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뚤름, 멕시코
오늘은 코바에 다녀왔다. 아침부터 몸이 무거웠다. 다 나아가는 것 같던 감기가 도졌고 증상은 심화되었다. 어제 루프탑에서 밤 풍경을 즐기겠다고, 젖은 머리로 해먹에 누워 바람을 맞았던 탓인가 보다. 그간 아무리 시끄러운 곳에서도 잠은 잘 자는 편이었는데, 어젯밤엔 무수히 잠을 깼고 기침도 자주 했다.
내 아래 침대를 쓰는 이를 너무 의식해서 조심하느라 몸을 잘 뒤척일 수도 없었던 때문인지 모른다. 그의 이름은 마크다.
오늘 마크에게 그런 말을 했더니 전혀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원래 호스텔은 소음이 많은 곳이고 그럼에도 자기는 호스텔에 묵고 있다고, 자기가 사용하는 귀마개는 소음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라 자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도 했다.
그는 추상화를 그리는데 그 외에 구조물을 만들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요 몇 년 사이에는 오히려 글을 쓰고 출판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다고 한다.
자기 아버지는 오랫동안 책을 쓰고 싶어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매일 쓰고 또 쓰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결국 나중에는 글이 자동으로 써질 정도여서 마침내 책을 한 권 출판할 수 있었다. 다른 책도 한 권 썼는데, 이 두 번째 책은 꽤 읽을 만했다고 한다.
그렇다.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만 책을 쓰는 것은 아니다. 천재들만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하는 것도 아니다. 꿈을 품은 많은 범인들이 끊임없이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범인들의 책도 읽고, 그들의 그림과 음악도 함께 나누고 즐긴다.
그러니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꿈을 포기하지 말자. 그리고 매일 많이 쓰도록 하자. 자동으로 써질 때까지.
저녁에 호스텔에 돌아와 마크랑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내일 뭐 할 거냐고 내가 물었다. 그는 친구를 만나 뭔가 함께 하기로 했다고 한다. 내일은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카페랑 레스토랑에도 가서 그와 함께 얘기를 나누면 흥미로울 것 같았다. 조금 피곤해질 수도 있겠지만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았다. 나이 든 여행자, 그것도 아티스트.
그는 평생을 거의 여행하면서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일단 엘에이에서 왔다고 대답하긴 하지만 좀 난감하다고 했다. 자부심이 좀 지나친 경향이 있긴 하지만 배울 게 많은 사람 같았다.
하지만 내일과 모레는 약속이 있어서, 내가 이곳에 더 오래 머문다면 그 이틀을 제외한 날에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청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대신 나는 그에게 좋은 카페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는 한 서점 카페와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정원이 넓은 카페, ‘코코넛 몰’을 추천해주었다. 아침 9시부터 문을 연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9시가 조금 넘어 난 행장을 챙겨서 토드가 가르쳐준 길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코코넛 몰은 찾지 못했고 대신 그가 묘사한 것과 비슷한 카페 레스토랑, ‘Charlie'에 들어갔다.
라떼 한 잔을 시켜놓고 그곳에서 두 시간 넘게 앉아 카메라를 정비하고 글도 썼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자 이곳은 붐비기 시작했고 난 눈치가 보여 점심을 시킬까도 했지만,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다른 곳을 탐험해보기로 했다.
용용하게 나오긴 했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는 어려웠다. 물과 바나나, 사과 한 개까지 더한 백팩은 무거웠고 거기에 카메라까지 있었다.
작지만 안쪽에 나무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 테이블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물을 꺼내 뚜껑을 열었는데, 맙소사! 샴페인처럼 분출하는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스파클링 워터였던 것이다. 옷이며 가방, 휴대폰, 카메라에까지.
저만치 떨어진 옆 좌석에 앉아있던 커플이 소리 지르며 까르르 웃었다. 사진으로 찍었더라면 근사했을 것이라며. 나도 그들을 향해 함께 웃었다.
그들 덕분에 그 재앙은 그냥 샴페인 오픈 같은 즐겁고 유쾌한 순간이 되어버렸다. 서로 알든 모르든, 함께 있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주고받는 에너지는 이런 파급력을 갖는다.
아보카도 샌드위치와 후르츠 보울을 점심으로 먹었다. 매우 만족스럽다. 꼭 멕시코 음식이 아니더라도 이 역시 외국음식인 것은 매한가지다. 아주 입맛에 맞았다. 멋진 레스토랑이다.
이제 호스텔에 돌아가면, 루프탑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앉아서 글을 써야겠다. 맛난 빵과 과일을 사들고 가서. 저녁은 나와서 먹어도 되고, 아니면 그냥 때워도 된다. 손톱도 잘라야겠다. 새치 염색은 할까 말까. 감기 기운이 없으면 이곳이 싸기도 하고 타이밍도 딱 들어맞는데. 다행히 까칠까칠하던 입술은 회복되어 가는 중이다.
카페를 나와 호스텔의 루프 탑에 올라갔다. 이미 세 개의 해먹은 다른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난 벽 쪽의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후드득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방 속에 넣어둔 우산을 펼쳤다. ‘무거웠던 값을 했네’ 벽에 기대고 있는 등줄기로 빗물이 느껴졌다. 이상하게 해먹 위에 있는 이들은 비가 쏟아지는데도, 다른 곳으로 피하지도 않았다.
우산을 받치고 앉아 공책에 글을 쓰고 있던 나는 한참 만에 비가 그친 후 고개를 들어 맞은편을 보았다. 내가 앉은 곳은 흥건하게 젖어있는데, 맞은편 바닥은 벌써 쨍 하니 말라 있다. 뜨거운 햇빛의 조화인가 싶었다.
