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냘레스 해변에서

- 비냘레스, 쿠바

by Annie


아침에는 루프 탑에서 여행 떠난 이후 처음으로 스트레칭을 했다. 느긋한 아침 식사를 즐기려 했는데, 해변에 갈 택시가 빨리 오는 바람에 우리는 아침도 채 다 먹지 못하고 후다닥 나섰다. 콜렉티보 택시라고는 하나 거의 봉고차만 한 크기에 사람도 가득 탔다.



쿠바 - 1 (40).jpg 숙소의 루프탑에서 바라본 풍경


해변에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말은 17km라고 하는데 비포장 도로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거의 한 시간 반 동안 열린 창문 사이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달려야 했다. 이렇게까지 고생을 해서 갈만한 곳인가 의문이 생겼다. 거기에다 화장실도 몹시 급했다.


오는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해변은 환상적이었다. 너무 아름다운 쪽빛 해변에 하얀 모래, 사람도 많지 않아서 어느 비치 의자에 자리를 잡아도 되는 곳이었다.

우리는 코코넛 주스에 럼을 섞은 음료(4 쿡)를 시켜 마시며, 비치 배드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행복하다. 쾌적하고 안락한 하루가 되겠다.


난 비치배드에 엎드린 채, 한참 동안 글을 썼다. 수잔과 나는 돌아가며 물속에 들어갈 때, 서로 바닷속에 있는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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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마다 랍스터가 만원도 안 되는 무척 싼 가격이었다. 난 정말로 먹어보고 싶었지만, 수잔이 생선을 안 먹기 때문에 갈 수 있는 식당이 없었다. 딱 한 군데 샌드위치를 하는 곳이 있어서, 난 랍스터를 포기하고 그냥 수잔과 함께 샌드위치를 먹었다. 내가 바라던 모양의 샌드위치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맛이 나쁘진 않았다.


그 전 식당에서는 그냥 음료만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었고, 이곳 식당에서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서로의 남자 친구 얘기를 했다. 수잔은 판단도 조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듣고 내 마음을 공감해줄 뿐. 그래서 좋았다.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되어 우린 마지막으로 물에 한 번씩 들어갔다 나왔다. 차를 타고 오가는 시간은 힘들었지만, 비치에 머문 시간은 참 좋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수많은 파라다이스를 만난다. 어떤 여행에서도 이렇게 자주, 진심으로 해변을 즐겨본 적이 없다.


수잔은 정말 좋은 동행이다. 내가 의존할 수 있는 모든 것, 숙소, 갈 곳, 볼 것, 시간 등의 결정을 모두 쉽게 해 준다. 서로 너무 많은 얘기를 하지도, 방해하지도 않으면서 오롯이 각자의 시간을 즐긴다. 조용히 옆을 지키면서, 외롭지 않게.


호스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얼굴에 까끌한 먼지가 느껴졌다. 샤워를 하고 현금인출기에서 돈도 찾을 겸, 저녁도 먹을 겸 해서 나갔다. 난 수잔에게 저녁을 대접했다. 수잔은 그럴 것 없다고 했지만 그렇고 싶었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인터넷 접속이 어려운 쿠바에서, 비냘레스의 숙소를 예약할 방법조차도 몰랐고, 또 설사 잡았다 한들 혼자서 무엇을 할지도 몰라 참 난감한 시간을 보내다 애매하게 떠났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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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도 혼자가 아닌 함께여서 좋았겠지만 어디 쑥맥 같은 나에 비하랴. 여행하면서 이렇게 고맙고 좋은 이들을 만나면 식사나 음료를 대접해주는 것도 내겐 큰 기쁨이다.


수잔은 비프를 시켰고 나는 양고기를 시켰는데, 엄청난 분량의 갈비찜 같은 양고기 요리가 나왔다. 양고기는 좀 질겼지만 맛은 좋았다.

모히또 한 잔씩도 곁들였다. 우리는 기분 좋게 취했다. 그 성찬에도 20 쿡이라니, 한국의 모히또 3잔 값밖에 되지 않았다.


인터넷 접속이 어려워 결국 뜨리니닫 숙소를 예약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수잔이 루프 탑에서 만난 이에게 정보를 얻어 내가 3일간 묵을 까사를 예약해주었다. 아! 그녀는 복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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