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관문, 살타(Salta)에서

- 살타, 아르헨티나

by Annie



새벽 1시쯤 살타의 호스텔에 도착했다. 악몽처럼 긴 잠을 버스에서 잔 후였다. 어제 아침 6시에 버스를 탄 이후로, 난 버스에 앉으면 그냥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볼리비아에서 아르헨티나로 국경을 넘으려면, 도중에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국경 앞까지 이동을 해야 한다.


버스에서 내려 커다란 배낭을 하나씩 짊어진 젊은 커플에게 국경을 넘어가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그렇다고, 여기서 4킬로 정도 되는데, 걸어갈 거라고 했다. 난 어차피 택시를 탈 거니까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곳 택시 승강장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은 여럿이었지만 들어오는 택시가 거의 없었다.

그 커플은 택시를 잡으려고 서있는 세 명의 가족과 얘기를 하더니 내게로 와서 말했다. 저 가족이 택시로 국경 근처에까지 간다고 하니, 그들과 함께 가라고, 자기들은 그냥 걸어가겠다고 하며 나를 그들에게 인도해주고 떠나갔다.


덕분에 난 금방 그 가족들과 함께 택시를 탈 수 있었다. 그들 가장에게 내 몫의 택시비를 주려고 하니까 그는 괜찮다며 사양했다. 가는 길에 함께 환전소에 들러 환전도 하고 입국 수속 사무실을 통과하는데, 그들의 입국 수속이 길어졌다. 먼저 끝낸 내가 국경을 넘어 몇 걸음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의 아내와 딸은 내가 먼저 가지 않고 기다리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살타로 가는 버스 터미널까지는 다시 택시를 타야 했다. 이번에는 내가 택시비를 냈다. 그들은 나를 살타행 버스 매표소까지 데리고 가서, 창구 직원에게 살타행 버스에 대해 물어보고는, 내게 몇 시에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알려주고 떠나갔다.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는 내가 혼자였더라면, 국경을 넘는 수속이나 환전 등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그 가족들과 함께 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낮 12시 반쯤이었는데 내가 탈 버스는 5시 30분에 출발한다. 100페소(2천 원)에 짐을 맡기고 어딘가 카페나 레스토랑을 찾아 천천히 걸었다. 도로는 개척시대 미국의 서부처럼 황량했다. 상가 도로를 벗어나 다른 길로 접어들었더니, 꽤 근사해 보이는 식당이 있었다. 비프스테이크와 야채샐러드가 함께 나왔는데, 250페소(5,000원)였다. 드디어 품질 좋기로 유명한 아르헨티나 소고기를 먹어보게 되었는데, 무척 부드럽고 맛이 좋았다.


버스에 타서는 풍경에도 관심이 없어서(페루와 비슷한 풍경일 것이므로) 그냥 잠을 청했다. 중간 경유지마다 깨어야 했지만 매번 다시 쉽게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쾌유를 위한 잠이라기보다는, 잘수록 더욱 피곤해지는 수렁 같은 잠이었다.


옆에 앉은 할머니는 내내 깨어 있었고 가끔씩 바깥 풍경을 사진으로 찍기도 했다. 모처럼의 여행인 모양이다. 나도 이것이 초반의 여행이었다면 그랬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겐 이 버스 여행이 말 그대로 그냥 이동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환해지는 불빛에 놀라 깨었더니 살타였다.


택시를 타고 호스텔에 도착했다. 택시비는 놀랍게도 바가지 없는 130페소(2,600원)였다. 이 닦고 세수만 하고 자야지 하고 욕실에 갔는데, 아! 침침한 불빛 아래의 그 욕조와 세면대라니. 실제로 더러운 건지, 아니면 그냥 오래되어 그래 보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양치하며 거의 토할 뻔했다. 순간 이곳에 3박이나 예약한 것을 후회했다. 내일 옮겨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판이었다.


4인 혼성 도미토리였는데 모두 남자였다. 시트는 흰색이 아니고 무늬가 있는 어두운 색인데, 새로 갈기는 하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2층 침대라 부스럭거리지 않으려고 욕실에서 잠옷으로 갈아입고, 바로 잠에 빠졌다. 그러나 역시 낮에 버스에서와 같이 수렁에 빠지는듯한 잠이었다.


아침 8시에 깨어서, 호스텔 앞 공원에 나가 달리기도 하고 조금 걷기도 했다. 악몽 같던 잠의 기억을 떨쳐버릴 움직임이 필요했으므로. 호스텔 조식을 먹으러 갔더니 참으로 볼품없는 빵과 커피뿐이었다. 다행히 앞자리에 앉은 이스라엘 청년, 데이빋과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차를 렌트해서 하루는 남쪽, 하루는 북쪽,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그는 내 룸메이트였다.


