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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문화, 당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영화 그리고 세상 - 21. <소셜포비아>, <디스커넥트>

주의 : 포스트에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혹시 영화 <스노든>을 본 적이 있는가? CIA와 NSA의 정보분석관으로 정부가 테러 방지라는 명목으로 모든 이들의 개인정보를 모은다는 사실을 폭로한 내부고발자인 에드워드 스노든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무서웠던 게 하나 있었다. 지금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 앞에 달린 캠. 저 캠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작동해 나를 촬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동안 저기에 테이프를 붙여놓을까 고민도 했었다. 정보기술의 발달은 인류로 하여금 그 어느 시대에서도 누려보지 못한 편의와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예전 시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공포와 불안감을 낳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소셜포비아>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영화 <소셜포비아>에 대해 알아보자. ‘사회 공포증(social phobia)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거나 바보스러워 보일 것 같은 사회 불안을 경험한 후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는 정신과적 질환이다.’ 사전적 설명 그대로 작품은 이 ‘사회 공포증’에 대해 다루고 있다. 레나라는 여성 악플러가 한 군인의 자살 소식에 악플을 달고 이에 인기 BJ 양게가 레나와 현피를 뜨겠다고 방송을 진행한다. 공무원 준비생 지웅과 용민은 호기심에 양게 무리에 끼어 레나네 집을 향하고 그곳에서 죽어있는 레나를 발견한다. 

                                                                                                           

사회적인 비난은 그들 BJ 원정대를 향한다. ‘그들이 레나를 죽였다’ 하지만 그들은 당시의 방송에서 세탁기 소리가 들린 것으로 보아 빨래를 한 여성이 자살할 리는 없다며 ‘누군가 레나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범인 찾기. 이 범인을 찾는 과정은 인터넷 속 세상이다. 누가 인터넷에서 레나와 부딪혔는지, 누가 레나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을 겪었는지 그들은 찾아 나선다. 이 과정에서 눈에 들어오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 번째는 레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 그리고 레나라는 존재 그 자체다. 레나는 악플로 여러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그녀가 상처를 주는 방식은 이렇다. 누군가와 인터넷으로 말다툼을 하고 그 사람이 사과하게 만든다. 그러면 마치 강호의 도리처럼 사과를 한 사람은 그 커뮤니티를 떠나야 한다. 헌데 웃긴 건 이 ‘떠난다’라는 것이 낭만적인 상황이 아니다. ‘사회 공포증’을 유발시키는 극심한 질병에 걸리게 만들 만큼 강하게 몰아쳐 상대를 넉다운 시키는 방식이다.


앞서 말했듯이 정보통신망의 발달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인터넷 상에서 범한 잘못 하나가 평생을 따라갈 수 있는, 자신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욕하고 비웃고 조롱을 보내는 광범위한 비난에 노출되게 되었다. 용민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스타크래프트 카페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네임드가 되었으나 자신이 한 거짓말 하나를 레나가 물고 늘어지면서 결국 커뮤니티를 떠나야 했다. 사진까지 공개된 그는 온갖 비난과 멸시, 조롱을 들어야만 했고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터넷에 얼굴이 퍼지고 자신이 한 행동이 영원히 돌아다니는 건 어떠한 탈출구도 없음을 의미한다. 특히 인터넷과 가깝고 인터넷을 통해 큰 재미를 얻는 요즘 세대에게 커뮤니티 안에서의 배척과 낙인은 ‘살인’이나 다름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이 사건의 피해자이자 어찌 보면 여기까지 이야기를 이끈,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가려진 역사를 쓴 ‘레나’라는 인물은 대체 누구일까? 레나의 살인범을 찾으면서 지웅은 그녀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된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소설이다. 레나는 학교에서 소설 창작 수업을 들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는 마치 인터넷 속 자신의 네임드 ‘레나’처럼 가차 없는 독설을 날렸다. 하지만 본인의 작품은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교수가 작품에 대해 다 같이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해도 레나는 절대 소설을 내지 않았다. 그저 남의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그러던 어느 날 레나가 두고 간 수첩에서 교수는 그녀의 작품을 발견했고 이 작품을 복사했다. 그리고 그 순간,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간 레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레나는 싫었던 것이다. 누군가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말이다.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 공포증(social phobia)은 자신을 드러냄에 있어서 시작된다. 넷상의 익명성을 통해 가리고 가렸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 순간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인스타의 지나친 포샵, 페이스북의 허세, 트위터의 촌철살인 등 사람들은 ‘나’를 가린 채 ‘또 다른 나’를 생산함으로 자신을 지킨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에서 패배한 선수의 미니 홈피에 한 여성 악플러가 악성 댓글을 남겼다. 이후 여성 악플러의 신상 정보가 털리고 집 근처 피씨방에 모인 사람들이 여성 악플러를 찾아가려 했던 사건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여성 악플러와 동명이인 7명의 주민등록번호, 주소지가 적힌 컴퓨터 화면 캡처가 인터넷에 떠도는 등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감독은 이 사건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만약 이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갔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으로 말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그 상상은 현실이 ‘될 뻔’했다. 


