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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로마노로 마실 나가다

- 마흔의 내가 나에게 선물한 유럽여행, 2002

by Annie


아침 일찍 젤뚜르데랑 둘이서 길을 나섰다. 포로로마노와 콜로세움을 향해. 젤뚜르데는 수도원 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시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는 데다 길눈도 어두웠다. 그래서 우린 직선거리를 두고도 뱅뱅 돌아서 멀리 걸어 다녔다. 어딘지도 모르고 막 간다. 그래도 우리는 신이 나서 깔깔거리며 걷는다.


어제는 새로 산 샌들을 신고 다니다 발이 부르텄다. 그래서 오늘은 운동화에 양말을 챙겨 신었는데, 여행 떠날 때 하얗던 운동화에는 이제 때가 잔뜩 끼어있다.


포로 로마노!

현대 로마의 도심 한가운데 불쑥 출몰한 것 같은 이곳에는 고대 로마의 잔해들만 남아있다. 대부분 파괴되어버려 그곳이 옛날 그 번성했던 로마의 도심이라는 게 얼른 그려지지 않는다. 큰 돌들이 깔려있는 길도 그보다는 훨씬 더 크고 웅장하리라 생각했는데, 남아있는 부분이 적다 보니 그 본래 모습 또한 그려지지 않는다.


여기저기 부서진 기둥 덩어리들이 흩어져 있고 그 사이로는 풀들이 자라나 있다. 건물도 폭격에 의한 것인지 거의 부서지고, 단면도처럼 벽의 일부분과 드문드문 기둥들만 서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줄리어스 시저, 옥타비아누스 황제 등이 포효하던 그 로마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름다웠다. 무성한 풀들과 건물 잔해들이 뒹구는 그 폐허는, 웅장하게 복구된 여느 유적지들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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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로마노를 나와서 간 곳은 어느 성당이었다. 그곳에는 성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묶여있던 사슬이 보관되어 있었다. 유럽의 많은 성당들을 돌아보면서 그 내부의 웅장함과 화려함, 촛불만 밝힌 어둑함, 향을 피워놓은 듯한 그 냄새 등이 어쩐지 불편했었다. 그런데 이곳은 내부가 단순하고 별 장식이 없는 데다, 밝은 편이어서 편안한 느낌이었다.


바닥에 그림들이 새겨진 네모난 곳은 모두 무덤이라고 한다. 그 돌 아래로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이 있었다. 구불구불 기다란 수염에 커튼처럼 수염 한 자락을 걷어 한 손에 걸치고 있는 건장한 근육질의 모세. 그의 수염은 위세가 당당했고 그 표정에는 카리스마가 넘친다.


그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미켈란젤로는 완벽하다고, 모세와 똑같이 만들었다고 확신했는데, 그 조각이 사람이 되어 움직이지 않자 화가 나서 망치로 두드렸다는 설도 있다.

또 원래는 교황이 자기의 무덤 위에 세 개의 조각을 하도록 명했는데, 고집스러운 미켈란젤로가 멋대로 하나만 했다나 어쨌다나.

거장은 좀 괴팍스러워도 된다는, 그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거장도 아닌 주제에 그러면 덜 된 인간 같아 보일 테지만.


이제 콜로세움으로 향한다. 콜로세움은 1,2,3층이 각기 다른 양식의 아치로 형성되어 있다는데, 얼른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 경기장은 사선으로 파손되어있는데, 오히려 그 모습의 사진이 눈에 익어서 원래 경기장의 모습도 그랬을 것 같고, 그 모습이 더 인상적이기까지 하다.


땡볕에 긴 줄을 서기 싫어서 그리고 수도원의 기도시간이 임박하기도 해서, 입구에서만 살짝 들여다보았다. 내부는 공사 중이었고, 들어가 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았다. 카메라는 유난히 파인더가 작아서 프레임 안의 대상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될 대로 되라지 하는 마음으로 찍는다.

사진 찍고 싶은 의욕이 떨어지게 하는 카메라다. 가벼운 것만 찾던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지만 후회는 없다. 여행 중의 짐이라는 게 얼마나 성가신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므로.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한없이 무거운 캐리어를 어디에 콱 버려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아침에 수녀원을 나서는데 함양에서 오신 데레사 수녀님이 젤뚜르데더러 자기도 좀 데리고 나가 달라고 하더란다. 원장 수녀님께 말씀드렸더니 젤뚜르데의 언니는 혼자서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이라고, 길을 모르는 자매님이 가서 뭘 하겠냐고, 젤뚜르데도 언니가 관광시켜준다고 해서 나가는 거라고. 그래서 못 데리고 나왔다 한다.


그래, 나가 보고 싶겠지. 수녀님들의 마음도 우리 속세 사람들의 마음이랑 크게 다를까 싶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꿈도 꾸고 욕망도 느끼면서 그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보호막이고 속박이기도 하다는 걸 인식하면서. 젤뚜르데도 보면 그렇다. 7년 동안 종교적으로 그 내면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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