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무려 전 세계 25관왕을 달성한 화제의 영화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유수의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으며 관객상을 휩쓴 그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가 4월 19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90년 캐나다를 배경으로 낯선 곳에서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였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오직 아들을 위해 정든 한국 땅을 떠나야 했던 어머니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미나리>, <파친코>를 잇는 K-이민자 스토리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런 화제작을 키노라이츠에서 놓칠 리가 없겠죠?
캐나다 이민자 출신으로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영화에 녹여낸 앤소니 심 감독은
올해 가장 감동적이면서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토론토 영화제 상영 당시 관객들의 눈물 콧물 다 빼며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해요.
그런 앤소니 심 감독이 가장 긴장한 순간이 있었다고 하니!
바로 부산국제영화제 때라고 합니다.
GV가 시작하기 전에 도망치고 싶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사연이 있는지 다들 궁금하실 겁니다.
그 이야기, 키노라이츠에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감독 앤소니 심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전 세계 27관왕을 기록했습니다.
물론 상 하나하나가 다 소중했을 텐데요.
그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상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상이죠. 제게 가장 의미가 있는 상이었고, 되게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이 영화는 한국에 대한, 한국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던 만큼 한국 관객 분들이 잘 봐준다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아니면 상처를 받았을 거예요.
한국 관객 분들 앞에서 처음 상영을 한 곳이 부국제였어요. GV 질문들도 다른 곳에서 못 들어본 참신한 질문이 많았고요. 반응이 깊이 영화를 느낀 거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상을 받아서 좋았던 것보다 한국 관객 분들이 이 영화를 택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상을 받으면서 한국 관객 분들에게도 눈도장을 찍었는데요.
헌데 처음에는 부산에서 관객 분들 반응이 전혀 없어서 당황하셨다면서요?
-네, 맞아요.(웃음) 3~5분 크레딧 올라가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이거 어떡하지? GV를 안하고 도망칠 수 있을까? 빨리 비행기를 탈까?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했어요.(웃음)
그래서 GV 때 반응에 깜짝 놀랐어요. 한국 관객 분들이 어떻게 반응을 하실지 정말 몰랐어요. 부산 프로그래머 분께서 영화 잘 봤다고 좋은 평을 해주셔서 혹시나 했는데 정말 다행이었어요.
아무래도 해외에서 오랜 시간 생활한 만큼 한국적인 정서를 담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거 같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한국의 과거에 대해 잘못 알거나 너무 외국 사람의 시각에서 바라본 거처럼 표현이 될까봐. 한국 관객 분들이 틀렸다 여기게 표현을 하면 어쩌나 하는 게 있었어요.
특히 강원도에서 촬영을 했을 때. 옷차림이나 대사가 시골 사람에 대한 편견을 지닌 것처럼 보일까봐. 흉보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노력을 많이 했어요. (최)승윤 씨한테 대사에 관해서 조언도 많이 받고, 소품도 신경을 많이 쓰고요.
특히 고려장이 가장 걱정이 많았어요. 우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그 뜻이 저한테 큰 의미를 지니고 있거든요. 저의 의도는 고려장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아름답게 표현하고 감동을 주려로 영화에 쓴 건데.
한국 분들 입장에서는 고려장 이야기가 기분 나쁘게 다가올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니라 여기실 수도 있어서. 그런 부분을 좀 걱정했어요.
고려장 이야기도 그렇고 도입부 내레이션을 보면 동화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라이스보이 슬립스>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한국에서 자랄 때 기억하는 가장 첫 추억이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들이에요. ‘홍길동전’ ‘심청전’ 같은 책들이 이야기는 물론 그림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이런 동화들을 보니 한국 동화책은 정말 슬픈 게 많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생하고 어렵게 사는 이야기가 많아요. 이 영화도 어떻게 보면 이민자들에 대한 동화예요. 때문에 동화 같은 스타일로 적었어요. 오프닝 내레이션도 그런 느낌을 담고자 했고요. 시나리오를 쓸 때가 한국 동화, 악기, 음악에 관심이 많을 때였어요. 어느 날 어머니께서 판소리 공연 영상을 보여주셨는데 그 내용이 고려장이었어요.
그때 어머니에게 고려장이 무엇인지 처음 들었어요. 영화의 결말부와 연계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한국 어르신들, 특히 옛날 어머니들은 자식을 생각하면서 살아왔잖아요. 소영도 그렇게 살아온 캐릭터고요.
이 영화는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반영되어 있는데요.
때문에 소영과 동현 가족에 감독님의 가정사도 많이 담겨있을 거 같아요.