나는 마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젖은 등을 햇빛에 말리고 앉아 있었다. 이곳, 뚤름은 습도가 높아서 햇빛이 쨍해도 젖은 옷이 빨리 마르지는 않았다.
방석 위에 앉아 글을 쓰는데 다시 비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크크’, 내가 앉아있는 곳은 천정이 뚫려있지 않았다.
캔버스 천이 벽 없는 천정처럼 막고 있어서, 좀 전에 내가 앉았던 쪽은 풍향 상으로 비가 들치는 곳이었던 것이다. 이제야 그것을 깨닫다니, 내가 이렇다. 호스텔 룸에서도 언제나 뭔가를 떨어뜨리거나 매사에 굼뜨기도 하다.
루프 탑에 올라왔을 때 보니, 저 쪽 키친에서 뭔가 주스 같은 것을 갈고, 음식을 만들고 있는 이가 꼭 마크처럼 보인다. 반 묶음 머리에 분위기는 좀 달라 보이지만, 그가 맞나? 그럴 리가, 그럼 그는 이 호스텔의 스텝이자 요리사였단 말인가?
아직 확실하지는 않으나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그는 룸에서 나와 함께 이야기하다가도 누군가 다른 룸메이트가 들어오면 말을 피하곤 했다. 그것이 이상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늘 여행지의 사기꾼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직업이 예술가나 건축가, 혹은 디자이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편으로 그가 미심쩍기도 했었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하지만 사실이라면 정말 웃기지 않은가?
내내 룸의 침대에서 글을 쓰다가 저녁때쯤에 정원으로 내려갔는데, 테이블에 앉아있던 마크와 잠시 또 얘기를 나누었다.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낮에 루프 탑 키친에 있던 남자가 꼭 너처럼 생겼더라.”
“나였어.”
“진짜? 거기서 뭐한 거야?”
“디저트를 만들고 있었어. 다 완성하지는 못했어. 아마 내일쯤은 완성이 될 거야.”
“그런데 키친은 투숙객들이 못 들어가는 곳 아니야?”
“응, 보통은 그런데, 나는 이곳에 오래 머물면서 이곳의 일을 많이 해왔던 참이라 이용할 수가 있어. 여기 탁자도 원래는 볼품없는 흰 탁자들이 놓여 있었는데, 이것은 270년 된 나무야. 6일 동안 샌드페이퍼로 작업을 했지.”
“결이 너무 아름다워.”
“맞아, 아름답지.”
그렇다면 그는 이곳에 잠시 묵어가는 보통 여행객이 아니라 장기 투숙자인 셈이고, 이런 식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내나 보다. 낮에 혼자서 멋대로 짐작했던 것처럼 엽기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다. 이 넓고 크고 아름다운 결을 가진 탁자가 좋다. 그 위에서 글을 쓰고 있어서 좋다.
마크는 오후에 내가 우산을 받치고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이 꽤 지적으로 보였다고 했다. 그는 오늘 계획이 있다고 했는데 그럼 그 디저트 만드는 것이 계획이었나? 아니면 오늘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나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일까?
뭐 상관은 없었다. 여행자들은 각각 나름의 스타일이 있고, 때로는 누구를 만나 함께 얘기하거나 동행하고 싶을 때가 있고, 때로는 그런 여행의 루틴이 귀찮아져서 그냥 혼자이고 싶을 때도 있다. 그건 나도 그렇다.
그가 들어가고 난 후 난 그 테이블에 앉아 오랫동안 글을 썼다. 나중에는 기다란 의자에 누워, 아래로 두 팔을 늘어뜨린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르스름하게 어두운 밤하늘 위로 하얀 구름들이 흐른다.
그렇게 누워 밤하늘을 보자니 어릴 적 신작로에 긴 의자와 평상을 놓고 아버지랑 모깃불을 태우며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가족들보다 자신을 얼마나 더 소중히 하고 무심한 사람이었나 하는 것과는 별개로, 함께 했던 순간들은 또 그것들대로 좋은 기억이 되어 남아있다.
새벽이면 우리를 깨워 함께 동네 산자락을 타고 40분 정도 등산을 하곤 했던 것, 함께 성묘 갈 때면 양복을 차려입고 꼿꼿하게 등을 세우고 앞서 가시던 뒷모습 등.
아버지에게도 우리는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리고 우리 아이들, 봄이와 여름이를 얼마나 끔찍이 사랑해주셨던가.
매일 한참을 걸어 애들을 유아원 차에 태워 보내고, 또 데려오고, 애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는 또 늘 등하교 길에 아이 손을 꼭 잡고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자식들은 부모의 모습을, 마음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 아이들도 그러겠지.
여기 툴룸의 호스텔 정원에 나와 앉아 기억을 되살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 마크가 말했던 것처럼 지금은 글이 거의 자동으로, 빛의 속도로 써지고 있다. 여행하며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싶었다. 그냥 메모가 아니라 실제 글을, 매일매일 긴 시간 동안 쓰며, 한 곳에 길게 머무르며.
날씨 좋고 비행기 값싸고, 물가도 싼 곳에서. 비행기는 미리 일찍 끊으면 싸게 살 수 있을 테니. 한국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가을만 보내는 것이 어떨까? 어차피 드는 생활비는 여행이라 해도 한국에서와 비슷한 정도로 드는 곳이 많을 것이다.
좋은 생각!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호스텔에서. 머리도 염색하지 말고 그냥 다닐까? 아니 그것만큼은 더 나중에. 짧은 순간 조금씩 말을 주고받았지만, 마크는 내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