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히로시마
아침에 닉과 미야자와 섬에 가기로 했다. 트램 역에서 내려 크롸쌍을 사고, 편의점에서 커피도 샀다. 커피는 맛이 형편없었다. 평소 일찍 일어나지 않는 닉은 어제 오후에 리허설하랴, 밤늦게까지 동영상 편집하랴 풀가동을 해서 피곤하다고 했다.
트램으로 페리 선착장까지는 한 시간 정도. 자리가 없어서 처음엔 장애인 휠체어 바에 기대앉았다가, 나중에는 그마저 비켜주어야 했다.
거의 서서 가다가 10분 정도 남기고 자리가 나서, 닉에게 좀 자라고 했다. 그는 자려고 노력하더니 결국엔 못 자겠다고 했다.
닉이 말했다.
“페리로 2시간 정도 가야 해.”
“진짜? 2시간이나?”
“농담이야.”
페리에 타서 닉이 또 말한다.
“50분 정도 걸릴 거야.”
“그래?”
“농담이야. 5분이면 도착해”
닉은 늘 이런 식으로 날 웃게 한다.
미야자와 섬은 선착장부터 달랐다. 산뜻한 자연과 관광지의 면모가 보였다. 히로시마 관광을 검색하다가 보았던 그 신비스러운 붉은색 구조물이 바로 이 섬에 있었다.
여기에 오면 사슴도 많이 볼 수 있다고 닉이 그랬는데, 실제로 사슴들이 거리를 자유로이 배회했다. 야생동물은 항상 우리에 갇힌 채로 있는 게 당연한 한국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다.
일본은 도시고 시골이고 그냥 깨끗하다. 스페인의 도시들이 무척 깨끗했는데, 밤에 청소차들이 물탱크 아래 달린 거대한 빗자루로 도로를 박박 밀면서 물청소하는 걸 봤었다.
혹시 일본도 그러나 싶을 만큼 도로들이 너무 깨끗했다. 호스텔 바닥엔 욕실조차도 머리카락 한 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친절하기로는 내가 어떤 곤경에 처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언제 어디서고 상대를 향해 웃으며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건물들은 아주 낮고 작았다. 섬으로 가는 길에 트램에서 내다본 주택가 풍경은 장난감 건물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섬 전체가 관광지였다. 돌아볼 만큼 보고 나서 배가 고파진 우리는 사람들로 붐비는 식당을 지나, 한적한 곳에서 라멘에 맥주를 마셨다.
아! 이게 그 일본의 미소 라멘이구나! 맛이 깔끔하면서도 깊었다.
난 닉과 얘기하느라 먹는 데는 집중하지 못했다. 닉은 너무 피곤할 텐데, 나 때문에 오늘 또 한 번의 리허설과 마지막 콘서트를 앞두고 내게 시간을 내주고 있었다.
한편 미안해서 자꾸 마음이 무거워지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내가 밝게 즐겨야 닉도 즐거울 거라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사진가이기도 한 닉은 플라잉 피싱을 좋아한다고 했다. 콘서트가 끝나면 엄마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로 가서 5개월 간 베이킹 수업을 듣고 전문 베이커 자격을 딸 거라고 했다.
그러고 나면 이곳 히로시마에 바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이곳에는 친구들이 많으므로.
계속할 계획은 아니고, 이 바를 번성시킨 후에 다른 사람에게 넘길 거라고 했다, 그러고는 다시 어딘가로 떠날 거라고 했다.
그에게는 먼 미래란 없다. 짧게는 며칠, 몇 개월, 길어야 2-3년일 뿐. 지금 생각으로는 오로지 플라잉 피싱을 하는 것이 제일 큰 소망이라고 했다.
“겨울에도 가슴까지 물이 차는 강물 속에서 종일 낚시를 해. 물고기를 잡고 안 잡고는 중요하지 않아. 그냥 그 행위와 소리와 느낌들에 집중하는 거지. 거의 명상에 가까운 행위야.”
내겐 그렇게 강렬하게 하고 싶은 것이 있을까?
그는 늘 멈추지 않고 활동한다. 꼬마 때부터 늘 ‘바쁜 아이’였다고 한다. 데이비드 린치 영화를 좋아한다고. ‘Eraser Head’, 그리고 또 하나를 얘기했었는데 까먹었다.
“뭐 별 스토리도 없는 영화인데, 한 십여 분 간 그냥 바람소리만 휘익, 전율이 화악 느껴져. 어릴 적 엄마와 그런 류의 영화를 많이 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
그는 자라면서 엄마의 영향을 참 많이 받았다고 한다. 엄마랑 집에서 함께 사는 동안에는, 늘 엄마랑 커피를 마시고 뭔가를 함께 했었다는 얘기를 했다.
친구가 레스토랑을 하는데 오늘 콘서트 티켓과 저녁, 교통편까지 패키지로 묶어서 그룹을 모집한다고, 나도 끼고 싶다면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좋은 생각이었다. 그룹을 이루어서 가면 함께 하는 식사의 경험도 해보고, 콘서트에 가서 혼자 머쓱하지도 않을 테니.
하지만 나중에 닉이 문자로 연락해 보니 이미 숫자가 다 찼다고 해서, 나는 혼자 택시를 타고 하버 클럽에까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