영화제를 섭렵한 건 물론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무려 첫 장편영화에서 주연을 맡아서 이뤄낸 성과입니다.
안무가 및 무용수, 배우는 물론 연출까지 다방면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팔방미인인 만큼 정말 궁금한 내용이 많았는데요. 그 궁금증을 모두 해소할 수 있는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부터, 배우 최승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1990년대 어머니 캐릭터를 연기했는데요.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셨나요?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감독님과 많은 자료들을 주고받았어요. 70년대 한국 영화와 음악들이었는데 그게 소영 캐릭터가 보고 자란 시기의 작품들이에요. 그 시기 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영상자료원에서 보고 기억에 남는 건 감독님께도 보내드렸어요. 감독님께서는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LA 폭동 등 레퍼런스를 공유해 주셨고요.
영화에서는 소영의 과거에 대해 내레이션만 나와요. 다만 영화에서 생략되었다고 해서 배우가 (소영의 그 시간을) 생략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도 공을 들였어요.
소영은 극에서 두 명의 동현이와 호흡을 맞추잖아요.
귀여운 아이 동현을 연기한 황도현 배우, 사춘기에 접어든 10대 동현을 연기한 이든 황 배우와 호흡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아역 동현이(황도현)는 실제로도 애기에 너무 귀여웠어요. 도연이가 저를 많이 따라서 정말 조카처럼 잘 지냈어요.
이든(이든 황) 같은 경우에는, 제가 처음에 10대 남자아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좀 있었거든요.(웃음) 근데 만나 보니 너무 젠틀하고 착한 친구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는데 엄마랑 동현이가 아침에 밥 먹다가 싸우는 장면을 촬영할 때였어요.
이든이 저한테 화내는 걸 주저하더라고요. 소리를 질러도 되나 주저하는 거 있죠. 그래서 말해줬어요. 진짜 엄마랑 싸우는 거처럼 화내도 돼. 마음껏 화내.
실제로 도현이, 이든이랑 관계가 만들어지다 보니 그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연기에서 더 확장시킬 수 있었어요. 제가 모성애라는 모르는 감정에 대해 연기할 수 없다보니 알고 있는 감정을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소영을 연기했어요.
캐나다에서 촬영을 한 작품인데요, 출연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연출한 영화(‘아이 바이 유 바이 에브리바디’)를 계기로 알게 된 한국 캐스팅 디렉터 분이 계세요. 수 킴이라고. 그분을 통해 이 영화에 대한 소식을 듣고 호기심에 오디션에 지원했어요.
2차 오디션 때 처음 전체대본을 봤어요. 그때 들은 생각이 너무 슬픈데? 소영이 너무 기구하고 불행한 인생을 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자세하게 읽어보고 다른 식으로 이해하다 보니 불행한 이야기가 아닌 불행한 조건 속에서 어떻게 최선을 다해 살았나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캐나다에서 촬영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어떠셨나요?
-촬영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독립영화의 장점인지 작은 팀이 손발이 착착 맞게 돌아갔어요. 감독님이 연극하실 때 친구 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캐나다에서 촬영 장면들은 대부분 소영이 전투모드로 살아가는 지점들이라 묵직한 게 가슴 한구석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극중) 공장언니들이랑 대화할 때를 제외하고는 싸우는 모습이 대부분이라서. 오히려 한국에서의 소영이 늙고 병든 몸이지만 마음은 한결 편했다고 봐요.(웃음)
영화 후반부에 소영은 동현과 함께 한국에 오는데요.
한국에서의 촬영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한국에 와서는 촬영이 편했어요. 배우들이 소영과 동현으로 내면화가 많이 되어 있어서요. 강원도 양양에서 촬영을 했는데 편의점에 가려면 차타고 20분은 가야하는 곳이었어요. 농어촌 체험하는 숙소 같은 곳을 빌렸는데 다 함께 MT 온 거 같은 즐거운 분위기였어요.
이든도 커서 한국에 처음 오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시골에 처음 와 봤다는데 개구리도 잡고 재밌게 놀더라고요.(웃음)
정말 감사한 게 감독님 한국 식구 분들이 와 주셔서 캐릭터링에 도움을 주시고 저희 식사까지 챙겨주셨어요. 직접 상을 차려주셨는데 만두가 기억에 남아요. 너무 맛있어서 어디건가 했는데 감독님 외삼촌 분께서 직접 빚은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영화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또 빼놓을 수 없는데요.
혹시 들려주고 싶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나요?
