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는 여행의 어려움

- 캄보디아

by Annie


찬물로 샤워했다고 아침부터 열받은 키아의 분노가 나를 다운시킨다. 함께 분노해야 할 일에, 왜 나는 그녀의 분노를 탓할까? 그녀는 식사하러 가는 길에 한 투숙객에게 욕실에 따뜻한 물 나오더냐고, 아침에 찬물로 샤워했다고 하니까, 그 여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영어 못한다고 했다고 투덜거렸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 그런 것 아닐까?” 내가 말했더니,

“보통은 영어를 못하더라도 상냥한 얼굴로 답하기 마련인데, 인상을 쓰는 거야.”

그러면서 몹시 기분 나빠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미 화가 나있던 키아가 그 말을 할 때 불평하는 어조와 표정이어서, 그 여자도 그런 반응을 보였던 게 아닌가 싶다.


공항에서부터 어긋난 이 여행이 키아에게는 사사건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호텔 조식은 정말 형편없었다. 키아가 라오스에서 싸들고 온 빵과 치즈가 빛을 발했다. 키아의 남편은 그녀에게 늘 그러지 말라고 해도, 결국은 그도 그녀가 싸가지고 다니는 음식을 원하고 즐기게 된다고 한다.


아침을 먹으면서 남편이 힘들어한다고. 그건 자신이 늘 삶에 대한 미련이 없어서, 그냥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지 않나 보다고 생각해서 슬퍼한다고.


내가 말했다.

“사람들, 특히 너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런 말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힘든 거야. 사람들은 누군가에게서 부정적인 감정이나 사고의 영향을 받고 싶어 하지 않아.

인간은 본디 약한 존재라서 쉽게 주변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잖아. 그러니 간혹 너의 생각이 그러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되풀이해서 말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

난 평상시 그녀에게 불만처럼 느꼈던 것을 이번 기회를 빌어 이렇게 말한 것 같다.


“난 내 주변의 그 누구보다도 긍정적인 사람이야. 사람들이 내게서 부정적인 감정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영향을 받는다면, 그건 그들 자신이 약하고 부정적인 때문이야.” 그녀는 이렇게 강변했다.

한편으로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하다.


긍정적 에너지가 강한 사람은 면역력이 강해서,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부정적인 영향 따위는 쉽게 거를 수가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내부의 부정적 요소를 컨트롤하며 사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하물며 친구나 가족의 부정적 감정과 사고에 영향받지 않으면서, 그것을 그냥 객관화시켜 받아들이기엔 우린 모두 너무 약한 존재들이다.

그러니 키아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도 나와 단 둘이서 함께 하는 이 여행에서는.


나 또한 모든 것이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이 여행에 대해, 늘 불안감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폭이 큰 그녀의 감정들에 영향받지 않고 내 길을 꿋꿋이 간다는 건, 나로서는 역부족이다.

내가 그녀에게서 원했던 것은 불안한 내 여행길의 한 토막을 함께해 줄, 듬직하고 즐거운 동반자였던 것이다.


함께 하는 여행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상대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게도 한다. 반대로 책임감이 커져서 자유로움이라는 여행의 특권이 줄어들 수도 있다.

각기 갖고 있는 장단점 중에 어느 것을 취할 것인가 하는 것이 홀로 여행이냐, 함께 여행이냐를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둘이 하기로 한 여행이었는데 갑자기 나는 더 못하겠다고, 그만하겠다고 했을 때, 나머지 한 사람은 당혹스러워진다.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면, 비로소 다시 독립심을 찾아 바로 서게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쉽지는 않다.


난 이미 남든지, 떠나든지 독자적으로 설 결심이 섰는데, 그녀는 미안해서인지 자꾸 나를 케어하려고 한다. 결국 그녀는 나를 여행사까지 데리고 가서, 비행기 표를 끊을 수 있도록 하고 나서야 떠났다. 그녀는 나중에 정산하기로 하고 그녀가 지불했던 내 몫의 비용, 백 달러를 끝내 받지 않았다.


태국으로 가기 위해 공항에서 체크인할 때, 직원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보여 달라고 했다. 아직 여행이 2주나 남아있는 터라, 티켓을 따로 휴대 가방에 챙기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 350달러 이상의 미화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해서, 난 400달러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래도 티켓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침 휴대폰에 저장해 둔 이-티켓이 생각났다. 직원에게 보여주었더니, 탑승권을 주면서 VIP 라운지 이용이 가능하다고 쿠폰을 주었다.

VIP 라운지라니! 표가 비싼 이유가 있었던가보다.


키아의 입국 과정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다만 나는 경직된 남자 관리들이 아닌 상냥한 여직원을 만난 것이고, 내게 규정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공손하게 말했기에, 내 기분이 상할 일은 없었던 것이리라.

똑같은 말도 말하는 이의 표정과 태도에 따라 큰 차이를 준다. 더구나 국적 때문에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많이 겪었던, 키아에게는 몹시 기분 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미리엄의 고양이를 데리고 캐나다에 입국했을 때의 일이다. 입국 수속 직원이 고양이 캐리지를 들고 있는 내게 뭐냐고 물었다. 내가 고양이라며 설명하려고 하는데, 그가 갑자기 내게 위압적인 태도로 소리치다시피 했었다.

“왜 네가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 거지?”


그때 그것을 보고 달려온 미리엄의 한 마디에 바로 사태가 종료되었지만, 나는 그 직원을 노려보았다. 내가 백인이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키아의 경우는 이와는 비교도 안 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난 그녀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된 그 상처를 조금 더 깊이 공감해 주고 보듬어 주었어야 했다. 울퉁불퉁한 내 감정만 돌보기에 바빠서, 난 속으로 그녀에게 투덜대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해, 키아!


사람들은 지난 1년을 키아의 로맨틱한 허니문으로 알고 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외국 여행 중에 독일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캠핑카로 몇 주 동안 여행을 하고 등등.

그러나 그동안 독일에서는 그들의 결혼이 허용되지 않아, 덴마크까지 가서 결혼 수속을 해야 했다.


그러고 나서도 3년 동안 독일어 공부를 하는 코스를 밟아 테스트에 통과할 때까지, 결혼 비자를 발행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 불합리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던 힘든 시기였다고. 남편을 사랑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너무 많았다고.

그 사랑을 위해 그녀가 감내해야 할 고통과 상처가 너무 크고 깊었다고 했다.


전에도 그런 말을 들었는데, 왜 지금 더 크게 다가올까? 그래도 가장 놀랍고 좋은 것은 그 모든 고통들을 겪으면서 아직도 서로의 곁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사랑은 그저 로맨틱한 것만은 아니다. 서로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이겨나가는 것,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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