주인이 무척 친절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젯밤에 썼던 것과 다른, 훨씬 나은 욕실을 발견해서 호스텔을 바꿀까 하던 생각은 접었다. 이런 호스텔도 마다하지 않는 젊은 배낭 여행객들에 대한 존경심마저 생기며, 급 긍정적인 사고로 전환되었다.


난 룸에서 데이빋과 얘기하던 중에 뜻이 맞아서 함께 밖에 나가보기로 했다. 호스텔을 나와 걸으면서 하루 일찍 이곳을 돌아보았던 데이빋은 이쪽에는 무엇이 있고 저쪽에는 무엇이 있고 하며 길 안내를 해주었다. 도중에 그가 좋아하는 카페에 들어가 그곳에서 여러 가지 긴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살고 있고 25살이다. 현재 직업을 바꾸는 과정에 있고, 좀 더 여행하고 싶은 마음과 일에 복귀해야 하는 갈림길에서 고민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정치적 견해가 비슷했고, 다양한 주제로 많은 얘기들을 했다.


많은 여행자들이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선진국가로서의 한국에 내심 경탄과 존경을 표하고 있었다. 케이 팝과 영화 ‘기생충’도 역시 발전된 문화 콘텐츠 국가로서 한국의 위상을 높여주고 있었다. 그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지, 따로 특별히 영어 강좌를 들은 건지 물었다. 내가 영어 선생님이었다고 하니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역사박물관 앞에까지 나를 데려다주고는, 다른 곳의 박물관도 돌아보고 싶으면 함께 가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와 이미 긴 얘기를 나누었고 박물관은 나 혼자만의 여유로운 감상이 필요했으므로, 그와 헤어져 천천히 걸었다.

쾌청하고 따뜻한 날씨에 편안함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마음에 들어, 너 살타!’


내일은 차를 렌트해서 외곽으로 나가볼까 생각 중이라던 데이빋에게 하루 합류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참을 걷다가 전망이 좋아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오늘의 특별 메뉴 콤보를 시켰더니, 300페소(6천 원)에 돈가스 비슷한 스테이크와 토마토 샐러드, 그리고 와인이 콤보로 나왔다. 참 착한 물가다.


이곳 살타에서 이 착한 물가를 마음껏 즐기자. 파타고니아(엘 칼라파테)에 가면 물가가 엄청 비싸진다고 했으니까. 앞 테이블에 앉은 청년에게 말을 걸었더니 영어를 전혀 못한다. 언어의 중요성이 절감되는 순간이다. 데이빋의 말에 의하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스페인어를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용이 없어서 오래 참아주지를 못한다고 했다.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성향이나 태도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다. 한국에 돌아가면 언어학 이론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이곳 레스토랑은 남미답지 않게 정말 고요하다. 서너 테이블에 손님이 있는데도, 전혀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 돈가스처럼 보이는 소고기를 나는 육전이라 여기기로 한다. 와인은 매우 훌륭하진 않았으나 그런대로 맛이 좋았고, 조금 강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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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테이블에 앉은 청년과 마침내 번역기를 동원해 얘기를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마르꼼인데 영어식으로 하면 말콤이었다. 엘 칼라파테 부근에 살고 있고, 일주일 정도 더 여행하다 돌아간다고 했다. 좋은 인상인데 언어소통이 자유로우면 얼마나 좋겠는가.


데이빋도 그렇고 그도 그렇고, 내가 나이 때문에 주눅 들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청년들이었다. 그들과 나는 여행지에서의 좋은 동행이나 대화자를 만나서 서로 기쁜 여행자들이었다.

언어가 통할 때 좋은 것이 있고, 또 안 통할 때 좋은 것도 있다. 언어가 안 통하면 표정으로 더 많은 말을 하게 되어 서로를 훨씬 더 가까이 느끼게 된다.


나는 말콤에게 심 카드 사는 것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이 점심 콤보에는 디저트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도 내가 여행 중에 먹어본 중 최고였다. 또띠아 같은 것 위에 달콤한 소스와 호두가 얹어진 것이었다. 색다른 맛과 음식의 풍경이다.

