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간의 석사 생활을 마치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도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차로 5시간
오레건 주의 경계와 가까운, 해안가에 위치해 1년 내내 선선한 기후를 가진 도시
알케이타(Arcata)가 있다.
석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알지도 못하고 가보지도 않았을 도시였겠지만,
이곳에서 나의 2년은 시작되었다.
작은 도시지만 있을 건 다 있다. Safeway, Costco, 쇼핑몰, 공항 등등
물론 김치나 라면도 마트에서 팔고 있었지만,
된장이나 고추장처럼 각종 양념 재료나 다른 식재료들을 사려면 샌프란시스코까지 내려가야 했다.
매주 주말마다 열리는 Farmer's market에서는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나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공예품들을 가지고 나와서 판매를 한다.
이 도시에서 가장 번화가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두세 번은 볼거리도 많고 사람 구경하는 재미에 갔었으나
그 이후로는 행사할 때 말고는 자주 가지 않았다.
이 도시의 큰 특징은 학교가 설립되면서 생성된 곳이기에
학기가 끝난 방학에는 학교는 물론
도시 전체가 생기를 잃은 것처럼 한적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석사과정 중이다 보니 방학에도 학교 연구실에만 앉아 있게 되어 체감하지 못한다.
그나마 다행인 게 전공이 산림학이다 보니 아무래도 수업 실습도 산으로 가게 되고
연구도 산에서 실시했기 때문에 종종 바깥공기를 쐬며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곤 했다.
도시 뒤로는 레드우드 국립공원(Redwood National Park)과 레드우드 시립공원(Redwood Park)이,
앞으로는 Samoa Beach와 Trinidad Old Home Beach 가 있어 산과 바다 모두 즐길 수 있다.
미국 어디에서 공부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빼놓지 않고 소개하고 추천하는 게 바로
이 레드우드 국립공원이다.
일 년 중에 봄 여름에만 푸른 고사리를 볼 수 있는 Fern Canyon은
Arcata를 방문할 계획이 있는 분들에게는 꼭 들르시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곳 중 하나다.
이 곳에서 쥐라기 공원 2의 한 장면을 찍어서 유명해졌다.
레드우드는 어린나무의 줄기 껍질이 붉은색을 뗘 레드우드라 붙여진 나무인데
이 지역에서 빠르고 크게 자라기 때문에 목재로써 활용가치가 매우 큰 나무이고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이 나무를 심고 수확하는 산림업에 종사하고 있다.
있을 건 있다고 한 도시지만 그래도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도시 내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매우 한정적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안 그래도 답답한 연구실에 갇혀 논문 쓰느라 지루한데
도시까지 지루하니 각종 이벤트에는 될 수 있으면 참석하려고 노력했다.
주로 국제학생을 대상으로 한 단체 활동이 많아서 나는 참석률이 높은 편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 하는 카약 체험은 꼭 참석하려 했다.
국제학생 이벤트 말고도 학교 내에 스포츠 팀이 있어서
학기가 시작되면 매주 다른 학교와 시합을 했고
학생은 무료관람이 가능했기에 종종 머리도 식힐 겸 보러 갔다.
각종 행사와 시합을 관람하고도 무료함이 채워지지 않을 때
결국에 등교하는 길 가에 피어난 꽃을 보고 찍는 경지에 이르렀다.
아마도 이 시점에서
다음에는 꼭 큰 도시가 가깝거나 즐길거리가 풍부한 도시에서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 걸로 기억한다.
일 년 중 5월이 되면 학교는 물론 도시 전체가 졸업생들과
그 가족들의 졸업식 참석으로 시끌벅적해진다.
미국에서 졸업식은 처음이라 관람했는데
우리나라와 다른 분위기의 축제였다.
한 명 한 명 졸업생의 이름이 호명되고 단상 위에 올라설 때
가족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호명되지 않은 학생들은 서로 웃고 축하하며 즐기고 있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내 졸업식을 참석 못한 게 후회가 되지만
앞으로 남은 한 번의 졸업식에는 꼭 참석하리라 다짐하고 있다.
2년 간의 공부기간이 짧으면 짧을 수도 있고 길다고 보면 길 수도 있는데
지금 돌아보면 연구실에서 나와 좀 더 적극적으로 야외활동에 참여하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고 즐기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지루함을 달래려 아등바등했던 노력들이 생생하고 깊게 남아서
지금은 종종 그때의 생활이 그립기도 하고
가끔 술자리에서 추억거리로 곱씹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 가족들과 꼭 한번 같이 방문해서 아들이, 남편이, 아빠가
이 작은 도시에서 20대의 마지막을 지루하지만
때로는 치열하게 보냈다고 말해주고 싶은 잊지 못할 장소가 돼버린 것 같다.
알케이타에서 2년을 마무리하고
지금은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도전을 위해 또 다시 치열한 싸움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