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의 내가 나에게 선물한 유럽여행, 2002
드디어 첫 야간열차를 탄다. 파리에서 출발해 밀라노를 경유하는 로마행 열차다. 쿠셋은 쾌적했다. 무엇보다 침대차의 하얀 시트가 인상적이었다. 약간 공중에 뜬 느낌이긴 하지만 승차감은 괜찮다.
입구에 서서 내 짐을 올려주고 사다리도 걸쳐주는 청년은 어찌 보면 순진해 보이고, 어찌 보면 또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아래 칸엔 양복 입은 남자, 건너편 아래 칸엔 젊은 남자가 드러누워 책을 보고 있다. 새롭다. 설렘이 있다. 마치 여행을 떠나는 첫날처럼.
새로움은 늘 위험을 동반한다.
밤새 야간 기차에 대한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지고, 문을 열어보니 창밖으로 아침 들판이 스쳐간다. 조금씩 졸졸 흐르는 세면대 물에 고양이 세수를 하고 통로에 서서 아침 풍경을 본다. 들판의 모습이 영국이나 파리와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들판과 흡사하다. 새로움은 덜하지만 정겹기는 하다.
같은 쿠셋 칸을 이용한 프랑스 남자에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잘하지는 못하지만 조금 한다고 해서 몇 마디 얘기를 나누었다. 지금까지 만난 프랑스인 중에 제일 잘생긴 사람이다. 영어가 서툰 것에 대해 이 사람도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유럽 남자들은 대체로 수줍음이 많은 것 같다.
미국 영화를 주로 본 탓일까? 흔히 영화에서 보던 명랑하고 저돌적인 미국 남자들과는 다른 것 같다.
밀라노에서 로마로 가는 열차, 창밖으로 보이는 들판에는 옥수수가 많이 심어져 있다. 간간이 보이는 집들만 빼면 영락 우리나라 들판의 모습이다. 이태리 기차는 연착을 잘한다고, 아까 만난 프랑스 남자도 지난번에 열차가 연착했었다고 하는데 내가 탄 열차들은 연착 없이 잘 가고 있다.
로마에는 수녀님이 된 동생, 젤뚜르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7년 만인가? 그래도 엊그제 본 듯한 느낌은 그리움이 덜했던 때문일까? 늘 전화로 목소리를 듣고 사진도 보았기 때문일까? 그래, 참 오래되었구나. 그이의 내면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기차역에는 원장수녀님과 신부님, 젤뚜르데, 그리고 까떼리나 수녀님이 함께 마중 나와 있었다. 동생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눈 밑이 어두워지고 기미가 끼어서 화사해 보이진 않는다. 화사할 나이는 아니지만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마알간 피부의 수녀님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 이제 서른다섯 살인데 화사할 나이는 아니지. 여염집 여자처럼 가꾸지도 않고, 썬 크림도 안 바른 채 이태리의 그 뜨거운 태양 빛에 드러내 놓고 다니는 얼굴인데.
그녀는 나를 보고, 내가 아닌 것 같다고 한다.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이겠지. 나는 그동안 아이도 둘 낳았고, 짧은 아줌마 파마머리에다 이번 여행으로 얼굴에 기미도 잔뜩 올라와 있으니.
수도원 안으로 들어갔지만 로비까지밖에 못 가고 다른 계단을 통해 손님 숙소로 안내되었다. 그 층엔 나밖에 없다.
온통 흰색 바탕에 짙은 밤 갈색 가구들, 책상 하나, 의자 하나, 소파 하나, 옷장 하나. 침대에는 눈처럼 하얀 시트가 덮여있고 역시 하얀 시트로 씌운 푹신한 베개 두 개가 놓여있다. 소파도 하얀 시트로 덮여있어 무척 청결한 느낌이다. 창문은 아주 견고하게 잘 짜여 있다. 실내 공간의 깔끔함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싶다.
점심으로 별로 먹을 것이 없어서 라면을 끓여준다고 하더니, 승강기를 통해 올라온 음식을 보니 보기만 해도 싱싱하고 먹음직스러운 과일들, 청포도, 복숭아, 노란색 자두, 그리고 요플레와 치즈, 파인애플 주스 1팩 등이 소담스럽게 차려져 있다.