말콤이 이곳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심 카드는 편의점 같은 곳 어디서나 살 수 있다고 해서, 두어 군데 돌다가 드디어 150페소를 주고 심 카드를 샀는데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리저리 한두 시간은 헤맸다. 마침내 통신사 ‘끌라로’ 대리점을 찾았는데 문이 닫혀있다. 주변에 물어보니 5시 30분에 연다고 한다. 가게를 오후 5시 30분에 연다는 것이 조금 이해가 안 되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돌아다녔으니 40분 정도 기다려야 하는데, 더 이상 말콤을 붙잡아둘 수 없어서 그를 보냈다. 비록 인터넷 연결은 못했지만, 시종 웃는 얼굴로 함께 해준 그에게 너무 고마웠다. 오늘 살타에서 한 것은 별로 없지만 데이빋과 말콤, 두 착한 청년을 만나 좋은 시간이었다. 원래 살타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냥 쉬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내 해가 지고 불빛이 밝혀지며, 광장 한쪽에 핑크색으로 빛나는 성당이 황홀할 만큼 아름답다. 그 앞 벤치에 앉아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려다 옆에 앉은 한 여자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현지인 투어 가이드인데, 일을 마치고 에이전시로 돌아가기 전, 이 벤치에 앉게 되었단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은 피곤하지만 자기 일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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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밤의 성당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성당 안에 들어서니 어쩐지 오스스 소름 같은 게 돋는 기분이다. 똑같은 성모나 예수, 성인들도 나라에 따라, 혹은 지역에 따라 그 모습이나 장식들이 각양각색이다. 난 기도 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렸다. 가톨릭 신자도 아니지만 그러고 싶었다.

한국의 코로나 19를 종식시켜 달라고,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봄이, 여름이, 형제자매들, 대통령과 국민들.. 그러다 세계인의 평화까지. 세계가 평화롭기를, 진정으로 전쟁과 불화가 없기를 바란다며 기도를 마쳤다.


성당을 나와서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에, 맞춤한 식당이 나오면 스테이크를 먹으리라 했는데, 고급 레스토랑이 하나 보였다. 밖에 있는 입간판을 보니 스테이크가 450페소였다. 그냥 갈까 하다 이 정도의 사치를 여기서 안 하면 못할 것 같다.

실제로는 스테이크 550페소에 소다 100페소, 팁까지 총 650페소(14,000원)의 호사였다. 이렇게 두꺼운 스테이크를 실물로 보기는 처음이다. 한 조각 썰면 육즙이 접시에 흥건히 고인다. 여러 종류의 식전 빵에 곁들인, 콩과 마늘이 섞인 소스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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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식당의 손님들은 서양 노인들밖에 없다. 이 정도의 값을 지불할 만한 사람들이 그들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얇은 스테이크이긴 했지만, 국경 근처의 식당에서 먹었던 값싼 스테이크가 맛은 더 좋았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것은 지방이 조금 섞인 것이고, 오늘 내가 주문한 것은 지방이 없는 두꺼운 스테이크로, 아르헨티나의 스테이크는 보통 이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소화를 시키고 자려면 오늘 밤은 매우 늦게 잠들어야 할 것 같다. 마늘 바게트에 스테이크 슬라이스를 얹어 먹으니 꿀맛이다. 스테이크를 보면 여름이 생각이 난다. 좋은 음식을 보면 그것을 좋아하는,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가끔 어떤 장소나 어떤 음식을 보면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기도 한다. 엄마가 좋아했을 텐데...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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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에 들어서니, 방이 답답해서인지 모두들 식당 공간에 모여 활기차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늦은 저녁을 먹으며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있다. 야채와 토마토, 삶은 달걀이었다. 다변인 그와 함께 있으면 나도 덩달아 말이 많아진다.

오전에 딱 필요할 때, 그에게서 에너지를 많이 받았었다. 함께 걸으면서, 그리고 카페에서. 그가 가르쳐준 2개의 박물관 위치, 카페 거리, 쇼핑 거리 등의 정보 덕분에, 혼자 헤매지 않아도 되었다. 나도 다른 여행자들에게 그런 존재이면 좋겠다.


이제 좀 씻어볼까 하고 룸에 들어갔더니 데이비드는 또 다른 룸 메이트와 함께, 그리고 다른 룸의 두 걸과 함께 나가는 모양이었다. 그래, 젊은 피들은 그래야지.

난 씻고 나서 쭈그리고 않아 휴대폰을 충전 중이었는데, 새로운 룸메이트가 들어온다. 이탈리아 시실리에서 왔고 엘 칼라파테는 다녀왔다고, 엘 찰텐을 강력 추천한다고 했다. 그래, 엘 칼라파테 2일, 엘 찰텐 3일로 하고 돌아오자. 바릴로체는 건너뛰고.


자다가 뒤통수가 묵지근해서 베개를 빼버렸다. 이 호스텔, 안 좋은 것이 많다. 하루 더 자야 하는데. 이제 호스텔도 슬슬 지겹다. 페루, 볼리비아를 지나며 잉카 문명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고, 가이드의 설명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후회된다. 길게 해 보니, 여행은 누구의 말처럼 그냥 맛있는 것 먹고 좋은 것, 아름다운 것만을 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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