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야 델 칼멘, 멕시코
십여 명의 호스텔 멤버들이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 그곳에서 미니 밴에 탔다. 나중에 다른 멤버들이 더 합류할 거라고 했다. 밴 옆자리에 앉은 폴란드 남자는 얼굴이 거의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이름은 알렉스, 공무원이라고 했다. 수줍은 성격이라 인사도 내가 먼저 하고, 말도 거의 내가 했고, 질문도 내가 했다.
미니 밴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니 해변이 나온다. 회비가 100페소였는데 편도 버스비 35페소에 입장료 50페소를 따로 내야 했다. 이름에 아일랜드가 붙어서 섬인 줄 알았는데 그냥 버스와 도보로 도착하는 걸 보니 섬은 아닌 모양이다.
플라야 델 칼멘의 메인 비치와 달리 호젓하고 물빛이 훨씬 예뻤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해변을 지나 한참 더 걷다 보니 인적 없는 아름다운 해변이 나타났다.
우린 그곳에 짐을 풀었고 모두들 뜨거운 햇빛 아래 앉거나 드러눕는데, 나는 나무 그늘이 있는 한쪽에 따로 떨어져서 자리를 잡았다. 내 피부는 너무 약해서 온종일 강한 햇빛에 노출시킬 수 없다며.
난 조금 더 뒤쪽의 높지막한 곳, 종려나무 그늘 아래 빨간 우산을 펼치고 큰 타월을 깔아 나만의 성을 구축했다.
바다에 들어가 봐야지 하고 바다에 가까이 갈수록 경치가 점점 더 근사해졌다. 예쁜 물빛의 바다는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고 흰모래와 푸른 하늘, 솜구름들이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물속으로 뛰어들었더니, 물은 아직 조금 차가운데 주변 풍경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이곳은 파라다이스임이 분명하다. 난 캐롤리나를 향해 외쳤다.
“여긴 파라다이스야! 이제 난 다른 해변에는 절대 가고 싶지 않을 거 같아.”
그렇게 한참 동안 바다를 즐기고 나왔는데, 잠시 후 한 무리의 다른 그룹들이 내 성 가까이로 밀고 들어왔다. 그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내가 안 보이는지, 자꾸 내 눈앞에 엉덩이들을 들이밀고 서서 눈앞의 풍경들을 가렸다.
나중에 합류하기로 했던 호스텔 멤버들이었다. ‘가리지 좀 말아줄래? 내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들 좀 즐기게.’라고 몇 번이나 말하고 싶었다. 난 포기하고 그들의 다리 사이로 드러난 바다 풍경과 그들이 틀어놓은 음악을 즐기며 여행 일기를 쓰기로 했다.
나쁘지 않다. 해변에 종일 누워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은 내가 늘 꿈꾸던 것이 아닌가. 거기다 맥주까지 마시면서. 몇몇 남자들은 열을 내며 공놀이를 한다. 그래, 그것이 남자들이 노는 방식이지. 여자들은 모여서 웃고 수다를 떨거나 모래 위에 누워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좋지만 가끔씩 내게 말을 걸어오는 이들, 그리고 내가 말을 거는 이들도 있다.
몇몇 멤버들이 맥주가 든 아이스박스를 들고 왔고, 또 몇몇은 한쪽에서 소시지 바비큐를 만들고 있었다. 바게트에 토마토, 양상추를 얹어 갓 구워진 바비큐 소시지를 얹어 먹으니 꿀맛이다. 우리는 이 해변을 마치 프라이빝 비치처럼 즐기는 20명쯤 되는 큰 그룹이었다.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어느 그룹에 끼어도 되고, 누구의 카메라 앞에 서도 된다. 내 주변의 큰 무리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행자 그룹이다. 캐롤리나가 첫날 그랬다. 자기 룸에는 자기 빼고 모두 아르헨티나에서 왔다고. 이 호스텔엔 아르헨티나에서 온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고.
이 그룹 중에 두 명의 남녀가 듀엣으로 노래를 하는데 둘 모두 노래를 정말 잘했다. 노래가 끝나자 난 “브라보!”를 외치며 커다란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곧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고 내게도 함께 추자고 했다. 춤이라면 나도 안 사리지. 내가 흔쾌히 일어서자, 여자가 어떤 음악을 원하느냐고 묻는다.
내가 “데스파시토”라고 했더니 그녀는 반색하며 몇 번이나 외친다. “데스파시토!, 애니가 데스파시토를 원해, 애니가 데스파시토를 원한대.”
모두들 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의외로 신나게 춤을 추는 나를 보고 그녀는 연방 “애니! 꼬레아!”를 외쳤다. 나는 내 폰을 알렉스에게 쥐어주며 비디오를 찍어달라고 했다.
지금 보면 좀 민망하긴 하지만 그때를 생생하게 떠올려주는 좋은 자료다.
아! 이 파티가 이렇게까지 훌륭할 줄 미처 몰랐다.
난 해변을 좀 더 탐험해보고 싶어서 우리 그룹이 안 보이는 데까지 걸어갔다. 간간이 하얀 커튼이 드리워진, 말 그대로 침대가 해변까지 나와 있는 호텔 프라이빝 비치였다. 이런 호텔에 두어 밤 머무를 수 있다면 참 평온하고 좋겠다.
일몰이 지기 직전에 우리는 철수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미니 밴이 따로 없었고, 각자 알아서 돌아가는 모양이다. 렌터카로 온 사람들도 있었고, 우리가 버스를 내린 곳에서 택시를 타는 그룹도 있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호스텔 리셉션 가이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그가 항상 추종하는 금발 미녀 캐롤리나와 다른 커플이 탄 택시에 동승해서 가버렸다. 내가 그에게 어이없다는 듯 “이게 뭐야?” 했더니, 그는 “멕시코에선 다 이래” 하며 가버린다.
결국 차들만 쌩쌩 달릴 뿐 인적이 없는 어두운 도로에 알렉스와 나만 남게 되었다. 그나마 혼자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알렉스가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들었다. 한참 후에야 버스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그 버스를 타고, 우리가 올 때 미니 밴을 탔던 곳에서 내렸다. 난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도 없었는데, 알렉스는 잘 기억하고 있었다. 난 알렉스에게 정말 고마웠고, 그에게 함께 저녁을 먹자고 청했다.
우리는 호스텔에 소지품을 두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들어간 식당에서는 민속의상을 입은 악사들이 들어와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알렉스는 공무원으로 일하는 것이 사람들을 돕는 일이기도 해서 좋다고 했다. 멕시코에 친구가 살고 있어서 함께 차를 렌트해 뚤름을 여행했다고, 내일이나 모레는 함께 코즈멜 섬에 가기로 했는데, 그 친구가 워낙 바빠서 정확히 언제 갈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호스텔에서 알렉스를 본 것 같다. 호스텔 정원 한 귀퉁이에 혼자 가만히 앉아 있던 이가 알렉스였다. 난 오늘 멕시코의 어두운 외곽도로에서 호스텔까지 함께 해준 그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저녁을 사겠다고 했지만, 그는 한사코 자기 몫의 저녁 값을 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