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트램을 타고 시내로 나갔다. 정처 없이 걸으면서 시내를 돌아보다가, 배도 고프고 커피도 마셔야겠기에 카페를 하나 찾아 들어갔다. 분명 분위기 좋은 카페들도 있을 텐데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 그냥 눈에 띄는 대로 들어가 보았다.
이곳 카페는 들어오는 손님들도 모두 혼자인 여자들이었다. 조용히 들어와서 말없이 앉아 뭔가를 먹고는 소리 없이 나갔다. 카페라고는 하나, 보니 간단한 음식들도 파는 것 같았다. 그럴 줄 알았으면 음식을 시킬걸.
너무 앙증맞게 생긴 인절미 두 조각이 얹어진 작은 단팥죽, 정말 조그마한 과자 같은 빵 하나에 커피를 시켰다. 9600원. 우리나라로 치면 케이크 한 조각에 커피 한잔 합친 값 정도. 2-3천 원 정도 더 비싸다고 할 수 있다.
닉은 오후에 리허설이 있고, 끝나면 ‘Suicide Sundays’라는 비디오의 편집이 있어서, 밤늦게나 시간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나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한다.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
날이 흐려지며 비가 올 것 같다. 우산을 갖고 나올걸. 날씨를 체크했으면서도 설마 했다.
미츠비시 백화점이 보여 들어가 봤다. 좋아 보이긴 하나 비쌌다. 다른 백화점도 다른 옷가게도 모두 비싸다. ‘자라’ 매장에 갔더니 옷도 마음에 들고 가격도 쌌다. 7만 원에 크림색 패딩 점퍼를 샀다.
쇼핑은 만족스러웠는데 호스텔을 어떻게 찾지? 내 생각엔 직선으로만 갔던 것 같은데.
조금 걷다가 히로시마 아트 뮤지엄 건물과 마주쳤다. 아침에 호스텔에서 마주쳤던 걸이 말했던 전쟁 박물관과는 다른 곳이었다.
그냥 나와서 걷다 보니 히로시마 성이 나왔다. 부러 찾은 건 아닌데 너무 잘 됐다. 풍경도 좋았고 양쪽으로 큰 연못이 있는 입구가 근사한 분위기였다.
성을 나오니 밖은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호스텔 가는 방향을 잘 모르겠다는 것. 버스나 택시를 타려고 해도 동네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혹시 지금 내가 반대쪽으로 걷고 있나? 지하도를 나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뒤를 돌아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은 영어를 좀 하겠지 싶어 ‘Atomic Dome’으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마침 자기들도 그곳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11분 정도 걸으면 된다고.
일행인 아주머니가 나더러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자기네는 호주에서 왔다고 했는데 중국계처럼 보였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원폭 돔에 이르렀다.
손 흔들고 헤어져서 걸어오며 혼자 저녁을 먹어야 하나, 닉을 기다려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일단 호스텔에 가서 닉이 못 온다고 하면 그때 혼자 나와서 먹자.
피곤했다. 5시간은 족히 걸은 것 같다.
일이 계속 늦어진다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벌써 피곤해서 죽어가는 중이라고 닉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래서 오늘은 만나지 말고 내일 섬에 가기로 했으니, 그때 보자고 했다. 혼자서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호스텔 근처에 작은 식당이 있었다. 우동과 소바가 있는데, 나는 간단하게 일본식 소바를 먹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웬걸, 오코노미야키가 나왔다. 메뉴는 그 안에 들어갈 재료로 소바와 우동 중에 고르는 것이었는데, 난 그게 독립된 메뉴인줄 알았던 것이다.
늦은 시간 저녁으로는 너무 무거운 음식이었다. 난 오코노미야키는 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