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의 숲, 비냘레스

- 수잔과 함께한 여행

by Annie


수잔이 예약한 에어 비앤비는 언덕바지에 있어서 캐리어를 끌고 올라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덕분에 내 캐리어 손잡이는 또 고장이 났다. 그러나 이곳 숙소는 무척 평화롭고 전망이 좋다. 널찍한 루프 탑도 편안하게 잘 꾸며져 있어서 아름다운 주변 경치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거기에다 더블 침대가 두 개인 룸은 환상적이었다. 여행 한 달 만에 드디어 침대다운 침대에서 자보는 것이다.


비냘레스에 도착한 첫날은 오후에 승마를 했다. 우리의 가이드는 노골적으로 수잔에게 관심을 보이며, 그녀에게만 말을 걸고 적극적인 관심을 표시했지만, 난 별로 개의치 않았다.

스물네 살과 스물다섯 살인 그들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몸에서 강렬한 젊음의 에너지가 뿜어 나오는 이들이 아닌가.

쿠바 청년들에게 유럽 여자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멕시코 청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플라야 델 칼멘의 호스텔 리셉션 가이도 블론드의 훤칠한 체격을 가진 캐롤리나에게 집중했었다.


말을 타고 돌아본 비냘레스의 숲은 너무 아름다웠다. 왠지 영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비경이다. 검푸르게 신비스러운 숲 사이로 하얀 새들까지 날아다녀, 꿈속의 세상 같은 느낌을 준다. 산 모양도 그렇고 나무의 모양도 그렇다.

승마에 대해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말을 타고 지나가며 마주하게 되는 풍경들은 너무나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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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시가 재배 농장에 들러 시가도 피워보았다. 난 시가의 내용물이 담배 잎을 가루 낸 것인 줄 알았는데, 담배 잎을 통째로 여러 겹 말아 놓은 것이었다. 잎을 찌고 거기에 천연 향을 첨가하고 말리는데, 그 과정이 거의 일 년 가까이 걸린다고 했다.


중간에 꿀이나 바나나, 오렌지 등의 과일즙을 부어서 발효시킴으로써, 여러 가지 향을 낸다고 했다. 담배와 달리 니코틴이 없어서 중독도 없고, 이가 까매질 염려도 없어서 부작용 없이 피우기에 좋다고 한다. 폐 속으로 들이마시지도 않고, 입안에서만 뻐끔거리는 것도 담배와는 다른 성격이었다.


도중에 산속에 있는 카페에 들러 모히또와 약간의 럼을 마셨다. 모히또를 마시며 나와 수잔은 수다스러워졌다. 수잔에게 관심을 보이던 가이드와 카페 주인 남자는, 나와 수잔이 둘이서만 수다에 집중하자 머쓱해져서 그들도 자기들끼리 얘기를 주고받았다.


모히또 한 잔에 3 쿡, 환전 수수료까지 포함한다면 우리 돈으로 4천 원 정도. 한국에서는 7천 원 정도 하지만 천연 꿀에 럼을 더한 유기농 모히또는 한국의 모히또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린 기분 좋게 취해서 풍경과 그 모든 것들을 즐긴 후에 해질 무렵, 다시 말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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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해진 풍경은 독특한 정취를 더했고, 그것이 너무 좋아 나는 연신 말위에서 지나온 곳을 뒤 돌아다본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내가 탄 말은 올 때는 계속 수잔의 말을 앞지르려고 하더니, 돌아갈 때는 뒤에 한참 떨어져서 천천히 간다. 혹시 수잔에게 흑심을 품은 가이드가 일부러 이 말이 천천히 오도록 수를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주변은 깜깜해졌고 하늘엔 별이 떴다. 별빛 아래서의 승마는 짧았지만 황홀했다.

우린 숙소에 들르지 않고 바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곳에서 난 치킨 수프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랍스터가 들어간 요리를 시켰다. 둘을 모두 합쳐도 10 쿡 밖에 안 했다.

싸다 했더니 랍스터 요리는 수북한 라이스 속에, 간간이 랍스터 부스러기가 숨겨져 있는 정도였다. 치킨 수프는 맛도 좋고 영양가 있을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하고, 잠시 루프 탑에서 별을 보다가 10시 반쯤 룸으로 돌아왔다. 도미토리가 아닌 트윈 배드룸, 아무런 소음 없는 곳에서 한 달 만에 편한 잠에 깊이 빠졌다.






둘째 날은 하이킹을 했다. 말이 하이킹이지 그냥 산속의 평지를 계속 걷는 것이었다. 평지 같기도 한데 또 어찌 보면 산이기도 했다. 키 큰 나무들이 없고 거의 땅에서 1미터도 채 안 되는 나무들이 주를 이루었다. 간혹 조금씩 키 큰 소나무들이 있긴 했다.

이곳은 종려나무도 그렇고 나무들이 모두 마른 잎 없이 생생한 색깔들을 뽐내고 있었다. 걷기에는 날이 너무 덥게 느껴졌다.


한참을 걸어 호수에 다다랐고 거기서 잠시 수영을 했다. 또 걷다가 배고프고 지칠 무렵, 한 오두막이 나타났고 우린 거기서 미리 준비된 점심을 먹었다.

커다란 닭다리 두 개와 감자, 고구마가 곁들여진 요리, 바나나 칩과 생 바나나, 파인애플, 자몽 등의 과일, 그리고 검정콩 밥. 푸짐한 편이었으나, 각각 10 쿡씩 냈으니 수잔 말에 의하면 조금 비싼 점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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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에도 한참 그곳에 앉아있었다. 에스프레소도 한 잔씩 하면서. 나른한 여름 오후 분위기에 다리 위로 내려쬐는 햇빛이 너무 따가웠고 지루하기도 했다.

그만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직은 걷기에 너무 더울 것 같았다. 그래서 정말 너무너무 지루해질 때까지 참다가 결국 돌아가자고 내가 말했다.


가이드에게 어제, 오늘 가이드 비용으로 각각 45 쿡씩 지불했다. 수잔은 비싼 편이라고 했다. 어쨌든 우린 가이드가 필요했었고 투어는 나쁘지 않았다. 이틀간의 투어 및 식사, 음료 값으로 70 쿡을 썼다. 뭐 나쁘지 않다. 부족함이 없었으므로.


샤워하고 담요를 챙겨서 루프 탑으로 올라갔다. 거의 침대라고 할 만한 비치 배드에 누워 하늘을 보니 별들이 눈처럼 내릴 것 같다. 마치 보석 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밤하늘이다.

잠시 후 흰 구름이 밀려와 별들을 다 덮어버렸다. 설핏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눈을 떠보면 어느새 구름들이 물러나고 별들이 다시 빛나고 있었다.


수잔은 저쪽에 앉아 뭔가를 하고, 난 그렇게 누워 졸다가 별 보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인터넷이 안 되는 시골의 밤은 길었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은 일찍 자나보다. 난 스웨터를 입은 채로 잠시 누워 있는다는 게, 그대로 잠이 들었다. 추위를 느껴 잠이 깰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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