-그때만 해도 외국에 이민을 가는 게 정말 큰 일이었어요. 그때는 한국 TV랑 영화, 음식도 접하기 참 힘든 환경이었거든요. 부모님은 평생 살아온 터전을 두고 외국으로 간 거잖아요. 정말 큰 마음을 먹은 건데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까 생각해요. 어른이 되어서 부모님께 정말 감사한 게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 저희가 교육을 받고 자유롭게 클 수 있게 해주신 거예요.
저랑 제 동생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한국을 정말 좋아하셨어요. 서울 분이셨는데 캐나다 시골에 와서 고생을 많이 하시다 외국에서 생을 마감하셨죠. 이런 말이 있어요. ‘이민자들은 수명이 10년은 짧아진다’ 집밖을 나가면 다른 언어를 쓰는 상황부터가 스트레스잖아요. 그럼에도 이민을 택하는 분들은 어떤 이유로 가셨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식구 또는 자식을 위한 마음이 더 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인 커뮤니티 분들이 한 식구 같은데 이분들이 정말 열심히 사세요. 저희 어머니에 대한 것보다 이민자 분들에 대한 솔직하고 좋은 이야기, 우리(한인 이민자)의 경험을 표현하고 싶은 이유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영화를 보면 캐나다에서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을 거 같은데요.
감독님의 유년시절 이야기와 어떻게 영화에 빠지게 되었는지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처음 캐나다에 이민 왔을 때는 섬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98~99년 즈음에 시내로 오면서 한국영화를 접할 기회가 늘어났어요. 그때는 한국 마트에서 한국 드라마, 영화, 예능을 다 녹화해서 비디오를 빌려줬거든요. 그 시기가 한국 영화 전성기 때였잖아요. 때문에 좋은 한국영화들을 식구들이 다 같이 모여서 봤어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했던 게 아니니까. 어떤 작품인지도 모르고 매주 새로운 비디오가 나오면 다 빌려서 봤어요. 그때는 한국영화를 할리우드 영화랑 완전히 다른 거라고 여겼어요. 아무리 재미있게 봐도 친구들이랑 대화할 수 없으니까. 저 혼자 집에서 보는 영화였죠.
제 인생을 바꾼 한 편의 영화를 뽑자면, ‘박하사탕’이에요. 첫 5분 사이에 설경구 배우가 기차에서 소리 지르는 장면. 13살 나이에 사람이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나 처음으로 느꼈어요. 자살에 대해서도 처음 생각했고요. 저희 부모님 시절 타임라인이라. 부모님이 자랐던 서울은 이랬었구나 생각하니 공포영화처럼 무섭기도 했어요.
이 영화로 그전에 안했던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승윤 씨에게도 ‘박하사탕’를 관람하라고 했어요. 현재 소영이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도록, 소영이 이 시기에 성장했으니까요. 우리 팀에 외국 사람들이 많다 보니 캐릭터 이해와 감정을 느끼게 만들기 위해 ‘박하사탕’은 필수 관람을 시켰어요.(웃음) ‘박하사탕’이란 영화가 감정을 표현하는 범위가 굉장히 넓잖아요. 우리 영화도 그래야 해서 필수 관람 영화로 지정했어요.
참고로 영화에서 동현이가 겪는 일들은 제가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했어요. 염색을 하고 렌즈를 끼는 건 그 시절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10대 시절에는 남들과 다른 걸 좋아하지 않잖아요. 한국 학생들도 비슷하지 않나요?
‘미나리’ ‘파친코’ 등 한국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 영화가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라이스보이 슬립스’ 역시 이 계열에 합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를 거 같은데요.
-제가 유행을 예측해서 작품을 만들 수 없는 거고. 운이 좋았던 거죠. 연기, 연극, 제작, 다 너무 좋아하고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왔어요. 동시에 어려움도 많았어요. 첫 영화(‘도터’, 2019년 작)를 만들었을 때 잘 안 되었어요. 영화제 거절 메일만 70통을 받았어요.
‘라이스보이 슬립스’를 만들게 된 이유는 저예산으로 극단 친구들끼리 한 번 도전해 보자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번에도 잘 안 되면 연출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마지막으로 만들 작품이라면 20~30년 후에도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했죠.
개인적으로 ‘라이스보이 슬립스’를 이 나이에 만든 게 중요하다고 여긴 게 10년 전이면 이렇게 만들지 못했을 거예요. 실패를 해야 실력이 늘지 않겠어요? 전 실패를 해야지 배움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실패 덕분에 준비가 되었다고 여겨요.
최근 문화현상 중 하나가 아시아 감독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선보인다는 점입니다. 감독님 역시 그 일원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아시안 영화감독들이 많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봐요. 우리 전 세대에게 영화감독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때는 전문직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우리 세대부터는 예술 쪽에 종사해도 괜찮다고 여긴다고 봐요.