남성혐오 발언을 일삼았던 BJ 갓건배에게 BJ 김윤태가 직접 찾아가 죽이겠다고 생방송을 진행한 것이다. 그는 찾아간 집이 갓건배의 집이 아니더라도 여성이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다행히 경찰 신고 등 일이 커지면서 집에 찾아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겨우 벌금 5만원으로 살인협박을 퉁친 경찰의 처사는 너무나 안일했다. 사회는 정보통신의 발달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정보통신은 인간의 어두운 먹을 좀먹으며 점점 나쁜 방향으로 커져만 간다. 개인방송 BJ 들의 범죄 예고. 온갖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킨 BJ 들은 갈수록 더 큰 자극을 찾아다니며 돈을 번다. 그들이 더 큰 자극을 찾는 것, 그런 자극에 별풍선이라는 돈을 시청자들이 보내는 것, 그건 모두 그들이 ‘외로워서’다. <소셜포비아>가 제시한 사회적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그 원인에 대해 잘 보여주는 작품이 <디스커넥트>다. 


이런 경험들 있을 것이다. 분명 이 친구는 나를 만나러 온 것이다. 그런데 나를 보지도 않고 질문에는 대충 대답하며 계속 카카오톡을 보내거나 페이스북만 보고 있다. 또 이런 사람들도 있다. 자기 사적인 이야기는 전혀 안 하고 쿨병 걸린 사람마냥 대충 대답만 하더니 자기 SNS나 블로그에는 온갖 사적인 이야기로 도배를 해놓았다. 심지어 아침 메뉴까지 올리고 말이다. 저 사람은 디지털 속에서 잘 살아서 아날로그가 필요 없나 보네? 이리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아날로그 속에서 그 누구보다 외로운 사람들이다. 현실에서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나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들이 없으니 디지털 세상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디스커넥트>는 총 4개의 이야기를 통해 디지털 세계 속 사람들이 처한 극악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방송국 리포터인 니나와 화상성인채팅 사이트에서 일하는 소년 카일, 아이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는 신디와 그녀의 남편 데릭, 음악을 좋아하는 소년 벤과 그런 벤에게 제니퍼라는 가상의 소녀로 접근하는 제이슨. 이들 각자의 이야기는 모두 SNS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준다. 니나와 카일의 에피소드는 최근 국내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던 미성년자 성매매, 신디와 데릭의 이야기는 인터넷을 통한 피싱과 사기, 벤과 제이슨의 이야기는 SNS를 통한 사생활 침해를 다루고 있다. 이 각각의 이야기가 지닌 소재보다 더 무거운 건 영화에 짙게 깔려 있는 주인공들의 ‘외로움’이다.


