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의 하루

- 태국

by Annie



키아도 떠나고, 이제 다시 혼자 여행을 하게 되었다.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스카이 라인을 타고, 시엠에서 내려 BTS로 갈아타고 살라댕 거리로 나서기까지, 한 시간도 더 걸렸을 것이다. 비행기도 연착해서 내가 호스텔에 도착했을 때는 밤 12시가 다 될 무렵이었다. 내가 그날의 마지막 손님이라고 했다.


호스텔 1층은, 와우! 클럽이었다. 오늘 밤 이 소음을 베고 잠을 잘 수 있을까?

몇 인실인지는 모르나 여성 전용 룸인데 릴리라는 걸 하고 나, 둘 뿐이었다. 룸 키와 락커 키가 한데 묶여있어서, 키 고리를 갖고 다녀야 했다.


샤워하러 가면서 문을 잠그고 가보니 샤워실에 릴리가 있었다. 키를 갖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안 갖고 왔다고 해서 내 것을 주었다. 혹시 먼저 끝나면 이걸로 열고 들어가라고. 샤워가 끝나고 방에 들어가려는데 문이 잠겨있다. 아무리 노크를 해도 기척이 없었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락커 키도 함께 있는데, 락커 안에 여권이며 돈, 카메라 등 모든 게 다 들어있는데. 순간 나는 그녀를 강하게 의심했다. 여행하다 보면 이렇게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게 된다.

그녀가 잠들었을지도 몰라. 아차, 내가 귀마개를 잃어버렸다고 걱정했을 때, 그녀가 여분이 있다며 하나 주었는데, 그녀가 귀마개를 하고 잠들었다면 노크 소리를 못 들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난 리셉션으로 갔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12시가 넘어서 퇴근해버린 걸까? 내가 마지막 손님이었다는데. 벨을 아무리 눌러도 기척이 없다. 오 마이 갓! 이렇게 밖에서 밤을 새우는 건가?

다행히 리셉션 청년이 나타나서 함께 룸으로 갔다. 룸은 키가 없이도 스르르 열렸다. 릴리는 안 자고 있었다. 노크 소리를 못 들었냐고 하니까 못 들었단다. ‘뭐지?’


다음날에야 그 미스터리가 풀렸다. 똑같은 일이 다음 날에도 발생했던 것이다. 열쇠를 꽂아도 열쇠가 안 먹어서, 문을 두드리니 웬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안 열어준다. 다시 노크를 했더니 남자가 무슨 일이냐며 빼꼼히 문을 열기에, 내 방이라고 했더니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보라고, 55번이라고, 키 고리를 보여주었더니, 건너편을 가리키며 D55면 저기라고 했다.


아! 난 E55를 두드렸던 것이다. 어젯밤에도 그랬던 거다. 난 왜 이럴까?


아무리 똑같은 도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한 번씩 들러서 가는 방콕인데, 뭐라도 있겠지 싶어서 반나절 투어를 나섰다. 왕궁에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가서 배를 타야 한다고 했다. 왕궁 근처에 내렸지만 날씨는 덥고 줄 선 사람은 너무 많은 데다, 핑계를 대자면 나는 짧은 스커트를 입어서 왕궁 출입도 안 될 것 같았다. 티켓을 끊어서 그 더위 속으로 들어가 혼잡한 사람들 사이를 헤엄쳐 다니고 싶지 않았다. 유적지는 가 볼만큼 가봤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그냥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가 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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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에 들어가기 전에 주변 거리를 돌아보았다. 한쪽은 야시장이었고, 그곳에서 기역 자로 돌아 나오는 거리를 걸었다. 그런데 그 거리 양쪽으로 젊은 여자들이 20-30명씩 그룹을 지어 수도 없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런 그룹들이 50미터 정도는 이어졌다.

그들은 짙은 화장에 가슴이 깊게 파인 옷과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나이 지긋한 여자가 사진 파일을 들고 지나가는 남자들을 호객하고 있었다. 매춘이 틀림없다.


오래전에 '타이 걸' 하면 매춘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까지 집단으로 거리에 나와 앉아 있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남자들은 이런 걸 원하는 걸까? 한국에도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이런 거리가 있을까?


왠지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국가가 최소한 자기 국민을, 자기 나라의 여자들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내몰지 않을 만한 힘은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

언제까지였을까? 일본인들이 한국에 매춘 관광을 온다는 기사를 접했던 것이 떠오른다. 다른 나라에 와서 접한 이 광경에, 나는 마치 내 나라의 민낯을 들여다본 것처럼 복잡한 심정에 빠졌다.


저녁 시간을 라운지에서 보냈다. 다음 날 오전도 카페에서 보냈는데 방콕에 대한 호기심도, 돌아보고 싶은 열망도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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