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클럽에 가다

- 태국에서 설 전야 파티

by Annie



밤에 도착한 호스텔은 사진보다 정원이 작고 타월도, 샤워용품도 없는 게 좀 부실하다. 이번 여행은 비교적 좋은 숙소들로 다녔던 참이라 만족도가 떨어졌다. 게다가 게스트들이 대부분 중국인인가 보다. 자기네들끼리 시끄럽다.


오전에 머리 염색하고 카페 갔다가 이곳 치앙마이가 어떤 곳인지 일단 돌아보고 와야지. 10시쯤 구글맵으로 미용실을 찾아 나섰는데 골목들이 제법 예쁘다. 케머론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며칠 전 그도 치앙마이에 올 계획이라고 했었다. 그러면서 여행비도 절약할 겸 투윈 배드 호텔에 함께 묵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내가 그에게 라오스에서 어떤 배낭여행자와 투 배드 호스텔에 묵게 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기 때문인가 보다.

난 이미 정원이 아름다운 호스텔을 예약했노라고, 그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했었다.


그는 나를 만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는 날이라고 해서, 머리 염색 후에 만나자고 했다. 800밧(24,0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염색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희끗한 머리를 드러내며 여행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염색 후에 시간 맞추어 케머론을 만나기로 한 광장으로 갔다. 우리의 재회는 좀 밋밋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 하롱베이 크루즈에서 마주쳤을 때는 그야말로 계획에 없던 깜짝 만남이라 너무 반가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예정된 만남인 데다 그가 나와 다른 것을 기대하는 것 같아, 나도 그때처럼 마냥 천진난만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우린 카페에서 그동안 서로 여행한 얘기들을 주고받다가, 떠나기 전에 저녁이나 한 번 먹자며 헤어졌다. 마치 심심한 동창생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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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해서 찾아간 사진 카페에 앉아서 커다란 창을 마주하고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주인이 젊은 사진가였고 한쪽에 사진집들이 있었다. 사진가 스티븐 쇼어의 사진집과, 방콕을 찍은 흑백 사진집 두 권을 넘겨보았다. 주인 말에 의하면 태국에서도 다시 필름 카메라로의 회귀가 상당히 붐이라고 했다.


어제저녁 콧물이 심하게 흐르고 현기증이 나는 데다 머리도 멍해서, 하필 이번 여행에 감기약을 챙기지 않았을까 후회막심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아침에 일어나니 콧물도 멈추고 괜찮은 것 같다. 조심해야지. 아프면 큰일이다.

일주일 넘게 지내게 될 마지막 여행지, 치앙마이를 감기로 고통스러워하며, 허름한 호스텔에서 아프다 간 기억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호스텔에 거의 다 왔을 때, 작고 멋진 목조 다리를 건너 시장 골목을 하나 발견했다. 사람들이 왜 치앙마이를 북방의 장미니, 예쁜 곳이니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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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골목이 예쁜 거리와 카페로 이어졌다. 특히 지금 내가 와있는 곳은 '블루 다이아몬드'라는 레스토랑이다. 예쁜 정원에 식탁들이 자유롭고 다양한 모습으로 흩어져 있고 메뉴도 정말 훌륭하다. 비싸지도 않으면서.


앞에는 근사하게 밀집 햍을 쓴 흰 셔츠 차림의 남자와 여자가, 건너편에는 건장한 흑인과 백인 여자 커플이, 그리고 평상엔 노트북을 펼친 남자, 그 옆엔 젊은 백인 커플. 다들 조용조용 대화를 나누며 품위 있게 식사를 한다. 접시에 포크와 나이프 부딪히는 소리가 듣기 좋다.

내가 시킨 갈릭 브래드는 위에 바질, 잘게 자른 토마토, 올리브 오일이 섞여 오묘한 맛을 느끼게 한다. 난 아보카도를 추가하고 싱가 비어도 시켰다.


조금 어둑해지면서 불이 켜지니 분위기는 더욱 근사해졌다. 가격 착하고 음식 훌륭하고 분위기 좋은 이곳에서 총 6,600원에 호화로운 식사를 했다.

치앙마이에 머무는 동안 이곳은 행복한 나의 아지트가 되어줄 것이다.


