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뚤름, 멕시코
플라야 델 칼멘을 떠나 뚤름으로 왔다. 리셉션에 요가 포스터가 붙어 있던데, 할 수 있으면 그곳에서 요가도 하면서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자.
해변에 가볼까 하고 시내버스의 일종인 콜렉티보 버스를 탔다. 리셉션에서 안내받은 대로 몇 정거장 가다가 내려야지 하다, 혹시나 싶어 옆에 앉은 여학생에게 물어보았다. 그녀가 영어를 못 알아듣자, 다른 쪽 옆에 앉아있던 한 걸이 자기가 해변에 간다고 함께 내리면 된다고 했다.
리셉션에서는 가깝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거의 30분 이상을 더 가서야 내렸다. 함께 내린 그 걸은 내게 가게들 사잇길 같은 곳으로 안내하며, 이리로 쭉 가면 멋진 바와 해변이 나온다고 했다.
정말 좁은 샛길이 동굴처럼 길게 이어지고, 그 끝에 그녀가 말한 바가 나왔다. 그리고 그 아래로 근사한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해변으로 내려가 보니 바로 옆에 호텔이 보이고 그 앞 해변으로 호텔의 안락의자와 테이블 세트가 몇 개 나와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갔더니 나무 그늘이 보여서, 그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람들도 많지 않은 조용한 곳이었다.
한참 있으니 그리로 세 사람이 지나가는데 남자 둘에 여자 한 명이었다. 숏컷 머리의 늘씬하고 세련된 흑인 혼혈 여성이었는데, 아래는 부드러운 천의 헐렁한 바지를 입고 상의는 모두 벗고 있었다. 몸이 예쁘고 전체적으로 세련된 탓도 있었겠지만, 톱리스로 곧은 걸음을 걷고 있는 그녀가 참 자유롭고 근사해 보였다.
자리를 옮겨 좀 더 걸어가다가, 나무 둥치 위에 앉아있는 히피처럼 보이는 두 남녀를 보았다. 그 모습도 근사해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포즈를 취해주었다. 플라야 델 칼멘의 해변이나 이 해변처럼 난 멕시코의 모든 해변이 이렇게 여유로운 줄 알았다. 나중에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마야 유적지인 코바에 간다. 생각보다 멀어서 거의 한 시간 정도 차를 탄 것 같다. 어제 잠을 설친 때문인지 난 누가 보거나 말거나 고개를 방아 찧듯 하며 잤다. 드디어 버스는 우리를 작은 호수 앞에 내려주었다.
한 남자에게 버스비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40페소라고 했다. 내가 기사에게 40페소를 내밀었더니, 70페소라고 한다. 이건 뭐지? 오늘 아침에 한 룸메이트가 그랬다. 콜렉티보 버스를 탔더니 관광객들에게는 택시 요금처럼 받더라고, 우리는 관광객들을 위해 콜렉티보 버스를 운행하는 게 아니라며. 그래서 내겐 요금을 더 받는 모양이다. 누가 봐도 현지인은 아니었으므로.
아팠다. 목구멍이 아프고 식은땀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앉은 다리에 손을 얹으면 내 손이 불덩이처럼 뜨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입장하기 전에 아이스크림 한 개와 물을 한 병 샀다. 목에 찬 것이 들어가서인지 좀 나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마야 유적지라는 것 밖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러 여기에 온 것인지 모르는 나에겐 무작정 걸어가는 길이 멀고 힘겨웠다. 사람들은 입구에서 자전거를 대여해서 타고 가기도 하고, 뚝뚝을 타고 가기도 했다.
내 눈에는 별달리 볼 것도 없고 숲이 근사하지도 않았다. 다만 크지 않은 나무들에 둘러싸여서 그늘 속을 걷는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침내 돌로 쌓은 피라미드 같은 것이 나왔다. 그곳에 올라갔던 사람들은 내려오는 게 많이 무서운지, 가운데 쳐진 밧줄을 부여잡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고 있었다. 올라가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설사 그러고 싶다 해도 체력이 쇠진해서 불가능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그 뚝뚝 같은 것을 타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그러나 걸었다. 버스 안에서부터 브라가 꼭 끼는 것 같아 숨쉬기 힘들었다. 훅을 풀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버텼다. 그러나 굳이 버틸 게 뭐 있겠는가?
‘Who care?’
난 걸으면서 브라 훅을 풀고 양쪽 반소매 티 밖으로 브라를 벗어버렸다. 설사 누가 본들 그게 무슨 대수이며, 티셔츠 밖으로 노브라인 것이 드러난들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자유로웠다. 호흡이 자유로워지고 더불어 마음 또한 자유로웠다. 노브라로 종일 거리를 활보해보긴 처음이다. 그런데 지금껏 그것이 왜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이렇게 무작정 걷는 것이 너무 힘에 부쳐서 마치 구도의 길처럼 느껴졌다. 돌아가는 콜렉티보 버스를 만날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아는 이가 없었다. 출구 쪽을 서성이다 지붕이 있는 탁자 같은 곳에 걸터앉아 좀 전에 샀던 견과를 집어먹고 있었다.
