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치 서핑으로 만난
멕시코 남자들

- 중남미 여행, 멕시코시티

by Annie



다른 나라에 가서 현지인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 나라를 제대로 여행하는 방법 중의 하나일 것 같았다. 그래서 떠나기 전 카우치 서핑을 검색해 보았다.


멕시코의 칸군 아래쪽에 사는, 여행을 좋아하는 한 중년 부부의 프로필을 읽었다. 결혼 29년 차인 부부이고, 자식들 둘은 이미 장성해 있다.

그들 부부는 35년 전에 만나 지금까지 함께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서로를 더 사랑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삶의 경험들을 키워가고 있고, 이러한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들을 찾고 있다고 했다.


남편은 여행 가이드이고 아내는 화가인데,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행복한 탐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라면 좋은 추억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이런 사람들을 찾아서 카우치 서핑을 하며 여행하는 것도 좋은 테마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부부에게 나를 게스트로 받아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멕시코 여행 중에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나중에 귀국해서야, 그들이 여행 중이었다며 미안하다는 답을 받았다.


이곳 멕시코시티에서는 이미 예약해 놓은 숙소가 있으니 게스트가 되어 현지 회원들의 집에 머물 일은 없지만, 그들을 만나 함께 돌아다니는 것도 좋은 경험일 터였다. 그래서 카우치 서핑에 접속해서 행아웃을 원하는 칸에 표시를 했다.


순식간에 수많은 쪽지들이 날아왔다. 그중 프로필이 좀 마음에 드는 이를 하나 골라서 메시지를 보냈다. 그 와중에 너무나 적극적인 다른 한 명에게도 그냥 응답을 해주었다.

첫 번째 접속이 된 가브리엘과 교신이 뜸해졌을 때, 그 사이를 파고든 두 번째 청년, 까를로는 워낙 적극적이어서 다음 날 만날 약속까지 잡았다.

그 후로도 무수히 쪽지들이 날아왔지만, 일일이 프로필을 살펴보고 대꾸하기도 힘들어서 그냥 다 무시했다.


다음 날 심카드를 살 수 있다는 소칼로 광장 앞의 백화점에서 까를로를 만났고, 그는 내가 심카드 사는 것을 도와주었다. 함께 광장을 돌아다니고 그가 안내하는 푸드코트에서 저녁도 먹었다. 저녁을 먹은 후 근처를 더 돌아다니며 구경했는데, 광장 한편에 벤치가 있어서 그곳에 앉아 좀 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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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가 자꾸 내 손을 잡거나, 어깨에 팔을 두르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어색하게 몸을 빼곤 했는데, 나중에는 키스를 하려고 해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늦었으니 내일 다시 만나자고 하자, 그는 나를 호스텔까지 바래다주었다.


호스텔에 돌아온 후에도 그에게서 계속 쪽지가 날아왔다. 내가 이틀 후에 교외에 있는 테우티후아칸에 갈 거라고 했더니, 자기도 함께 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건 괜찮을 것 같았다. 나도 잘 모르는 곳인 데다 동행이 있으면 심심하지도 않을 테니.


다음 날은 종일 디에고 리베라 박물관을 찾아서 공원 주변을 몇 바퀴나 돌았다. 얼마 만에 찾았을까? 큰 박물관을 기대했던지라 그 시장 통 옆에 숨어있는 작은 건물을 찾기가 쉬울 리 없었다. 심지어 난 그곳을 두어 번 지나가기도 했다. 바로 옆을 지나면서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건물은 그의 대형 벽화가 전시될 수 있도록 맞춤형으로 제작된 것인가 보다. 딱 한 점. 그러나 실물 크기의 그 벽화를 보니, 찾느라 고생했던 보람이 있었다. 그의 이념 못지않게 그의 작업은 완성도가 높았다.

나이 든 그의 사진을 보면 옆에 있는 프리다 칼로의 아름다움에 비해 속물처럼 보이는 배불뚝이였지만, 그의 작업만은 인정해주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프리다가 끝내 그를 떠나지 못했던 이유였을까?


자꾸 두통이 있는 건 배탈인가, 감기 증상인가? 차풀테펙 성을 두 번째 행선지로 계획했었지만, 그냥 과나후아토에 다녀온 후로 미루었다.


까를로가 오늘 저녁에도 만나자고 해서 별로 할 일도 없었던 차라 그러자고 했는데, 좀 전에 가브리엘에게서 연락이 왔다. 저녁 먹을 계획 있느냐고.

난 핑계 김에 까를로와의 약속을 취소했다. 오늘 저녁에도 그를 만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밀어붙이듯 다가오는 데는, 밤 약속보다는 내일 테우티후아칸에 함께 가는 것이 훨씬 낫다. 어제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디에고 박물관에서 돌아오는 길은 또 많이 걸어야 하는데 지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잠시 공원에 앉아 카페라테를 마시고 짧은 일기를 쓰다 보니 피로가 좀 풀렸다. 그래서인지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았고, 길거리 악사들의 연주에 너무 흥이 나서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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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어떤 작은 미술관 마당에 들어섰다가 그 앞의 담벼락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는 햇빛을 받아서였을까, 오랜 세월의 흔적이 쌓인 데서 오는 아우라 때문이었을까?


조금 전 지쳐 있을 때만 해도 나의 여행 스타일에 의혹이 생겼었다. 목표했던 차풀테펙 성에도 못 가고, 멕시코시티에 3일이나 있으면서, 변변히 유명한 여행지 하나를 못 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공원을 벗어나면서 이후로 내내 가졌던 충만한 행복감은 내가 놓친 많은 관광지를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저녁에는 가브리엘을 만났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비교적 시공간이 자유로운 직업을 갖고 있어서 사는 것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카우치 서핑으로 게스트들을 맞이하기도 하고, 요즘은 예술가들에게 한 달 정도씩 방을 내어주는 아트 레지던시를 제공하기도 한단다. 그러면서 그들과 예술적 교류를 하기도 하고, 틈틈이 작곡을 해서 친구들과 함께 앨범을 내기도 한다고 했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거나, 기인이거나, 조금은 미쳐야 한다는 것에 서로 강하게 동의했다. 우리는 비슷한 생각과 자기가 하는 일들, 즐기는 것들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그런 이야기가 각자에게 새로운 것은 아니라 해도, 그런 나를 드러내고 보여준다는 것 또한 일종의 나눔과 소통일 것이다.


그가 나를 그 식당으로 안내한 것은 그 건물이 간직하고 있는 전통 양식의 건축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물론 그곳의 훌륭한 음식도 포함된다.

그는 그것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난 그것을 통해서 그를 보고, 그가 보여주는 것들을 누린다. 현지인이면서, 그 정도의 취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함께 나누기 어려운 것들이다.


다만 그가 말할 때 웃으며 큰 눈을 치켜뜨는 표정은 어쩐지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이목구비가 큰 얼굴에 표정이 풍부한 멕시코인들의 모습에 익숙하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작은 키에 작은 몸집, 뭐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매력은 없는 얼굴, 그러나 그는 내면에 강한 자아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 식당 벽의 재질과 천정, 그리고 식당과는 아치형 벽으로 트인 채 분리되어 있는, 바의 아름다운 분위기 등을 세심하게, 긍지에 차서 내게 보여주고 설명해 주었다.


어제 만났던 까를로와 오늘 만난 가브리엘을 딱 섞어서 다시 둘로 나누어 놓는다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면 외모도, 취향도, 분위기도 딱 좋을 텐데.


남미 여행 중 카우치 서핑을 통한 만남의 시도는 그 두 사람으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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