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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의 잠 못 이루는 밤

- 베트남

by Annie


슬리핑 버스를 타고 후에에서 다낭까지 왔다. 2시간 30분 걸리는데 아마 그 버스는 호이안 또는 그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가는 모양이다. 좌석이 3열에, 2층으로 된 그 슬리핑 버스를 보는 순간, 그것은 문화 충격이었다.

버스에 오르는데 기사가 비닐 백 하나를 주기에 멀미 용인가 하면서 들어가려 했더니, 제지하며 내 신발을 가리킨다. 신발주머니였다. 하하.


의자의 눕혀지는 각도가 160도 정도로 거의 눕다시피 할 수 있어서, 푹신하지는 않았지만 편하고 잠도 잘 왔다. 우리나라 심야 우등보다 훨씬 누워서 자기에 적합했다. 그냥 누운 느낌이 난다.



IMG_2839.jpg 의자는 이보다 훨씬 더 눕힐 수 있다.



다낭 터미널에 내려서 호텔까지 택시로 7달러. 미케 비치 근처의 부띠끄 호텔이었다. 짐 풀고 투어 알아보고는 바로 비치로 나갔다. 걸어서 5분 거리였다.

날이 흐리고, 이곳도 후에 리조트 비치처럼 흙탕물 색 바다다. 해가 지고 주변에 불이 밝혀지면서, 해변의 분위기는 다소 로맨틱해졌다. 이런 해변에서 혼자 쓸쓸하게 돌아다닐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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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다낭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좋은 곳이라는 말만 듣고, 3일 밤이나 예약을 해둔 데다 캄보디아 행 비행기를 다낭에서 타야 하므로, 호이안을 여행한 후에 다시 다낭에서 1박을 해야 한다.

내내 비가 와서 바나 힐도 못 가고. 그럼 뭘 한다지?


캄보디아의 씨엠립 숙소를 검색하느라 저녁 시간도 놓쳐서 호텔 바로 앞에, 특색 없는 식당에서 익힌 야채 누들을 먹었다. 역시 숙소에 돌아와 계속 검색하다 밤이 늦어져 버렸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새벽 1시, 2시가 넘고 3시가 다 되도록 뒤척였다. 차를 너무 많이 마셨을까? 아니면 귀마개를 잃어버려서일까? 사실 그 귀마개는 마법처럼 나를 숙면할 수 있게 해 주었었다.


조용한데도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후에의 리조트에서 녹과 함께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난 녹에게 휴식을 주고 싶어서, 그녀에게 도움을 주려고 리조트에 데려갔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녀가 그곳에 나와 함께 있음으로 해서 오히려 내가 큰 도움을 받았었다는 것을, 다낭의 이 호텔에 혼자 누워 잠 못 이루면서 깨닫는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바람 불고 흐리고 비 내리는 리조트의 풀장과 정원, 흐린 색깔의 파도치는 바다, 크고 적막한 룸, 그곳에서 나는 한층 고독했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 그곳 디너 레스토랑에서 보냈던 멋진 시간들도, 아침에 발코니에 나가 느꼈던 그 충만한 느낌, 바다를 마주하고 즐겼던 기분 좋은 아침 식사도, 내가 준 조언들에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감사하던 녹을 보면서 느꼈던 뿌듯함도.

이 모든 것들이 내 여행에 빛을 뿌려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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