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의 내가 나에게 선물한 유럽여행, 2002
카타콤베에 갔다. 그리스어로 ‘묘지’라고 하는 이곳은 ‘잠자는 곳’, ‘여기 누워 부활을 기다리는 곳’이다.
로마에는 죽음의 흔적과 상징들이 많다. 그 죽음은 또한 부활과 영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해골의 사원’에서도 그랬고 이곳 카타콤베에서도 그렇다. 아기 무덤, 가족 무덤, 노예들까지도 가족 무덤에 함께 묻힌다.
지금은 로마로 이장되어 가고 없지만 이곳에는 순교한 교황들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 외에도 많은 순교자들이 묻혀있는 지하 무덤이다. 이곳에 잠들면서 부활을 꿈꾸던 주검들. 죽음은 곧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했으므로 그들에게 죽음은 두려움만은 아니었으리라.
성녀 체칠리아(세실리아)가 쓰러져 있는 조각상과 그 무덤도 있다. 그녀는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손가락 3개와 오른 손가락 1개를 펴 보이며, 잔혹한 종교 박해에 항거하다 박해자들의 칼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미로같이 이어지는 지하 무덤, 로마 전역에 흩어져 있는 카타콤베는 길이로 치면 통틀어 900km에 달한다고 한다. 이 의미를 모르고서 그냥 무덤만을 보고 나왔다면 얼마나 허망했을까.
이어지는 아피아 가도는 얼마나 가보고 싶었던 곳인가. 양 도로 옆으로 늘어선 가로수가 참 아름다웠고 그 사이에 펼쳐진 길 또한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도로가 큰 돌덩어리들로 울퉁불퉁 깔려있어서 타고 있던 차에서 내려야 했다.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위에 내 발로 서볼 수 있었으니까.
왜 굳이 이 울퉁불퉁한 돌들을 길에다 박아놓았을까 짐작해 보았다. 원래 병사들을 위한 도로였고 그 위로 말과 전차들이 달리려면 튼튼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눈, 비가 오면 흙길로는 그 군대의 행렬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우리를 그곳까지 차로 데려가 준 파드레(신부님)에게 물어보니 과연 그렇단다. 고대 아피아 가도도 있었는데 그 길은 더욱 아름다웠다. 차에서 내려 그 길을 더 걸어가고 싶었는데, 파드레는 갈 길이 멀다는 듯 급히 차에 오른다. 고대 아피아 가도는 큰 돌덩어리들이 조금씩 보이고 규격 있는 작은 벽돌 같은 것으로 길이 깔려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차가 다니기 쉽도록 길을 고쳤단다.
아침에 본 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작았다고 했더니 파드레가 말한다. 로마는 유적들 안에 깃든 역사를 이해하며 보아야 한다고.
그것이 정답이다. 나는 로마에 가면 그 융성하던 로마의 위용을 직접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로마를 찬미하는 데는 거기에 값할만한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리라고. 그러나 포로 로마노처럼 너무 많이 파괴되어버린 잔해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실망도 했고 무척 안타까웠다. 물론 잔해들이 뒹구는 포로 로마노 자체도 무척 인상적이긴 했지만.
그러나 오후에 파드레와 함께 차로 카타콤베와 아피아 가도를 돌아보면서 차츰 로마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사실 로마를 실감할 수 없었다. 젤뚜르데와의 이야기에 더 정신이 팔려 있기도 했고.
파드레는 수많은 유적지를 자세히 설명해가며 시내 투어를 시켜주었다. 로마는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더 크고 엄청난 것들이 로마의 땅 밑에 묻혀있다고 했다.
로마에는 수많은 광장들, 그리고 그 광장마다 이집트에서 실어온 오벨리스크며 베르니니의 유명한 조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또 그 앞뒤에 들어서 있는 위풍당당한 건축들, 성당들, 많은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들은 오히려 아주 모던한 건축에 속했다.
파드레의 운전은 아주 터프했다. 로마에서 큰 차를 볼 수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수백 년 된 건물들이, 역시 수백, 수천 년 전의 그대로인 도로에 보존되어있다. 그래서 좁은 골목들이 많고 게다가 양 옆에 주차까지 되어있으니 차들은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끼어 다녀야 하는 것이다. 파드레는 그 좁은 골목들을 곡예하듯이 돌고 돌았다.
