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의 밤을 살사와 함께

- 아바나, 쿠바

by Annie


정원에는 한 블론드 걸이 앉아있었고, 난 그 맞은편에 앉아 서로 통성명을 했다. 잠시 후 한 청년이 맥주를 사서 들고 오더니 우리에게 한 캔씩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흔쾌히 동의했다. 블론드 걸의 이름은 수잔이고 덴마크에서 왔다. 청년의 이름은 페르난도, 멕시코에서 왔다.


우린 그렇게 정원의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아, 맥주를 마시며 유쾌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있다가 저녁에 춤추러 가기로 했다며 함께 가겠느냐고 묻는다. “당연하지”

차츰 다른 멤버들이 술자리에 합류했는데, 고음으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한국인 청년, 성민도 그중 하나였다. 사실 청년이라고는 하지만 허우대며 말투가 수다스러운 중년의 아저씨 같았다.


페르난도가 '춤추러 가기 전에 럼주로 분위기를 좀 돋울까?' 하더니, 나가서 럼주를 사 왔다. 나중에 합류한 커플이 와인을 한 병 가져와서, 얼떨결에 세 가지 술을 섞어 마시게 되었다. 그룹은 더 늘어났고, 난 샤워를 마치고 나와 럼주를 두 잔 더 마셨다.


10시쯤에 우린 춤을 추러 가기 위해 호스텔을 나섰다. 중년의 호스텔 주인 남자가 이 댄스파티를 주선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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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남자의 안내를 받으며 밤거리를 왁자하게 걸어서 어느 호텔 바로 들어갔다. 루프 탑에 있는 그 바는 신천지였다. 전문 댄서들이 돌아가며 기막힌 살사 춤을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우리는 가만히 서서 구경하다, 춤꾼들이 다가와 춤을 가르쳐주면, 함께 따라서 춤을 추었다.


난 한 청년에게 이끌려 스텝을 좀 배우고, 난생처음으로 살사를 추어보았다. 음악은 멕시코 음악보다 훨씬 리드미컬해서 좋았고, 춤도 청년이 이끄는 대로 따라 출 만했다.

이 청년은 나처럼 살사라곤 맹탕인 여행자들에게, 살사의 기본 스텝을 가르치며 파트너가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 수백, 수천 번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지겨울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처음이니 당연히 즐기는 것이다. 무엇이든 직업으로 하게 되면, 특히 그것이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말이나 몸짓이어야 한다면 얼마나 피곤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처음 여기 도착해서 보았던, 전문 춤꾼들끼리 대중에게 자기들의 춤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서로 자기네들끼리 함께 춤을 즐기기도 하고, 사람들의 환호 가운데서 과시하는 맛이라도 있겠지만.

나를 리드하던 그 청년은 내게 60달러를 내면 밤새 춤추며 놀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런 것이 관광객들에게는 통하는 모양이다.


맘보든, 살사든 이곳 중남미 사람들의 춤은 왜 이렇게 관능적일까? 동양의 춤은 왜 이와 같지 않을까? 단순히 감춤과 드러냄의 차이일까? 그렇다면 그 감춤과 드러냄의 성향을 가르는 토대는 무엇일까?


문화나 관습, 본능, 이런 것들은 어느 지점에서 발현되고, 억압되고, 변형되고, 권장되었을까?

동양인들의 억압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종교, 학문, 예법, 제례 등이 원인이라면, 그것들은 왜 그런 방향으로 굳어졌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얼굴 표정만 봐도 서양인들의 얼굴에는, 그 굴곡마다에 담긴 다양하고 풍부한 표정이 있다. 그러나 동양인의 얼굴은 그 평면성만큼이나 단순하고 고요하며 가려져 있다. 특히 나이 든 이들에게서 보이는 표정은 딱딱하고, 때론 고문을 견딘 얼굴 같기도 하다.

나는 내 얼굴이 표정 없이, 주름 없이, 평면적이고 경직되기보다는, 크고 작은 주름들이 많더라도 풍부한 표정을 지닌 얼굴로 되어가기를 바란다.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에 스웨덴에서 온 소피아와 얘기하며 걸었다. 스웨덴은 최고의 복지를 자랑하는 나라라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늘 더 많은 돈을 원하고, 더 많은 것을 갖는데 골몰할 뿐,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이곳 쿠바 사람들은 다 쓰러져가는 낡은 건물에 살며, 그렇게 가난한데도 무척 즐거워 보인다는 것에, 그러고 보면 행복의 절대 지점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에 그녀와 나는 공감했다.


우리 그룹은 호스텔에 돌아와서도 새벽 2시까지 루프 탑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난 조금 피곤해져서 먼저 자러 내려왔다. 그리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기억도 없이 녹아 떨어졌고, 아침에 성민이 떠나려고 짐을 꾸리는 소리에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