니나는 출세지향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평생을 혼자 달려왔고 그래서 꽤나 많은 나이에도 불구 결혼은커녕 애인 하나 없다. 신디는 아이의 죽음 이후 너무 힘이 든다. 하지만 남편 데릭은 그 고통을 이야기하는 거조차 괴롭기에 신디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한다. 벤은 소심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는 성격이다. 그들은 각자의 외로움을 넷상의 상대를 통해 해소하려고 한다. 니나는 취재로 만난 카일에게 호감을 느끼고, 신디는 인터넷의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위안을 얻으며, 벤은 제니퍼라는 음악을 좋아한다는(제이슨이 장난으로 만든 SNS 상의 소녀에게) 소녀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그 결과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니나가 한 미성년자 성매매 화상채팅 방송은 카일을 궁지로 몰아넣고, 신디는 SNS 사기로 거액의 돈을 도둑맞는다. 또 벤은 제니퍼가 요구하는 사진을 보냈다가 학교에 퍼져 자살을 기도한다.

                                                                                                       

<디스커넥트>는 <소셜포비아> 못지않게 디지털 문화가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해 낸다. 하지만 그 해결법에서 차이를 보인다. <소셜포비아>는 냉소적이다. SNS 소비문화에 심취한 젊은이들에게 크게 한 방을 날리며 고독과 괴로움을 잊기 위해 잠시 BJ 양게를 따라갔던 지웅을 다시 고시원으로 돌려보낸다. 반면 <디스커넥트>는 답을 준다. 현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두 부분 있다. 하나는 신디와 데릭이 자신들에게 사기를 친 남자를 차에서 기다릴 때 둘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 두 번째는 벤의 아버지가 벤의 SNS 계정으로 제니퍼(제이슨)와 채팅을 나누는 장면이다. 신디와 데릭은 아이가 죽고 처음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눈다. 아이의 죽음 이후 단 한 번도 두 사람은 그렇게 추억을 말하면서 웃음꽃을 피워본 적이 없다. 벤의 아버지는 제니퍼에게 말을 걸고 제이슨은 도망치듯 말을 하다 실수를 저지른다. 벤의 아버지에게 벤이 아버지를 무서워했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에 벤의 아버지는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그는 벤, 그리고 가족에게 무신경한, 일만 쫓는 것이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자신이 잘 되는 것이 가족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질문을 하나 하겠다. 디지털 문화에서의 잘못, 그 잘못은 돌이킬 수 없는 걸까? 그러니까 내가 문제가 되는 발언을 해서 네티즌들의 융단폭격을 맞고, 그게 기사화 되고 해외에까지 퍼지고 그러면 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걸까? 이 영화의 결말에는 세 개의 장면이 나온다. 니나는 카일의 친구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데릭은 총으로 그 범인으로 의심되는 남자를 쏘고, 벤의 아버지의 하키 채는 제이슨을 가격한다. 세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이 순간 감독은 잠시 화면을 멈춘다. 그리고 모두 그 최악의 순간을 모면하게 한다. 니나는 사랑을 잃지만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무자비하게 밟는(마치 악플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것이 살아가는 길이라 여기는 <소셜포비아>의 레나처럼) 방식이 잘못된 것이란 걸 알게 되며, 데릭은 입을 다문 자신 때문에 외롭고 고통스러웠다는 신디의 고백에 오열하게 된다. 벤의 아버지는 가족에게 사랑을 다짐하며 제이슨은 그 자신의 마음의 짐을 평생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디지털 문화에서의 잘못은 되돌릴 수 있다.’ 그 잘못을 되돌리는 방법은 코드를 뽑는 것이다. 디스커넥트(Disconnect). 아날로그로 돌아가 다시 관계를 시작해라. 당신의 집은 눈앞의 모니터 속 세상이 아닌 바로 옆, 살과 살이 맞닿은 사람들 속이다. 만약 외로운 사람들이 없다면, 그러니까 현실에서 분에 넘치는 삶의 희망과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존재한다면 분명 디지털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현실의 분과 고통, 외로움과 고독을 이기다 못해 디지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 속에서 온갖 배설과 오물을 내뱉는 이 잘못된 문화를 끊는 일은 아날로그부터 다시 관계의 성(成)을 쌓아올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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