근사한 저녁을 먹고 기분 좋게 호스텔로 돌아왔다. 룸메이트가 지금 만두 먹으러 갈 건데 함께 가겠느냐고 했다. 저녁은 먹었지만 함께 어울리는 건 좋으니까 오케이 하고 나갔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호스텔 아래층 뜰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중국식 전통 만두를 빚고 수프를 끓여 샤부샤부처럼 그곳에 각종 재료들을 넣었다가 건져 먹는 것이다. 거기에 태국 전통음식 탓 바이와 샐러드, 과일, 콜라, 맥주 등이 함께 준비되었다.

나와 영국인 남자 커플, 부모님은 홍콩인인데 지금 영국에 살고 있는 남자와 그의 영국인 여자 친구, 그리고 그들의 친구인 태국 남자 한 명을 빼고는 모두 중국인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설 전야 파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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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룸메이트 천은 명랑하고 성품이 좋은 걸이다. 이곳 사람들, 아니 대부분의 동남아 사람들은 모두 한국을 좋아한다. 아니 선망한다. 더불어 이곳에서 나의 위상도 아주 높다.

파티가 끝나고 우린 클럽에 가자고 뭉쳤다. 클럽, ‘YELLOW’. 치앙마이에서 가장 핫한 곳이라고 한다.


우린 시끌벅적 떠들며 클럽을 향해 밤거리를 걸었다. 마침내 우리가 도착한 곳은 평행으로 길게 스무 줄 정도 되는 긴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야외 바였다. 그 길고 많은 의자에 사람들이 빽빽했다.

우린 여기가 바인지 시장판인지 모르겠다며 깔깔거렸다. 맞은편 클럽이 문을 열려면 조금 기다려야 한다지만, 이 바에도 작은 스테이지가 있어서 춤출 사람들은 추기도 했다.


우리 옆에는 가슴을 훤히 드러낸 남자 같은 여자, 그리고 함께 온 걸이 스트립 댄스 같은 야한 춤을 추었다. 몸에 딱 달라붙은 흰 바지에 역시 딱 달라붙은 레이스 티를 입은 여자는 인간의 몸매인가 싶을 만큼 절묘하게 풍만했다.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는 일행들 사이에서 내가 일어나 무대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리 그룹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그렇지. 춤추는데 와서는 춤을 추어야지, 앉아서 어색하게 기다리고 있는 건 질색이다.

잇따라 일행들이 나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고, 가까이에 잘생긴 남자가 백 팩을 메고 엉성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선뜻 함께 춤을 추지는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그의 이름은 마친. 작은 원이 만들어지며 우리 그룹의 씨씨가 나를 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앞에는 어떤 남자가 내 춤에 합류했고, 내 뒤에서는 마친이 갑자기 격렬하게 나의 춤에 호흡을 맞추었다.


그러다 우린 모두 맞은편 클럽으로 옮겨갔는데, 그곳은 불이 더 환해서 분위기가 좀 깨는 곳이었다. 우린 조금 어색했고 그가 내 귀에 대고 뭐라고 했다. 뭔 소린지 몰라서 다시 귀를 대며 뭐라고? 했더니 저쪽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 화장실에 간다는 소리 같았다.

그렇게 우린 멀어졌고 나는 지쳐서 이제 그만 추고 싶었다.


너무 더워 밖에 나와 있다가 일행들이 흩어져 서로를 찾아 헤매게 되었다. 겨우 다시 다 모여 밖에 서있는데, 마친이 다가왔다. 잠시 여행 얘기를 하다 자기는 내일 빠이로 간다고 했다.

“여기 얼마나 있을 거야?”

“일주일쯤 있을 거야.”

“난 이삼일 후면 빠이에서 다시 돌아올 거야. 왓썹 해?”

“아니.”

“그럼 이메일 주소 알려줄래?”

“그래. 너 돌아오면 연락해서 만나자.”


나는 그의 전화기에 내 이메일 주소를 입력했다. 호스텔에 돌아와 보니 그에게서 ‘Hi’ 하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내일은 쿠킹 클래스, 그리고 모레 일박이일 트래킹 다녀오면 마친도 빠이에서 돌아오겠지.


오늘 낮까지만 해도 내가 이곳에서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차라리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우연히 발견한 예쁜 골목과 블루 다이아몬드, 그리고 설 전야 파티, 클럽, 마친, 행운이 연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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