-영화를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어요. 필름으로 찍다 보니 촬영할 때 긴장감이 느껴지더라고요.(웃음) 롤을 가는 순간 모두 돈이 되는 걸 아니까. 최대한 실수를 안 하려다 보니 높은 집중력을 이끌어 내게 되더라고요.(웃음)
대표적으로 동현이와 아침에 싸우는 장면이 6분짜리 롱테이크였어요. 동현이한테 하는 대사가 길었는데 말이 씹히면 안 되니까. 대사를 잘하면 잘할수록 더 긴장이 되더라고요. 너무 심장이 뛰어서 그 소리가 마이크에도 잡혔어요.(웃음)
또 기억에 남는 게 필름을 인화할 때였어요. 보통은 필름이니까. 인화가 잘못될 수 있어서 안전하게 2~3번은 찍을 텐데 감독님께서 장면들을 한 번씩만 찍어놓으셨어요. 편집할 때 옵션을 더 주고 싶지 않아서 완벽한 하나만 있게끔 하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LA랩에 필름을 맡겼는데 인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감독님께서 공포를 느끼셨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필름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초조하셨다고 해요.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반응이 화제였다고 하는데요.
관객 분들이 아무도 환호하지 않아서 깜짝 놀라셨다면서요?
-맞아요. 토론토나 벤쿠버에서는 난리가 났었어요. 박장대소하고 울고, 다 함께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웃음) 저희가 북미 관객 분들을 먼저 만나다 보니 이 반응에 적응이 되었어요. 한국 관객 분들과 부산에서 처음 만났는데 런닝타임 내내 조용하시더라고요. 집중하시는 건 느껴지는데... 크레딧이 올라갈 때도 나가시는 분은 없는데... 박수도 없어서 좀 당황했어요.
나중에 GV 때 다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빛이 반짝이는 게 느껴져서 그때 마음이 놓였어요. 생각해 보면 저도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가는데 다들 가만히 앉아서 작품을 감상한다는 생각이 나중에 들더라고요.
<라이스보이스 슬립스>로 세계 각국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는데요.
최근 K-문화가 열풍이잖아요. 이 열풍을 체감하는 순간이 있었나요?
-체감했던 건 사우디 아라비아, 모로코에 갔을 때였어요. 그곳에서 한국말로 인사하는 팬 분들을 보고 좀 놀랐어요. 저희 영화가 해외에서 큰 관심을 받은 게 북미에서는 새로운 이야기라고 해요. 가족 이야기, 여성 서사를 동양인이 한다는 게 굉장히 새로운 거라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들었어요.
한국 교민 분들이 TV를 켰을 때 (영화 속 소정과 같은 캐릭터를) 백인이 연기하는 건 많이 봤는데 아시아 배우가 연기하는 건 처음 보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개인적인 도전으로 여겼는데 더 큰 움직임에 함께하게 된 거였어요.
(앤소니 심) 감독님처럼 이민 세대들이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창작할 수 있는 시간, 아시아 예술가들의 시대가 온 거 같아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그런 때가 말이죠.
무용과 전공으로 안무가이자 무용가로도 활동 중이신데요.
직접 체감한 안무와 연기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번 작품의 경우 촬영 방식에서 공통점이 있었어요. 무대 위에서 무용할 때 관객 분들에게 ‘다시 할게요’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 책임감이 공통으로 느껴졌어요.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하나 있어요.
소영이 의사를 만나는 장면에서 내용을 적기 위해 펜을 꺼내거든요. 그런데 펜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이때 의사가 다른 펜을 사용하라며 주는데 이 장면이 애드립이에요. 촬영을 끊어서 갈 수 없어서 의사 역 배우 분께서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주셨어요.
이번 영화로 첫 장편영화 주연에 도전하셨는데요.
배우로 얻은 성과나 만족에 대해 평가하자면?
-너무 좋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는데. 평소에 누가 저한테 관심을 보이고 궁금증을 가지겠어요.(웃음) 이번 작품이 너무 좋았어서 첫 경험을 잘한 거 같아요.
제가 신체를 매체로 하는 예술을 배운 사람이다 보니 연기도 이에 확장된 개념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이 예술매체(영화)를 더 경험해 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코미디 연기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웃음) 시트콤을 좋아해서요. 좀 웃긴 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키노라이츠 유저 분들에게 <라이스보이 슬립스>를 꼭! 극장에서 봐야하는 매력 포인트를 추천해 주세요.
-저희 영화가 롱테이크로 진행되는 장면이 많아요. 때문에 영화를 보면 볼수록 새로운 게 보이고 들려요. 작년 3~4월 즈음에 처음 완성본을 보았을 때는 제 연기에만 신경 쓰다 보니(웃음) 저만 보였어요. 영화제를 통해 영화를 반복해서 관람하다 보니 3번째부터 많은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깊은 의미를 지닌 영화인 만큼 꼭 극장에서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볼수록 많은 게 보이니까 n차 관람 부탁드려요.(웃음) 친구, 가족 분들과 함께 와주세요.
사진제공 : 국외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