한참을 그렇게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골목길에 주차하고 내려서 걷는데, 어느 순간 눈앞이 환해지며 크고 하얀 건축물이 턱 버티고 있는 것이 보이더니, 우와! 난 탄성이 아니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두 손을 펴 들고 양다리를 굽힌 채로 소리를 질러대는 나를 보고 한국인인 듯한 관광객들이 웃으며 쳐다본다.
좁은 골목을 벗어나며 탁 트인 광장, 그곳에 펼쳐진 풍경. 난 1, 2, 3단계로 그것들을 보면서 결국 괴성을 지르게 된 것이다. 1은 하얀 건축물(성당), 2는 한편에 갑자기 보이게 된 사람들의 무리, 3은 다른 한쪽에 펼쳐진 광장의 모습, 수많은 사람들과 곳곳에 펼쳐진 거리의 화가들, 갑옷 같은 것을 뒤집어쓴 돌조각 같은데, 사실은 그 안에 사람이 들어있어서 손을 흔들고 있고, 비누 거품을 날리면서 뭔가를 팔고 있는 사람...
골목을 벗어나자마자 펼쳐진 이 진풍경, ‘나보나 광장’이었다.
파리의 몽마르트에서도 보지 못했던 이 풍경 앞에서 난 사춘기 소녀보다도 더 좋아했다. 가운데 분수에는 거장 베르니니의 조각이 위풍당당하게 서있는데 빙 둘러선 네 개의 조각상은 4대 강을 의미한다고 한다. 조각들도 무척 멋있었다. 나보나 광장은 시간대에 따라서 그 풍경이 달라지나 보다. 젤뚜르데가 전에 낮에 왔을 때는 이러지 않았다고 한다.
나보나 광장 이전에 또 우리가 들렀던 곳은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신부님 친구의 가게라고 하는 그곳의 젤라토는 1,5유로. 딸기, 멜론, 바닐라 세 가지에 생크림까지 얹었는데 어찌나 큰지 무거울 지경이었다. 그걸 받아 들고 너무 좋아서 또 탄성을 지른다. 와! 와! 를 연발하면서 먹는데 그 맛이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너무 좋아하는 내 모습에 함께 간 사람들도 모두 흐뭇해한다. 카테리나 수녀님은 내가 너무 좋단다.
‘나도 그래요’
수녀님이 얘기하면 마치 종달새가 지저귀는 듯하다. 끊이지 않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 같기도 하고. 아이스크림 때문에 이렇게 행복해본 적이 없다고 기뻐하자 젤뚜르데가 통역해준다.
나보나 광장을 나와서 또 들어간 곳은 야외 콘서트가 열리는 곳이었다. 그 건축물은 지혜를 상징하고 있다고 하는데, 야외에 좌석을 마련해놓고 연주석이 준비되어 있는 곳이었다. ‘tonight, 9:30’
'아! 너무 보고 싶다.'
내 간절한 소망에 세 수도사들은 도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젤뚜르데는 “외박해.” 한다. 롯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그리고 모차르트의 ‘돈 죠바니’였다. 정말 소원이니 꼭 한 번 보고 싶다. 이 수도원을 뛰쳐나갈 수 없는 내 용기 없음을 한탄할밖에.
차로 지나면서 카테리나 수녀님이 가리킨 곳은 Hard Rock Cafe였다.
“우와!” 난 손가락을 마주치면서 또 너무 좋아한다.
‘아! 가고 싶어!’
이럴 땐 동행 없이 혼자 여행하는 것이 안타까워진다. 너무 즐거운 시내 투어였다.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너무 많은 곳들을 지나왔다.
교황의 별장 아래로는 바다 빛깔의 커다란 호수가 펼쳐져 있고 그 위로는 요트들이 떠다녔다. 낚시와 수영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보르게세 공원과 성 베드로 성당의 광장, 괴테의 기행문에 등장한다는 고풍스러운 거리도 지났다. 괴테는 길 양쪽으로 늘어선 모든 건축물들의 건축 양식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기록했다고 한다. 콜로세움도 몇 번이나 지나갔다. 정말 뿌듯하다.
“Padre! 정말 고마워요. 진짜 멋진 하루였어요.”
흥분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신부님께 감사의 말을 전했다. 카테리나 수녀님은 수도원에 들어서면서 젤뚜르데에게 말했다.
“콘서트 가겠다고 몰래 빠져나갈지도 모르니까 문 잘 잠그세요.”
감동 없는 삶이란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쉽게 감동하고, 또 엄청 감동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삶을 끔찍이 도 사랑하고 있음이 느껴진다.