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열기를, 맘보 맘보!

- 칸쿤의 맘보 클럽에 가다

by Annie


호스텔로 돌아와 방을 배정받았는데, 여성 4인실이라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룸은 기대 이상으로 무척 깔끔했고,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아서 마치 싱글 룸인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모처럼 해방된 기분으로 혼자 독차지한 그 공간을 즐겼다. 멕시코에서 3주를 보내던 중 가장 황홀한 샤워 타임이었다.


가방 정리와 샤워를 마치고 루프 탑에 올라갔다. 엄청 넓은 데다가 각각 사우나, 농구 코트, 헬스장, 바 등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바텐더 알베르토는 계속 내가 예쁘다며 말을 걸었다. 옆에 앉은 남자도 내게 말을 걸었는데, 얘기하다 보니 2년 전에 한국에 갔었다고 한다. 휴전선 근방에도 갔었다고, 다시 기회가 되면 제주도에 가보고 싶다고, 아마 내년쯤엔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딘이었다. 그는 노천탕 쪽에서 발을 담그고 있는 여자를 가리키며, 그녀와 함께 왔다고 했다. 여자의 이름은 칼멘이라고 했다.


그가 내게 농구를 하자고 제안했다. 골대 밑에서 두어 번 공을 넣으려 슛을 시도해본 것이 내 평생 농구 체험의 전부였지만, 뭐 못할 건 또 뭔가?

농구 코트에는 한 남자가 혼자 슛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셋이서 슛 게임을 했다. 어설프지만 나도 두 골이나 넣었다. 15분쯤 했을까, 뛰면서 농구를 해본 적이 없던 나는 금방 지쳐서 그만 하겠다고 했다.


딘이 내게 춤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있다가 자기네는 춤추러 갈 건데, 저 옆에 앉은 커플하고 그룹을 만드는 중이라고, 차가 있으니 함께 가겠느냐고 물었다.

좋지! 우리는 10시 45분에 이곳 루프 탑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 좋다! 이 호스텔 대박이다!


칼멘은 반짝이 소재의 몸에 딱 붙는 미니 드레스에 하이힐을 신은 멋진 모습으로 등장했다. 딘은 내가 좋아하는 화이트 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근사해 보였다. 여행 중이어도 이렇게 갖추어 입을 옷 한 벌씩은 있어야지.

나는 쭉쭉 늘어나서 여행 내내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빨간색 스트라이프 원피스에, 투박한 운동화 대신 그냥 검은 슬리퍼를 신었다. 그들이 이렇게 차려입고 나설 줄 알았으면, 나도 경쾌하게 민소매 티에 미니 스커트를 입을 걸, 너무 튈 것 같아서 제쳐 놓았는데..


우리가 간 ‘맘보 카페’는 엄청나게 큰 곳이었지만, 사람들이 없이 텅 비어있었다. 그곳에 도착한 시간이 11시였는데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고, 12시 30분에 밴드 연주가 시작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린 다른 바에 가서 한잔씩 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칼멘은 멕시코인이고 아들이 하나 있다. 딘은 아내와 헤어진 지 몇 년 됐다고 했다. 둘은 지금 미국에서 함께 지내며, 자주 이렇게 여행을 한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미인을 만나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 만났다고 했다.

딘은 내게 사귀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웟쌥을 하냐고도 물었지만, 내 휴대폰은 외국에서 웟쌥에 새로운 친구 등록이 안 된다. 그는 조만간 한국에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시간에 맞춰서 다시 클럽에 갔더니, 그 큰 클럽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밴드가 연주를 시작하고, 세 명의 가수가 계속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한 가지만 하기도 힘들 텐데, 그 격렬한 춤 동작과 함께 40분 정도 계속 노래를 한다.


무대 아래에는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사람들이 나와서 모두 커플을 이루어 춤을 추었다. 그 춤이 맘보인가 보다. 플라야 델 칼멘에서는 단조롭게만 들리던 멕시코 음악이, 이곳에서는 흥겹고 열정적인 리듬이 되어 클럽을 꽉 채우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가끔 외국인 친구들과 외국인 바에 갔었는데, 즐기고 싶다는 마음과 실제로 즐거움에 빠지는 것 사이에 약간의 괴리감이 느껴지곤 했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춤추는 사람들도, 즐겨야 한다는 의무감과 그들의 춤이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춤추는 사람들의 몸속에 이 리듬이 녹아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이 한데 녹아서,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를 이루며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들의 몸속 어디에서 그런 유연하고 관능적인 리듬이 뿜어져 나오는 걸까? 몸이 그냥 음악과 함께 흐른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흥겹다.


그곳에서 마주한 춤이 맘보인지, 그냥 멕시코의 클럽 댄스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눈으로 보아왔던, 또는 알고 있던 다른 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몰입이었다. 그 클럽 안에 수십 명, 수백 명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 오로지 자기 안의 리듬을 타는 것에, 그리고 눈앞에 몸을 맞대고 있는 파트너와 그 리듬으로 소통하는 것에 백 퍼센트 몰입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춤을 추러 무대로 내려갔다. 딘은 춤출 때 나를 챙겨서, 손을 잡아 빙 돌리고 허리를 당겨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그는 칼멘과 나 사이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둘이 춤추러 나갔다가도, 혼자 남아있는 나를 데리러 와서 손을 끌고 가 함께 춤추기도 했다.


칼멘은 별로 흥이 나 보이지 않았고, 얼굴에 따분함이 어려 있었다. 분위기에 몰입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신과 나를 동시에 챙기고 있는 딘을 보며 그 상황의 애매함이 그 얼굴 표정에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난 커플 사이에 끼게 된 상황이 조금 거북하기는 했다.

자리에 앉으면 딘이 칼멘의 어깨에 팔을 두르거나, 걸을 때 둘이 손잡고 걸으며 애정을 과시했지만, 칼멘의 얼굴에 떠오르는 애매하고 건조한 표정은 그것이 그냥 제스처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래도 그런 애정 과시를 보며 혼자인 내 마음은 좀 복잡해졌다. 나도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꼭 연인이 아니라도, 남자가 아니라도, 어떤 누구라도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면 두 사람 사이에 낀 어색함도 없고, 이 신나는 분위기에 한껏 어우러질 수 있을 텐데.


어쨌든 엄청 흥겹게 춤을 춘 것은 아니지만,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그 열에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들 덕분에 신기하고 좋은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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