우리는 거기서(해외) 자랐으니까. 거기 방식대로 일할 수 있어요.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없었던 기회가 많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이 시작 단계고 앞으로 계속 (이런 작품이) 많아질 거 같아요. 흐름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듯해요.
앞으로 유럽이나 호주에서도 한인 이민자들 또는 한국 사람들이 만드는 작품이 늘어날 거예요. 지금은 너무 드물고 작품이 몇 개 안되니까 비교하기가 쉽지만, 5년만 지나도 한인들이 만든 영화들이 훨씬 많아질 거 같아요. ‘라이스보이 슬립스’ 이후에도 2~3편이 더 나왔어요. 앞으로 이 흐름이 어떻게 전개될지 저도 기대가 돼요.
필름 카메라로 촬영을 해서 그런지 레트로 질감이 인상적인데요.
필름 카메라를 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필름을 좋아해요. 지금도 사진은 필름으로 찍어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내 영화는 이런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영화들은 전부 필름으로 찍은 것이었어요.
이 영화 배경이 90년대잖아요. 16mm 필름으로 찍으면 그때 느낌이 저절로 생겨나요. 관객 분들이 보았을 때, 어린 시절 사진 앨범 보는, 과거의 추억과 마주하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8, 35, 65 다 써 봤는데 16mm가 제가 좋아하는 느낌을 담아내더라고요.
이번 영화를 촬영하며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요.
강원도 양양을 촬영지로 선택한 이유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궁금합니다.
-한국에서의 촬영은 어려워도 자유로운 느낌이 있었어요. 벤쿠버의 경우 촬영에 법적인 제약이 엄청 많아요. 그 시스템에 따라야 했는데, 시골에 오니 어려운 점은 있어도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까. 자연 사이에서 카메라만 있으면 무엇이든 찍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캐나다에서는 공원에서 촬영을 하다가 도로 쪽을 찍고 싶다고 하면 한 달 전에 허락을 받아야 해요. 강원도 양양에서는 누가 뭐라고 하나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촬영하는 게 자유로운 느낌이 있었어요.
강원도 양양이 외가 쪽 고향이에요. 원일전이라는 마을인데 외할아버지랑 친했어요. 외할아버지한테 옛날이야기 듣는 걸 좋아했어요. 겨울에 학교 가려면 2시간 동안 눈 속에서 걸어 다녀야 하고, 감 먹고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국에 가서 친척들을 만났는데 그때 처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외국에서는 항상 외국인, 비지터라는 느낌으로 살았어요. 여기(한국 강원도 양양) 와서 처음으로 비지터가 아니라 이 땅에 서 있을 자격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생각 가지고 이 시나리오를 썼어요. 강원도에 갔을 때 받았던 느낌과 경험을 바탕으로 말이죠.
소영과 동현이 한국에 와서 겪는 일들은 제가 외가를 방문했을 때 했던 경험들이에요. 집이랑 소품은 물론이고 강아지까지 그때 그 모습을 생각하면서 모두 영화에 담아냈어요.
‘라이스보이 슬립스’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만큼 차기작에 대한 기대도 높은데요.
혹시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지와 함께하고 싶은 한국배우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장편영화를 기획하고 있어요.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는 3가지인데 다음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한국이 배경이에요. 개인적으로 송강호 배우와 함께하고 싶어요. 아마 ‘반칙왕’에서 처음 봤을 텐데 이후 ‘조용한 가족’ ‘살인의 추억’까지 정말 연기를 잘하셔서 감탄이 나오더라고요.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감독님 히트작에 송강호 배우님이 나오셔서 그런지 기억에 남아요.
올해 계획한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그냥 조용히, 아무도 안 보고 글만 쓰고 싶어요. 하루하루 일어나서 글 쓰는 게 한때는 되게 어려웠어요.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이 과연 영화로 만들어질까. 어쩌면 여기서 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 있었거든요.
이제는 그 조용한 순간이 그리워요. 9월 초부터 한 곳에 10일 넘게 있었던 적이 없어요. 지금 제일 힘든 게 글을 못 쓰고 있는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은 못하고 있는 거죠.
저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좋아하는 일이니까. 열심히 할 뿐이에요.
마지막으로 키노라이츠 유저 분들에게 <라이스보이 슬립스>를 꼭! 극장에서 봐야하는 매력 포인트를 추천해 주세요.
-외국영화라는 시각 보다는 외국에서 자란 한국 사람이 경험한 일들을 담은 이야기니, 한국영화라는 오픈 마인드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많은 감독들이 이렇게 말할 거 같긴 한데, 꼭 극장에서 봐주세요! 사운드와 비율이 스크린에서 보는 게 집과는 큰 차이가 있으니 꼭 극장에서 사랑하는 사람, 가족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가졌으면 해요.
사진제공 : 국외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