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의 집으로

- 지하철에서 나를 구해준 루이스 부자

by Annie


이곳 투어 버스에는 프리다 칼로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다. 그녀는 알까? 생존했을 때도 유명 인사였지만 지금 투어 버스들의 양면이 자기의 초상으로 꽉 차 있다는 것, 자기의 그림이 너무 비싸서 정작 멕시코의 박물관에서는 진품을 소장할 수도 없다는 것, 자신의 이야기가 책으로 쓰이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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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멕시코 시티의 교외, 코요아칸에 있는 ‘프리다 칼로의 집’에 가기로 했다. 늦게 가면 오랫동안 줄을 서야 한다기에 아침 일찍 호스텔을 나섰다. 오전 10시부터 오픈한다고 해서 그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전날 클로디어가 세심하게 가르쳐준 대로 걸어가서 버스를 탔더니, 쉽게 코요아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서도 2-30분은 걸어 들어가야 했다. 무거운 물을 한 병 사 넣었던 참이라, 카메라까지 들어있는 가방은 몹시 무거웠다. 그래도 걷는 동안 그곳의 분위기가 신기했고 새로운 곳을 걷는 기분도 좋았다. 그곳은 꽤 부촌처럼 보였다. 거리 양쪽으로 보이는 집 대문들은 크고 위풍당당했으며, 각각의 대문들이 모두 다른 디자인과 재질, 색깔, 무늬들로 이루어져 저마다의 개성이 드러나 있었다.


9시 30분에 도착해서 사람들이 줄 서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만 해도,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줄을 서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일단 한 시간 반이 되도록 줄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스페인어의 물결 속에서 누구랑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죽일 수도 없었고, 모두들 움직이지 않는 줄에 신경이 곤두서고 피곤해져서, 서로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 의욕도 없었다.


내 뒤에 서있는 초로의 부부는 영어를 했지만, 우린 그냥 줄만 바라보는 낯선 사람들일 뿐이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 내 뒤의 여자가 어딘가를 다녀오더니, 앞으로 최소 두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둘은 한참 의논을 하더니, 근처에 다른 미술관도 있던데 그리로 가는 게 더 낫겠다며 자리를 떴다.


나도 그랬어야 했을까? 사실 난 두 시간이라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을뿐더러, 포기하고 돌아서기엔 프리다 칼로에 대한 나의 애정이 꽤 깊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그곳에 대한 사전 정보가 너무 없었다는 것이다. 프리다 칼로의 이름만 듣고는 덜컥 택한 여정이었다. 그곳에 그녀의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곳은 단지 그녀가 살던 집일 뿐이었다. 파리의 교외, 루앙에 있는 ‘모네의 집’처럼.


문제는 그보다 훨씬 작은 곳이어서, 입장객 수를 소수로 제한하고 일정 수가 나온 후에 그만큼의 인원을 들여보내는 식이라,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난 3시간 동안 좀체 움직이지 않는 줄을 서며 거의 병이 날 지경이었다. 백팩은 한없이 무거웠고, 그 상태로 그렇게 오랫동안 서있기에는 내 몸의 에너지가 여행 초입에 이미 고갈되어 있던 상태였다.


3시간을 기다린 끝에 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그곳은 아주 작고 아담한 집이었다. 수령이 오래된 키 큰 나무들이 작은 집의 하늘을 찌를 듯이 우거진 채 서있었고, 보라색과 푸른색 주조의 담벼락, 그리고 건물이 함께 어우러져 나름의 정취가 있었다. 거기에 프리다 칼로의 아우라가 더해져서 조금은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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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 사진을 찍을 의욕도 없었고 별다른 감흥도 없었다. 그녀가 사용한 이젤과 화구들이 그녀를 잠시 떠오르게 하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기진해 있던 나는 한 바퀴를 휭 하니 돌아 그냥 나왔다. 아무리 좋은 것도 체력이 바닥에 있을 때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그렇게 쇠잔해진 몸과 마음으로 돌아가면서, 이쪽으로 평행하게 걸어가면 내가 버스에서 내렸던 곳에 이르리라 생각했다. 잠시 스타벅스에 들러 카페 라떼 한 잔을 마시면서 에너지를 충전해 보았지만, 갈 길은 멀고 날씨는 더웠다.


