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바나에서 시내버스를 잘못 타고
이곳 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마셨는데도 여전히 졸린 것은 지난밤에 잠이 부족했다는 것인가? 여기를 나서면 한 낮인데 어떻게 돌아다니지? 구 아바나의 번화가를 돌아다니다 비냘레스행 버스표를 사기 위해, 버스 터미널이라 할 수 있는 비아술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몇 번 버스를 타면 되냐고 물었더니, 여기에는 그곳에 가는 버스가 없다고 하는 것 같았다. 스페인어니 제대로 알아들었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난 환승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버스 정류장에 그대로 서서 그곳에 멈춰서는 버스들의 행선지를 계속 확인했다.
한참 후, 내가 처음에 버스 번호를 물었던 사람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그녀가 버스를 가리키며 타라고 했다.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한 30분 정도 간다고 했으니, 무작정 가는 것이다.
한참을 졸다가 내 앞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떼르미날에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하느냐고 물었다. 물론 그렇게 묻지도 못하고 ‘떼르미날’만 반복했지만.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며, 서로 다른 언어로 의사소통을 해왔던 나다. 그녀는 자기를 따라 내리라고 했다. 한참 후에 그녀를 따라 내렸더니, 거기서 A-33번을 타라고 한다.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손바닥에 동전을 꺼내놓고 살펴보는데, 옆에 앉아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내 손위에 있는 동전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버스비로 내려고 들고 있던 동전 두 개를 내게 주었다.
그러고는 내가 양손의 동전을 다시 보고 있으니, 지갑을 열고 동전을 한 움큼 꺼내 내게 주었다. 버스를 열 번은 타고도 남을 만큼이나 되는 동전이었다.
멕시코에서도, 여기 쿠바에서도 아주머니들은 자꾸 내게 버스비 할 동전을 준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려 드디어 33번 버스를 탔는데, 세 정거장 정도 갔더니 사람들이 모두 내린다. 내가 기사에게 떼르미날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얼떨결에 내렸으나 터미널은 보이지 않았다. 그곳은 말 그대로 터미널, 버스 종점이었던 것이다. 난 한국에서 버스터미널의 개념과 떼르미날을 내 멋대로 동일시했던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우왕좌왕하다가, 이번엔 떼르미날이라고 하지 않고, 비아술에 가는 길을 물었다. 그랬더니, 버스를 타고 왔던 길로 다섯 정거장을 되짚어가라고 한다.
내가 물어물어 도착한 곳은 비아술은 맞는데, 내가 찾는 그 비아술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주차 업무를 보는 남자가 나를 택시 기사에게 연결해주었다. 그 기사가 25 쿡에 비냘레스로 가는 콜렉티보 택시를 연결해주겠다고 해서, 버스보다 낫겠다 싶어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자기 친구라며 8 쿡에 호스텔까지 가는 택시 기사를 소개해주었다.
그러나 그 택시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낡은 데다, 삐걱거리기까지 했다. 내일 내가 타게 될 콜렉티보 택시도 이런 택시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중남미 여행을 하면서 나는 정말 열악한 교통수단에 나의 안위를 맡기고 다닌다.
돌아오는 길에 그 택시기사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내일 콜렉티보 택시를 이용할 승객이 나 혼자라고 했다. 혼자서 네 시간 걸리는 비냘레스까지 기사와 단 둘이서 간다고? 노노! 그런 위험한 일은 애당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냥 호스텔 리셉션에서 알아봐야지 하고 그 건을 취소시켰다.
호스텔에 돌아왔더니, 리셉션 가이가 오후 내내 집에도 못 가고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비냘레스에 가는 콜렉티보 택시를 이용할 다른 걸이 있다며, 함께 가겠냐는 것이었다.
오전에 내가 비냘레스 가는 방법을 그에게 물었기 때문에 그는 내가 그곳에 가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잘 됐다. 동행도 있고 안전하고 가격도 30 쿡이면 적당했다.
너무나 지치고 피곤해서 물을 사 와 쉬려고 했다. 그런데 정원에서 페르난도와 오늘 멕시코 시티에서 온 그의 여동생이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좀 있다가 들어가 쉬어야지 했는데,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며 맥주 판이 벌어졌다.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버텨보려고 했지만 너무 피곤했다. 맥주 네 캔 정도의 돈을 내기는 했지만, 한 캔도 미처 못 마시고 그냥 들어왔다.
한숨 눈을 붙이고 싶은데 밖이 어찌나 시끄러운지, 생각해보니 방 옆이 바로 무비 룸인 것 같다. 게다가 내 위층 침대의 멕시코 걸은 어젯밤 루프 탑에서 그녀에게 푹 빠진 듯한 남자와 계속 얘기를 하며 들썩거려서, 쉬기에는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래도 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자다 깨다 두어 시간 된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나가볼까 했더니 정원에 아무도 없다. 다들 또 댄스파티에 간 모양이다. 벌써 밤 11시였다. 난 내일 떠날 짐을 다 싸놓고 정원으로 나가, 그동안 못쓰고 빠뜨린 글들을 마무리했다.
이곳 아바나는 자주 나를 집에 가고 싶게 한다. 새벽 2시까지 밖에 나와 글을 쓰고 있는데, 같은 룸의 프랑스 청년이 외출했다가 혼자 들어오더니 다시 나갔다. 그만 자려고 방에 들어가 누웠는데 그도 들어왔다.
일행들과 함께 나가긴 했는데, 그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일찍 왔다고 했다.
그는 내게 쿠바가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아니.” 나는 아바나에 대한 나의 안타까운 마음을 그에게 얘기했다. 그는 쿠바가 다른 나라들과 많이 다르다고 했다. 자기는 여행 중 현지인들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스타일인데, 이곳 쿠바에서는 그것이 어렵다고 했다.
또 쿠바가 가난한 나라인 건 분명하지만, 정작 쿠바인들은 그로 인한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고도 했다. 국가에서 무상으로 교육시켜 주고, 아프면 병원 치료도 무료로 받고,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맞는 말이다. 가난하지만 그것도 모두 평등하게 가난한 것이라, 다른 나라들처럼 상대적 빈곤감이나 박탈감 같은 것이 없는 것이다. 비교적 부유한 나라에서 온 여행자인 내 눈에는 그들의 가난이 남루해 보이고 불편해 보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그것이 별로 문제 되지 않는 것 같다.
어제 아바나 주거지역을 지나면서 생각했던 것처럼 내가 쿠바의 모습에 어떤 슬픔을 느낄 것도,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숭고했던 이념에 대해, 그것이 지금의 남루함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할 일도 아닌지 모른다. 행복이나 가치의 기준이 물질이 되면 안 되는 것은,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다.
한국은 얼마나 풍요로운 곳인가. 그러나 그에 비해 행복 지수가 아주 낮은 것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비교의 잣대가 그 풍요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모두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한 곳만 보고 달려가는, 그런 획일화된 가치관 때문에 진짜 행복을 놓치고 있거나, 옆에 있는 행복을 인식하지 못하는 때문이 아닐까?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욕구가 더 나은 삶을 향한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지상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새로울 것도 없는 말이지만, 먼 나라 쿠바에 와서 보니 깊은 밤에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