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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는 맛이 좋은 심리 스릴러 <녹터널 애니멀스>

그가 선택한 격조 높은 복수

예전에 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전 수업 시간에 각자 자유주제로 시를 적어 내고 그 중 잘 쓴 시 몇 개를 교수님이 선정해 보여주었다. 그때 인상 깊었던 시 중 하나가 ‘개와 고양이’라는 시였다. 고양이에게 꼬리를 흔들며 매달리는 개. 개는 도도한 고양이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애절하게 구애한다. 하지만 고양이가 마음을 열자 개는 원래의 본성대로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든다. 한 문학소녀가 신입생들에게 치근거리는, 자신에게 고함치고 화를 내며 이별을 통보한 남자친구에게 보내는 시라는 것을 머리 좀 있는 놈들이라면 다 눈치를 챘을 것이다. 아, 역시 글 좀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별도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넌 개새끼야 라는 천박한 말을 단 9행의 시로 시니컬하게 풀어낼 줄이야.

녹터널 애니멀스 : 네이버 영화                                                                                                                

다행히 나는 아직 더러운(?) 이별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저런 작품을 쓴 적이 없다. 아니, 저럴 용기도 없고 능력도 없다. 그래서 <녹터널 애니멀스>를 보고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으면 저럴 수 있을까? 글쎄, 내가 쓰다가 무서워서 먼저 포기할 거 같은데? 이 영화의 이야기, 너무 무섭지 않은가? 어느 날, 전 남편에게서 소설이 왔다. <녹터널 애니멀스>. ‘야행성 동물’이라는 제목은 과거의 남편이 그녀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다. 소설 속 남편은 도로 한 가운데에서 앞차와 시비가 붙는다. 그러다 타이어가 터지고, 앞차의 사람들이 도움을 주겠다며 나오고, 그들과 대립하던 중 아내와 딸이 납치당하고, 따로 납치된 남편은 홀로 외딴 곳에 버려져서 숨어 있다가 후에 경찰에 연락을 하고, 경찰에 의해 발견된 아내와 딸은 이미 죽어 있다. 이 잔혹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수잔은 전 남편 에드워드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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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의 의도는 적중했다. 그녀가 이 소설을 통해 그와의 추억을 다시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녀와 자신의 사랑에 대한 작품이다. 글쟁이 에드워드와 그런 에드워드를 사랑하는 수잔, 그리고 에드워드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수잔의 어머니. 에드워드는 수잔이 어머니를 닮았다고 말한다. 이때 그녀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과 어머니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어머니만큼 잔혹하지 않다고 말이다. 하지만 수잔은 그녀의 어머니와 같았다. 잔인하게 에드워드를 버렸고 그에게 상처를 줬다. 소설 속 에드워드가 읽어버린 아내와 딸은 수잔과 그녀의 뱃속의 아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폭력을 행사한 세 사내. 그 사내들은 바로 잔인하게 뭉개진 그들의 사랑을 의미한다. 하지만 상처라는 건 시간이 지나면 아물기 마련이다. 그들의 사랑은 망가졌지만 그 잔혹함이 살인 혹은 생채기로 남은 것은 아니다. 증거가 없는 감정의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며 그 약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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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소설 속 바비의 역할은 중요하다. 바비는 에드워드에게 그 사랑을 계속 상기시키는 인물인 것이다. 어떤 경찰이 피해자의 가족에게 그토록 자세하게 수사 경위를 보고하며, 같이 수사에 참여시키고 아픈 상처를 계속해서 반복시키겠는가. 바비를 통해 에드워드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잔혹함을 보라고 말이다. 왜 에드워드는 이 사랑을 잊지 못했던 것일까? 정말 그들의 사랑이 강간 살인이라는 소설 속 사건 만큼 그에게 뼈아팠던 것일까? 난 이 감정이 나약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에드워드는 나약했다. 그에게는 자신의 사랑을 지켜낼 힘도, 자신감도 없었다. 마치 무력하게 세 남자에게 휘둘리다 딸과 아내를 잃은 소설 속 남편처럼 말이다. 이런 나약함은 소설 속에서 잘 드러난다. 처음에는 완벽한 구조를 드러내던 소설은 후반부 약간의 이상기류를 보여준다. 남편의 캐릭터가 이상한 말들을 내뱉는 것이다. 지나치게 바비를 걱정하며 바비가 범인 중 한 명을 죽이자 ‘죽이면 안 되었다고!’라며 흥분을 한다. 이는 작가 에드워드가 가진 작품을 대하는 평정심이 결국 무너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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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완벽하고 차가운 복수’가 아닌 ‘감정에 휘말린 복수’를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에드워드라는 캐릭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약함’을 유지해야만 하니까. 나약함은 인간이 잔혹해질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다. 자기가 약하니까 겁을 먹고 겁을 먹은 무엇을 없애고 싶은 것이다. 그의 작품이 처음부터 끝까지 잔인한 이유는 명확하다. 이건 차갑지 않은 복수니까. 무엇보다 뜨거웠던 대상을 향해 내리치는 망치질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감정에 휘말렸고 후반부는 망가졌다. 단순히 ‘소설’이라는 입장에서만 봤을 때 말이다.(영화가 망가졌다는 소리가 아니다.) 헌데 그의 이 복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잔의 심리가 중요했다. 마지막 장면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그건 복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독은 화면을 통해 수잔의 심리를 창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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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선명함과 흐릿함의 대립이라고 본다. 이게 수잔이 에드워드의 소설에 빠져든 이유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수잔은 모든 것을 다 가졌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색체는 정말 선명하다. 생각해 보라. 아트디렉터 수잔이 일하는 곳을 말이다. 심지어 그곳은 인물 하나하나도 아주 강렬하다. 난 이 강렬한 색체가 수잔이 택한 미래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가 에드워드를 버리고 택한 것은 선명함이었다. 그건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수잔은 이 공간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온 소설은 이 공간과 전혀 반대의, 흐릿함을 보여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달리는 두 자동차,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넓은 광야, 그리고 ‘왜’ 자신의 아내와 딸을 죽였는지 알 수 없는 이유. 마치 에드워드를 봤던 그때처럼 흐릿한 미래를 보는듯한 그 느낌에 수잔은 에드워드를 다시 기억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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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싱글 맨>을 볼 때만 해도 톰 포드 감독이 이렇게 멋진 영화를 만들어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색체와 화면의 구도, 현재와 과거, 소설과 현실 등을 통해 절묘하게 감정을 나타내며 그 감정을 흥미롭게 풀어내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감독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하였다. 심리 스릴러에는 이런 맛이 있어야 한다. 내용이 아닌 심리로 두고 두고 씹을 수 있는 아주 질긴 맛이. 개인적으로 한 가지 궁금한 건 영화의 오프닝 장면이다. 과하게 살이 찐 여자가 나체로 춤을 추는 장면. 그 장면의 의미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난 아직도 이게 너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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