두 남자가 근처에서 역시 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돌아가는 콜렉티보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냐고 물었더니 한 남자가 영어를 못하는지 다른 남자에게 눈짓한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어떤 차인지 모르겠다고.
맞은편에 세 대의 미니 밴이 섰는데, 콜렉티보 버스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난 알아보겠다며 길을 건넜다. 모두 단체로 빌린 버스 같았다. 어쩌나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영어를 잘 못하던 그 남자가 길을 건너와, 내게 택시가 있다고 1인당 120페소라고 했다.
다행이다. 언제 올지도 모를 70페소짜리 콜렉티보 버스보다 이 택시가 백 번 낫지 싶었다.
난 택시에 타서도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내가 내 몸을 이끄는지, 내 몸이 나를 끌고 다니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나는 약해진 몸을 빙자해서 정신까지 함께 약하게 흔들리며 가고 있었던 것이리라.
툴름 시내에 거의 다 왔는지 뒤에 앉은 두 남자 중 이번엔 영어를 하는 남자가 내게 어디서 내릴 건지 물었다. 난 그에게 되물었다.
“너희들은 어디 갈 건데?”
자기네는 시내에서 내려 뚤름의 Ruins(유적지)에 갈 거라고 했다.
“잘됐네. 나도 함께 갈게.”
나는 통보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원래는 호스텔에 돌아가 약 먹고 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Ruins는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이고, 기왕 동행도 있는 김에 그냥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진갈색 피부의 남자는 줄리앙(스페인어로는 훌리앙)이고 영어를 못하는 얼굴이 흰 남자는 오스칼이었다. 둘 모두 나의 동행을 반겼다.
콜롬비아 사람들이 참 좋다는 얘기는 익히 듣고 있었지만, 그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동행하는 동안 그들에게 얼마나 믿음이 갔는지 모른다. 보통 여행지에서 누구를 만나 잠시 동행하게 되는 경우, 난 사교적이지만 속으로는 의심이 많고 상당히 경계를 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니었다.
많이 걸어서 도착한 ruins는 코바보다 훨씬 좋았다. 다만 시각적으로 좋았다는 것이지, 유적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돌아보아야 할 견학 코스를 마쳤다는 성취감은 있었다.
그곳의 해변은 정말 가련할 만큼 작았는데, 그래도 바다라고 그곳에 뛰어들어 수영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스칼도 그곳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난 그들에게 어제 갔던 프라이빗 비치를 추천했다. 우리는 프라이빗 비치를 찾아 나섰지만, 그럴듯한 곳을 찾지 못하고 사람들이 바글대는 비치에 도착했다. 난 가는 길에 보아둔 레스토랑에서 쉬고 있겠다고, 그들에게 비치에서 놀다가 돌아가는 길에 들러서 나를 데리고 가라고 했다.
나무들로 빙 둘러싸인 그 레스토랑은 훌륭했고 음식도 비싸지 않았다. 난 퀘사디아와 맥주 한 병을 시켜놓고 화장실에 갔는데, 다녀오니 벌써 그들이 와있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우린 지붕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먹도 있고 넓어서 족히 한 나절은 편안하게 뒹굴 수 있는 곳이었다.
줄리앙은 직원이 옮겨준 테이블에 앉아있었고, 나와 오스칼은 침대 같은 벤치에 등을 대고 벌러덩 누워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줄리앙은 많이 피곤해 보였지만, 오스칼은 철없는 아이처럼 내 옆에 등을 기대고 앉아 우리 사이에 끼어든 검은 개 한 마리에게 깔깔거리며 안 된다고, 저리 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드디어 음식이 나오고 나와 오스칼은 식사를 하는데, 줄리앙은 너무 피곤해서 생각이 없다고 음식도 음료도 시키지 않았다. 내가 퀘사디아를 권했지만 그는 사양했다. 진짜 입맛이 없었을까, 돈이 없었을까 조금 마음이 쓰였다.
오스칼은 역시 아이처럼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음식과 콜라를 말끔히 비웠다.
그들은 내가 콜롬비아에 갈 거라고 했더니, 커피 농장이 있는 곳과 아름다운 해변을 추천해주었다. 그들에 대한 신뢰가 무척 컸던 나는 그들에게 한국에 오라고, 한국에 오면 우리 집에 머물러도 된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이 사람들이라면 괜찮다. 그렇게 경계해야 할 것도, 또 손님이라고 법석대며 집안 단속에 신경을 쓸 것도 없이 그냥 우리 집의 한 부분을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내가 콜롬비아에 오면, 날짜만 맞으면 내가 그들 집에 머물 수 있다는 역제안을 했다. 내게 이메일 주소도 묻고 페이스북 메신저를 공유했다. 그들은 칼리에서 두어 시간 거리에 있는 '뽀빠얀'이라는 곳에 산다고 했다.
칼리를 그냥 패스할까 했는데 덕분에 한 번 들러볼까 싶다. 지역민들을 만나, 그들 집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 아니겠는가? 카우치 서핑처럼 약간은 의심스러운 앱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나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