맛나게 먹고, 샤워하고 간단한 빨래도 하고 까떼리나 수녀님이랑 동생이랑 셋이서 밖으로 나갔다. 먼저 가까이에 있는 그 유명한 트레비 분수에 갔다. 그곳에 다녀온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고 해서 아무런 기대 없이 마실 가듯이 걸어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훌륭했다. 그 분수 앞의 조각도 훌륭했고 분수도 시원하고 깨끗했다. 다들 그런다니 나도 뒤돌아서서 분수대 안에 동전을 던졌다. ‘로마에 꼭 다시 올 거야’라고 마음먹으면서. 두 가지 소원 중 하나를 택하라면 로마에 다시 오는 것이다.
다른 하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는 건 이제 욕망인 것 같다. 물론 갖고 싶지만, 이제 와서는 그 사랑이라는 것도 어린 시절에 꿈꾸던 아름다움이기보다는, 한낱 욕망인 것 같아서 진부하기까지 하다. 다시 로마에 온다는 건 내 인생이 이번 여행을 기점으로 다시 도약의 기회를 맞는다는 걸 의미하기에 꼭 소원하고 싶다.
다음으로 우리가 간 곳은 ‘해골들의 사원’이다. 이곳의 지하 납골당에는 수많은 카프친 교도 수도사들의 유골이 쌓여있다고 한다. 어느 방에 들어서면 한 면에 400여 개의 해골과 뼈들이 빽빽이 쌓여있고, 천정과 벽에는 그것들로 갖가지 문양을 만들어 장식해 놓고 있다.
무슨 의미일까? 수도사들의 해골과 뼈를 보고 종교적 감흥을 받아 경건해지라는 걸까? 아니면 유골들이 일개 장식품으로 쓰이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으로 사람들을 겁주려는 것일까?
마지막 방에 들어섰을 때 그곳에 새겨진 문구를 보니 알 것 같다.
“지금은 너희들이 여기에 있는 나를 보고 있지만, 머지않아 너희들도 나와 같이 이 자리에 있게 될 것이다.”
현세의 무상함을 알려주는 동시에 현세의 삶을 똑바로 살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유골 장식을 그때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기억을 더듬느라 인터넷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 클로즈업된 해골들의 리얼한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원장 수녀님께서 내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라고 돈을 주셨다고 한다. 세 가지 맛을 섞은 젤라또 세 개에 5유로밖에 안 하는데 맛은 기가 막히다. 두 명의 수녀님과 나는 길거리에 서서 그 맛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아이들처럼 행복해한다.
어떤 성당에도 들렀다. 베르니니의 조각, ‘성녀 테레사’가 있는 성당 내부는 웬만한 궁전 내부보다 화려하다. 대부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걸친 양식이라는데, 천정화도 있고 각종 조각품들로 장식된 장중하면서도 화려한 장식들이 섞여있었다. 갈멜파(남자 수도사) 성당이라고 한다.
수녀님들 기도 시간이 되어서 수도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태리에서는 쇼핑도 하고 싶고, 밤늦게 야간 조명이 있는 트레비 분수와 야외 오페라 공연도 보고 싶은데, 이렇게 귀가 시간이 빠르니 어떻게든 저녁 먹고 나갈 궁리를 해봐야겠다.
저녁 식사는 정말 고슬고슬 맛난 밥에 맛깔스러운 오이 무침, 호박 나물, 김 등이 나와서 너무 맛있었다. 방안의 냉장고에 과일이랑 주스도 들어 있었다. 아! 오랜만의 행복한 포식!
내일 갈 곳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는데 졸린다. 파리가 재미없었던 것은 내 불찰이다. 의욕도 없었고 찾아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파리가 어떤 곳인데 찾으면 왜 볼만한 곳, 좋은 곳이 없었겠는가. 반성하고 열심히 해야지.
이곳 수도원에서는 까떼리나 수녀님을 빼고는 영어가 안 통하니 미안하고 어색하다. 젤뚜르데를 예뻐하시는 원장수녀님을 만나서도 말이 안 통하니 그저 온 얼굴로 환하게 웃을 뿐이다. 몇 마디라도 이태리어 공부를 좀 해야겠다. 지금은 졸리니 내일 아침에 눈뜨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