지금 걷고 있는 큰 길이 내가 왔던 그 길이 맞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행인에게 길을 물어 그가 가르쳐주는 대로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뜨거운 햇빛 속을 걸어 지하철역을 찾아 들어갔다. 한 번 갈아타야 했지만 그래도 처음에 탄 지하철은 수월했다. 조금 가니 자리도 생겨 앉을 수 있었다.


내 옆자리엔 중년의 남자가, 그리고 앞자리에는 젊은 청년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일행인 모양이었다. 젊은 청년에게 소깔로 역까지 몇 정거장이나 남았냐고 물었더니, 그가 한 번 갈아타야 한다며 갈아탈 역을 가르쳐 주었다.

옆에 앉은 남자가 스페인어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는 앞에 앉은 청년에게 통역을 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부자지간이었고 나처럼 쪼깔로 역까지 가는 참이었다. 사는 곳은 코요아칸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영어를 한다는 것에 대한 긍지가 높았고, 자꾸 내게 말을 시켜 아들에게 통역을 하도록 했다.


지하철을 갈아타려고 한참을 걸어서 승강장에 이른 나는 기함을 했다. 열차는 도착할 때부터 이미 꽉 차있었다. 승강장에 줄을 서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 틈을 억지로 밀고 들어갔지만, 대부분은 포기하고 그냥 그 줄에 서있었다. 한참 동안 기차는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더 걸어서 앞쪽인지 뒤쪽인지 모를 곳으로 자리를 옮겨보았다. 그곳은 사람들이 좀 더 한산한 것 같았다.


여전히 객차 안은 만원이었지만 열차가 움직이지 않은 채 몇 분이나 그렇게 서있자, 더러 열차에서 그냥 내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 후에는 놀랍게도 객차 안이 조금씩 헐렁해졌다. 우린 이 열차는 못 타고 그냥 보내겠거니 하고 있다가, 조금씩 공간이 생기는 것을 보고 열차에 탔다.


소깔로 역까지는 세 정거장이었다.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부터 난 갑자기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그게 심상치가 않았다. 순간 식은땀이 나면서 서있기가 힘들었다.

내가 아프다고 했더니, 동행하던 그 아버지가 어깨를 내주며 기대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약간 고개를 숙이고 기댄 지 몇 초도 안 돼서 난 토할 것 같았다. 얼른 고개를 들었는데 목구멍을 넘어 토가 입안에까지 올라왔다. 어떡하겠는가? 난 다시 삼켰다. 고개를 창 쪽으로 돌리고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면서, 다시 올라오고 삼키기를 세 번이나 했다.


한 정거장을 앞두고, 그 아버지는 안 되겠다며 내리자고 했다. 기차에서 내려 지하도 밖으로 나오자 비로소 속이 좀 가라앉았다. 내 무거운 백팩은 아들의 손에 들렸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내준 팔을 잡고 걸었다. 그렇게 한 정거장을 걸어 우리는 소깔로 광장에 이르렀다. 내가 좀 괜찮아진 것을 보고 그 아버지는 어디 가서 저녁이라도 함께 먹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난 사양했고 한참을 함께 더 걷다가 드디어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너무나 고마운 그들에게 난 최대의 고마움을 표했고, 아버지는 나를 안아서 볼에 입 맞추었다. 아들과도 따뜻한 포옹을 했다. 아들은 내게 이름을 물었다. “애니. 네 이름은?” “파울로” 아버지에게도 이름을 물었더니 '루이스'라고 했다.

그렇게 그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너무나 따뜻했다. 호스텔에 돌아가면 짐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