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히로시마
콘서트는 6시부터라고 했는데 아직 사람들이 거의 없고 스텝들과 간이식당, 바의 직원들 등이 전부였다. 닉은 나를 밴드 멤버들에게 데리고 가서 소개했다. 그들은 이미 닉에게 내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 그들 중 보컬을 담당한 여성, 아프리카는 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wow! wow! so beautiful!’을 연발했다.
드럼을 맡은 디디, 닉과 기타를 맡은 일본인 멤버 한 명을 포함, 4명이었다.
우린 사케와 화이트 와인을 섞은 술을 한 잔씩 하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나서 닉은 나를 데리고 다니며,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오늘 밤 제2 드럼을 맡을 게스트 연주자, 색소폰 연주를 맡을 걸 크러쉬 풍의 일본 여성 등등. 나는 자신이 정말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후로 닉은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바빴고, 난 닉이 가져다준 와인을 다 마시자 바에 가서 닉과 내 것으로 두 잔을 청했다. 한 잔에 500엔씩 하는데 내가 닉의 친구라고 그냥 무료로 주었다.
공연은 거의 8시쯤에나 시작된다고 했다. 난 간이식당 쪽으로 가서 미트볼 수프 같은 것을 시켰다. 지난밤 2차로 갔던 음식점의 주인이었다. 선한 미소를 지닌 사람이었다.
드디어 홀이 사람들로 가득 찾고, 공연 전에 상영하기로 한 동영상이 프로젝터 스크린에 떴다. Sundays라는 회사의 직원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요일에 모두 자살한다는 테마인데, 이 공연을 마지막으로 밴드를 해체하는 그들에게 기념비 같은 동영상이었다.
닉의 친구들 5명이 차례로 약, 총, 칼, 전차 투신, 옥상 투신 등의 형태로 자살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그것을 동영상 필름으로 제작한 것이다. 기획, 촬영 모두 닉이 했다. 전날 식당에서 만난 일본 여성이 출연진 겸 편집을 함께 한 기발한 작품이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고 실제 제작까지 할 수 있는지, 닉도 약간 천재성을 가졌다.
희극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는 데다가 출연진이 대부분 관객들과 안면이 있는지라, 처음부터 함성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살을 전혀 공포스럽거나 비극적이지 않게, 발랄하고 코믹하게 구성했다. 공연자들에겐 이런 관객들의 환호가 마약 같은 것이리라.
공연이 시작되고 처음엔 맨 앞줄에서 지켜보다가, 브레이크 타임에 뒤로 물러나 있었다. 2차 공연 중에 아프리카가 객석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 나랑 무대에서 춤출 사람 있어요?”
처음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내 몸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내가 사람들을 뚫고 무대를 향해 돌진할 때, 난 아프리카가 다시 한번 외치고 있는 것을 들었다. 내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무대 앞에 이르렀을 때, 아프리카는 세 번째로 똑같은 청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 아무도 무대에 오른 사람이 없었다.
드디어 내가 무대에 올라서서 빨간색 카디건을 벗어던지자,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닉은 관객들에게 내가 한국에서 온 친구라고 소개하고, 기쁨에 겨워 나를 포옹했다. 그렇게 즉석에서 함께 무대를 즐기고 내려온 나를, 나도 믿을 수가 없었다.
무대를 내려와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공연을 즐기고 있는데, 지나가던 한 남자가 나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good dancer!’라고 말했다. 또 얼큰하게 취한 일본 걸들이 내게 다가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 사람들이 밴드 멤버들에게 다가가 격려와 축하의 포옹을 했다.
나도 거기에 뛰어들어 그 흥분을 함께 나누었어야 했다.
그러나 난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나중에, 그들이 홀로 되었을 때, 더 이상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없을 때 해야지 하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다.
기쁨은 기쁨에 겨운 순간에 함께 하는 것이 최고로 효과적이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괜히 멋쩍고 썰렁해진다.
마지막 콘서트에 대한 느낌이 어떤가 물었을 때, 아프리카는 좀 쓸쓸해 보였다. 밴드를 그만두고 싶은 것은 닉이었고, 나머지 멤버들은 갑작스러운 그의 선언에 패닉에 빠졌다고 했다.
닉은 지난 9년 동안 전 세계를 떠돌며 투어 콘서트를 했고, 그것은 즐거운 경험이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비즈니스로 연결되는 것도 괴로웠다고 했다. 이제 집시처럼 그렇게 떠도는 것도 끝내야 할 시점이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퇴직한 지 8개월이 된 난 이제 무엇을 할까? 한국에 돌아가면 조금 바쁘게 살아야겠다. 얼른 운동도 시작하고.
닉에게 배운 게 있다면 끊임없이 기획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없이 다운된다고 했다.
그 후로 난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정이 넘어 사람들이 많이 돌아간 후, 요시에게 가야겠다고 하자 그가 택시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택시가 없었고, 난 10시 이후 리셉션이 닫히는 호스텔의 현관의 비번이 적힌 종이를 두고 왔다. 이를 어쩌나.
닉은 애프터 파티가 있는데 함께 가겠느냐고 했다.
“넌 정말로 더없이 환영받을 거야”라며.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머쓱해지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고, 밤새 놀 것도 아닌데 호스텔에도 못 들어가면 어쩌나 싶어, 그냥 가겠다고 했다.
다행히 어제 그 식당의 주인 일행이 돌아가는 택시에 함께 타고 호스텔에 도착했다. 마침 로비에 한 커플이 안 자고 있어서, 문제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내일 아침 나는 교토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