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여, 안녕!
- 사뮤엘의 생일에 칸쿤 등대로
다음 날 아침, 비치 행 셔틀버스를 타려다 어제 그 청년들이랑 또 마주쳤다. 이름이 사뮤엘과 토미였다. 그들은 오늘 등대까지 걸어가 볼 참이라고 했다.
등대에 가려면 어제 루치아나가 얘기했듯 해변이 아닌 일반 도로를 조금 걸어야 하는데, 오늘은 꼭 그곳 해변에 가보고 싶었으므로 이래저래 잘됐다.
그러나 우리는 호텔 앞 프라이빗 비치로 들어갈 통로를 찾지 못했다. 나중엔 그냥 미친 척 호텔 안을 통과해보려 했지만 제지당했다.
‘아, 멕시코! 호텔 주인이 그 앞바다를 사기라도 했다는 건가?’
일반인들은 퍼블릭 비치라는, 해초들이 널려 있는 옹색한 곳만 사용해야 하다니.
그래도 겨우겨우 퍼블릭 비치의 작은 틈새들을 지나 프라이빗 비치에 접근하려고 하는데, 저쪽에 경비원이 서서 지키고 있다. 그가 우리를 제지하려고 하자 우린 저기 등대에 가는 거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우리에게 저 아래 모래사장 쪽을 통해서 가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우리는 등대에 도착했다. 아! 그곳은 천국이었다.
플라야 델 칼멘에서 만났던 호스텔 친구들은 모두 칸쿤을 비웃었다. 미국인과 호텔들만 가득한 상업적인 곳이라며.
그러나 칸쿤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바로 오늘, 이 등대 앞에서 깨달았다. 한쪽은 망망대해로부터 밀려오는 파도가 거셌고 다른 한쪽으로는 저 칸쿤의 호텔 지역이 멀리 보이는, 형용하기 어려운 빛깔의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곳에 와보지 않고 칸쿤을 논하지 말 일이다. 물도 너무 맑았고 광대한 원경이 꿈결같이 아름다웠다.
토미와 사뮤엘은 마음속에 그늘 한 점 없는 것처럼 투명한 청년들이었다. 우린 셀카도 찍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사뮤엘과 토미는 델타 항공 승무원이었다. 난 생일을 맞이한 사뮤엘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둘에게 칵테일을 한 잔씩 샀다.
해변에서 돌아와 물가도 더 비싸고 영어도 더 안 통한다는 쿠바에 들어가기 전, 새치 염색을 하고 싶어 미용실을 찾아 나섰는데, 주변에는 따로 미용실이 있지도 않았고 이발소만 두 개가 있었다. 그도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그냥 이대로 흰머리를 날리며 이 여행을 해버릴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오늘도 룸을 혼자 쓰나 했는데, 캐리어의 짐을 대충 꾸려놓고 나니 한 여자가 들어섰다. 인사 소리가 너무도 힘찬 거구의 여성이었는데, 긴 흑발에 드러난 두 팔 위엔 문신이 가득했다.
내가 루프 탑에 간다고 하니 그녀도 따라나섰다. 나이는 50이 넘었고 여행을 아주 많이 한단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아들 셋과 함께 산다고, 심리 치료 일을 한다고 했다. 박사 과정을 시작할 생각이라고도 했다.
계속 공부하는 게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자주 두뇌 활동을 해주는 것이 좋고 직업과 관련도 있어서 괜찮다고 했다. 나이 오십 넘어 박사 과정이라니. 내가 삶에 대해 너무 겁이 많은 것인가?
그녀는 여행을 좋아해서 많이 다니고 싶은데 좋은 호텔에 묵을 여유는 없고, 호스텔에서는 자기 나이의 여행자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했다.
시간적, 금전적인 이유로 여행을 못할 때는 타투를 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타투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자꾸 여행을 떠나고 싶은 여행자들의 마음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있으면 또 어딘가로 다시 떠나고 싶어 지는.
루프 탑 바에 왔는데 일요일이라고 알코올을 팔지 않는다. 카톨릭 국가답다. 내가 내일 아침에 쿠바로 떠난다고 했더니 바텐더 알베르토가 엘리베이터 앞에까지 나와 배웅해주었고, 우리는 작별의 포옹을 했다.
알람 세팅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나섰다. 나는 오늘 아침 9시 20분 비행기로 쿠바에 간다. 시간 맞춰 공항에 도착해야 하려면 아침 6시 50분에는 택시를 타야 한다. 호스텔 로비 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저쪽에서 누군가 “Good bye, Annie.” 한다.
돌아보니 아! 사뮤엘이었다.
그냥 굿바이 하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내가 그런 표정을 지었더니 그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로 와서 허그를 한다. 떠나기 전에 다시 봐서 너무 좋다며 나도 그를 안았다.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토미가 성큼성큼 걸어오며 팔을 벌려 나를 안는다.
어젯밤 흐지부지 헤어졌는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다시 만나게 되어 허그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우린 절묘한 시간에 매번 이렇게 마주치곤 했었다. 기분 좋은 만남 그리고 기분 좋은 작별.
3주 동안 있었던 멕시코는 불안한 마음으로 떠났던 남미 여행에서 마치 홈그라운드 같았다.
프랑수와즈 사강의 소설, ‘슬픔이여 안녕’에서 우리말로 번역된 ‘안녕’은 헤어질 때 하는 ‘굿바이’의 의미가 아니라, 만났을 때 하는 인사인 ‘Bonjour'다. 그러나 번역된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처럼, 내겐 여전히 그 ‘안녕’이 ‘봉주르’ 같기도 하고, ‘굿바이’ 같기도 한다.
‘멕시코여, 안녕’은 내가 멕시코에 건네는 따스함과 애정이 담긴 두 가지 모두의 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